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핵무기 못 만드나?" 안 만드는 것[여론 뒤집기]

정치

이데일리,

2026년 8월 25일, 오후 01:45



[이데일리 김성곤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최근 “북한이 57개의 매우 강력한 핵무기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과거 ‘핵보유국(Nuclear Power)’이라고 지칭했지만 구체적인 핵무기 숫자까지 언급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란전쟁 탈출구, 노벨평화상 수상, 11월 중간선거 승리의 지렛대로 북미정상회담을 추진 중인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사실상 인정한 모습이다.

2019년 6월 판문점에서 만난 북미 정상_[연합뉴스 자료사진]
2019년 6월 판문점에서 만난 북미 정상_[연합뉴스 자료사진]
대한민국은 ‘대략난감’이다. 북미대화는 지지해도 북핵은 인정할 수 없다. 1990년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은 “남북은 핵무기의 시험·제조·생산·접수·보유·저장·배비·사용을 하지 아니한다”고 규정돼 있다. 이후 비핵화 준수는 ‘남한=모범생’, ‘북한=문제아’ 구도였다. 대한민국의 선택은 크게 3가지다. 북한 핵무기의 인정 또는 제거 아니면 자체 핵무장이다.

◇“북한 핵은 자위권 행사” 북미대화·남북대화로 풀어야

북한은 1993년 NPT(핵확산금지조약) 탈퇴 이후 핵무기 개발에 올인했다. 김정은 체제에서는 ‘핵무력 완성’까지 선언했다. 정부는 같은 기간 줄기차게 북한의 비핵화를 요구해왔다. 주요 수단은 대화와 협상이었다. 이는 북한 핵무기가 국제사회 제재 해소나 북미관계 정상화를 위한 협상용 카드라는 인식에 근거를 둔 것이다. 일부 낭만 과잉의 민족주의자들은 “북한 핵무기는 통일이 되면 어차피 대한민국 소유 아니냐”고 언급할 정도다.

이는 북한의 핵개발 역사와도 맞닿아있다. 남북한 국력은 1970년대를 기점으로 남한이 역전했다. 80년대는 격차가 확대됐고 90년대 이후에는 남한의 압도적 우위였다. 현실 사회주의 붕괴 이후 남한은 소련·중국과 국교를 정상화했다. 반면 북한은 1994년 김일성 주석 사후 경제적으로 가장 어려웠던 ‘고난의 행군’ 시절을 겪었다. 대규모 아사자와 탈북자가 발생하면서 ‘북한정권 붕괴론’이 대유행했다. 궁지에 몰린 북한의 선택은 핵무기 올인이었다.

한미를 비롯한 국제사회는 북한을 어르고 달랬다. 성과도 있었다. 북미 제네바 합의, ‘남북+미·중·일·러’ 6자회담 등을 거쳐 2005년 역사적인 9.19 공동성명이 채택됐다. 요약하면 북한이 모든 핵무기와 핵 프로그램을 포기하는 대신 국제사회는 체제 보장과 경제·에너지 지원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다만 2006년 10월 북한의 1차 핵실험으로 물거품이 됐다. 이후 우여곡절이 이어지다가 2018년 북미정상회담으로 비핵화의 전기를 마련했지만 이듬해 하노이 노딜로 마무리됐다. 이제는 북한의 핵보유를 냉정하게 인정하되 핵동결이나 군축을 거쳐 추후 핵 폐기로 나아가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북한 핵이 자위권 행사’라는 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핵단추를 절대 누르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햇볕정책, 평화번영정책, 한반도운전자론, 페이스메이커론 등 민주당 정부의 북핵해법은 북미대화 중재와 남북대화를 통한 지원사격이었다. 북미·남북대화가 동시 성사됐던 문재인정부 시절 기대감이 가장 컸다. 2018년 3분기 민주평통의 ‘통일의식’ 여론조사에서는 ‘북한 비핵화 협상을 낙관한다’는 전망은 무려 75%에 이르렀다. 또 연내 종전 선언 가능성도 약 60%로 조사됐다.

