조소영 정치부 차장
여당 원내대표이자 친박(친박근혜)계 핵심으로 불려온 유 원내대표였다. 정치 문법을 제대로 알지 못하던 기자 초년생이었음에도 그 순간 머릿속에서 사이렌이 울렸다. 유 원내대표는 결국 축출됐다. 같은 해 6월 국무회의에서 박 대통령이 "배신의 정치를 심판해야 한다"고 한 뒤였다.
11년이 지난 지금, 기시감이 드는 장면이 더불어민주당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8일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6·3 지방선거 및 재·보궐선거 성적에 대해 "이길 곳을 졌거나 이겨야 되는 곳을 졌다고 하면 문제가 다르다. 최소한 성공은 아니다"고 했다. 서울시장을 탈환하지 못한 데 있어 안타까움을 표하면서도 '지방선거 승리'를 선언한 정청래 민주당 대표와는 사뭇 결이 다른 평가였다.
이 대통령은 다음날(9일) 유럽 순방을 떠나는 길에 정 대표를 부르지 않았다. 그 자리는 정 대표의 당권 라이벌인 김민석 국무총리가 채웠다. 정 대표는 10일 반격했다. 공개 최고위원회의에서 "국민은 영원하고 정권은 짧다"고 작심 발언을 한 것이다.
청와대는 정 대표를 부르지 않은 당일, 비상한 정국 상황에 맞춰 환송 인원을 최소화했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이 대통령은 귀국 후 가진 기자회견(19일)에서 본인은 애초 해외 출국·귀국 때 여러 사람이 줄 서서 인사하는 문화가 흔쾌하지 않았다고 했다. 정 대표도 수습에 나섰다. 그는 작심 발언 다음날인 11일 '정치는 정치인이 하는 것 같지만 결국 국민이 한다'는 이 대통령 발언을 소개했다.
모두 당청 갈등을 부인한 언급들이었으나 정치는 드러나는 말로만 이뤄지지 않는다는 걸 이제는 명확히 안다. 이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은 이는, 적어도 정치권의 경계 안에 있는 사람 중에는 없었을 것이다.
이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친명(친이재명)계의 '전당대회 불출마' 압박에도 불구하고 정 대표는 전날(24일) 당 대표를 사퇴하며 사실상 연임 도전을 명확히 했다. 김 총리와 송영길 전 대표 등 친명 주류 후보군과 정 대표 간 한판 승부가 벌어지게 된 셈이다. 2028년 총선 공천권을 쥐고, 2030년 대선까지 바라볼 수 있으니, 이번 대표직은 어느 누구도 욕심내지 않기 어려운 자리다.
정치는 권력 투쟁의 장이고 역사는 종종 비슷한 얼굴로 되돌아온다. 누군가에게는 소신인 말이 누군가에게는 배신으로 읽힌다. 문제는 그 균열이 민주당에 너무 이르게 찾아왔다는 점이다. 지금 민주당에는 혼란을 중재할 어른도, 다음 희망이 돼 줄 차기 주자군도 뚜렷하지 않다.
6·3 선거에서 여권 대선주자로 거론되던 인물들이 줄줄이 고배를 마신 상황 속 당권 경쟁은 곧 미래 권력 경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민주당은 이 조기 균열을 지혜롭게 넘길 수 있을까. 11년 전 기자 초년생의 머릿속에서 울렸던 사이렌이, 이번에는 민주당을 향해 다시 울리는 듯하다.
cho11757@news1.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