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은 29일 국립대전현충원과 국립서울현충원에서 6·25전쟁 전사자 유해 7위에 대한 합동 안장식을 열었다. 국립대전현충원에는 고(故) 최백인 일병과 고 하창규 일병이, 국립서울현충원에는 고 전승남 이등중사, 고 김판성 하사, 고 김순식 하사, 고 유제용 일병, 고 박민성 일병이 영면에 들었다.
29일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린 6·25 전사자 발굴유해 합동안장식에서 국군유해발굴단 장병들이 호국영령 2위(位)의 영현을 봉송하고 있다. (사진=육군)
고 최백인 일병은 1950년 8월 입대해 국군 제6사단 7연대 소속으로 영천전투에 참전했다. 입대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1950년 9월 북한군과의 치열한 교전 속에서 전사했다. 영천전투는 국군이 영천을 탈환하며 낙동강 방어선을 지켜낸 대표적인 승전으로 평가된다.
고 하창규 일병은 1950년 11월 입대해 국군 제8사단 10연대에서 복무하다 약 3개월 만인 1951년 2월 횡성전투에서 전사했다. 당시 중공군의 대공세 속에서 8사단은 막대한 피해를 입었고, 고인이 속했던 10연대 역시 연대장을 비롯한 지휘부 대부분이 전사하거나 실종될 정도로 치열한 전투를 치렀다.
고 전승남 이등중사와 고 김판성 하사는 1951년 백석산 전투에서 산화했다. 휴전회담을 앞두고 유리한 지형을 확보하기 위해 벌어진 백석산 전투는 중동부전선 최대 격전 가운데 하나였다. 특히 고 김판성 하사의 당시 매화장 보고서에는 ‘적 포탄에 오른쪽 다리가 절단돼 전사’한 것으로 기록돼 있어 당시 전투의 참혹함을 보여준다.
29일 국립대전현충원에서 6·25 전사자 발굴유해 합동안장식을 주관한 김규하 육군참모총장이 호국영령의 영면을 기원하며 경례하고 있다. (사진=육군)
고 유제용 일병 역시 1951년 1월 입대한 뒤 불과 한 달 만에 횡성전투에서 전사했으며, 고 박민성 일병도 백석산 전투에 참전했다가 끝내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이들의 유해는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강원 철원·양구, 경북 영천 등 전·후방 격전지에서 발굴됐다. 이후 유가족들이 제공한 DNA와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의 유전자 분석을 통해 신원이 확인되면서 70여 년 만에 가족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김규하 육군참모총장은 조사에서 “오늘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평화는 호국영웅들의 희생 위에 세워졌다”며 “그분들의 헌신을 기억하고 합당한 예우를 다하는 것은 살아 있는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할 역사적 책무”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