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 K무비, K드라마의 세계적 위상은 ‘패션’과 ‘미용’, ‘음식’, ‘여행’, ‘한국어 학습’으로 확산되고 있다. 문체부가 발표한 2026 해외 한류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해외 이용자들의 K 문화콘텐츠 전체 월평균 소비 시간은 14.7시간으로 전년보다 0.7시간 증가했고 분야별로는 한국어 관련 소비·학습 시간이 월평균 23.8시간으로 가장 길었다.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외국인들이 점차 증가하는 이유다.
그런 한류가 이제 에어컨 분야까지 진출하고 있다. 바야흐로 K 한류(寒流, Cold Wave)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지구 온난화에 따라 유럽 전역이 폭염으로 몸살을 앓고 그간 에어컨을 잘 사용하지 않던 유럽 국가들의 에어컨 수요가 폭증하고 있으며 한국의 에어컨이 그 수요를 감당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우선 한국의 에어컨 보유율은 세계 탑 클래스 수준이다. 미국, 일본과 함께 에어컨이 많이 설치된 나라 ‘톱 3’에 속한다. 8년 전인 2018년 국제에너지기구(IEA) 조사에 따르면 가정용 에어컨 보급률 상위 3개국(일본 91%, 미국 90%, 한국 86%)에 이미 들었고 사우디아라비아(63%)나 중국(60%)보다 훨씬 높았다.
그리고 한국의 보유율은 이후 더 오르게 돼 한국갤럽 조사 결과, 2023년에 무려 98%를 기록했다. 1993년만 해도 6%에 그쳤던 보급률이, 역대급 폭염이 닥친 1994년 이후 늘기 시작, 1998년 24%, 2001년 36%, 2012년 74%, 2018년에 87%였고 급기야 2023년에는 98%를 기록한 것. 에어컨은 이미 한국에서는 ‘생필품’의 지위에 올랐고 이 정도면 세계 1위 수준인 것이다.
반면에 유럽은 에어컨 보유율 면에서 후진국 수준이다. 프랑스 에너지전환청(ADEME)에 따르면 프랑스의 가정용 에어컨 보유율은 2023년 18%였고 지난해 소폭 증가한 수준이 24%였다. 영국과 독일은 이보다 더 낮아 약 5%로 최근 폭염으로 철도 운행 차질은 물론 학교와 병원의 냉방 문제 등이 심각한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유럽에서는 지금까지 폭염이 오래 지속되지 않기도 했거니와 건축물 자체가 두꺼운 석조 벽과 높은 천장 덕분에 외부 열기가 실내로 잘 전달되지 않는 구조여서 에어컨이 필요 없었다. 거기다 에어컨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도 적지 않았다. 에너지 문제와 환경, 기후 문제로 냉방에 소극적인 사회 분위기가 팽배했고 에어컨 설치 문제가 여야 진영간 정치적 쟁점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기후변화로 폭염이 일상이 되고 사망자까지 속출하면서 이제 ‘이념’, ‘환경’, ‘에너지’의 문제가 아니라 폭염은 ‘생존’의 문제가 됐고 에어컨의 수요가 급증하게 된 것이다. 세계 보건기구(WHO)가 지원하는 ‘유럽 사망률 감시 네트워크 유로모모(Euromomo)’에 따르면 올해 6월 22∼28일 기간, 유럽에서 평년보다 1만 4260명이 더 숨졌고 그 이유는 다름아닌 ‘폭염’으로 추정됐다. 이로 인해 유럽에서 한국의 ‘이동식 에어컨’ 수요가 급증했다.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국내 가전회사들은 이동식 에어컨 외에도 실외기 한 대로 수십 대를 돌릴 수 있는 시스템에어컨, 나아가 낡은 보일러를 대체하는 히트펌프 등의 분야까지 수출 길이 열렸다.
이동식 에어컨의 경우엔 올해 준비한 물량이 모두 팔렸고 남·서유럽을 중심으로 가정용 에어컨 매출은 지난 6월 기준 전년 대비 두 자릿수 급증했다. 더워서 힘들지만 바야흐로 K 한류(寒流)의 시대를 접하게 되니 체감 온도가 문득 낮아지는 기분이다. 에어컨 발명은 미국인 ‘윌리스 캐리어’가 했지만 그 발명품으로 전 세계인들의 폭염을 극복하게 하는 일은 한국인들의 몫이 됐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