다만 북핵이라는 현실적 위협 앞에서 지나친 대화 강조는 ‘안보 불감증’이라는 비판이 쏟아진다. 특히 북한이 북핵문제의 당사국으로 미국을 지목하고 남한을 매번 패싱해왔다는 점에서 우리만의 일방적인 짝사랑 해법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2018년 풍계리 핵실험장 철거 장면 (사진=연합뉴스)
2018년 풍계리 핵실험장 철거 장면 (사진=연합뉴스)
◇“김정은 체제 핵포기 없다” 대화는 시간 낭비, 해법은 군사적 옵션

국제사회에서 핵무기를 보유한 국가는 대략 9개국이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인 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중국 5개국 이외에 비공식 핵보유국으로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 북한이 거론된다. 특히 남아공, 리비아, 우크라이나 등의 사례를 보면 북한의 핵포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특히 ‘핵무기 포기 이후 체제보장이 아닌 정권붕괴’를 겪은 리비아 카다피 정권의 사례는 북한에 엄청난 충격이었다. 다시 말해 김정은 체제 아래서 핵무기 포기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북한은 90년대 이후 비핵화 합의와 파기를 반복하며 핵능력을 고도화해왔다. 2006년 1차 핵실험 이후 김정은 체제에서 4번의 추가실험은 물론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개발까지 성공했다. 이는 핵탄두 소형화와 장거리 운반수단을 확보,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다는 의미다. 특히 김정은 위원장은 예측불허의 세계 최악 독재자인 만큼 핵무기 사용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다. 한국의 군사력이 세계 5위라지만 핵무기라는 비대칭 전력 앞에서는 무용지물이다. 정부가 △킬체인(Kill Chain) △한국형 미사일방어(KAMD) △대량응징보복(KMPR) 등 사실상 ‘김정은 참수작전’을 포함한 한국형 3축 체계를 구축한 것도 이 때문이다.

만일 ‘핵보유국’을 북미대화의 전제조건으로 인정하면 북한 비핵화는 어렵다. 게다가 한국·일본·대만 등 동북아 핵도미노 현상으로 핵확산금지조약이라는 NPT 체제도 붕괴된다. 해법은 군사적 카드라는 것이다. 과거 유사 사례도 있다. 1994년 6월 1차 북핵위기 당시 클린턴 미국 행정부는 북한 영변 핵시설 폭격을 검토했지만 김영삼정부의 강력 반대로 무산된 바 있다. 국내 일부 강경론자 중에는 “클린턴 행정부의 영변 핵시설 폭격을 막지 않았다면 북한의 핵개발은 매우 어려웠을 것”이라고 아쉬워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트럼프 1기 행정부는 2017년 북한의 6차 핵실험 및 ICBM 시험발사 이후 전면전을 피하면서도 북한 핵·미사일 시설에 제한적 선제타격, 이른바 ‘코피 작전(Bloody Nose)’이 거론됐지만 2018년 북미대화 국면으로 급선회했다.

극단적 대북 강경론자들은 지난 1월 미군의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생포 작전과 지난 2월 미국과 이스라엘 양국의 이란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 참수작전 성공을 예로 들면서 북한의 핵포기는 ‘김정은 참수작전’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논리를 펴기도 한다. 다만 전쟁을 감수한 군사적 수단은 국민적 동의가 거의 불가능하다. 지난 2010년 5월 천안함 폭침사건 당시 동아일보 여론조사에 따르면, ‘북한 소행’이라는 응답은 72%였지만 ‘북한에 대한 군사적 대응’에는 무려 59%가 반대했다. 2016년 북한의 5차 핵실험 이후 아산정책연구원이 실시한 ‘유사시 대북 선제타격’ 여론조사를 살펴보면, “전쟁 위험이 있으므로 피해야 한다” 50.1%, “확전 가능성이 있지만 유사시 필요하다” 43.2%로 각각 나타났다. 전쟁을 각오하기에는 대한민국은 이제 너무 잃을 게 많은 나라가 돼버린 것이다.

김정은, 신형 고체연료 ICBM '화성-18형' 발사대 차량 공장 시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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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은 핵으로 대응해야” 남한도 독자적 핵무장 나서야

남한의 독자적 핵무장론도 있다. 비핵화 협상이나 군사적 옵션 모두 불가능한 선택인 만큼 ‘공포의 균형’ 차원에서 북한의 핵무기 사용을 원천 차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미국의 핵우산도 100% 신뢰할 수 없다는 점에서 우리 스스로 핵억지력을 확보해야 한다. 과거 60년대 미국과 영국의 ‘프랑스 핵무장’ 반대에 드골 대통령이 “미국 정부가 파리를 위해서 뉴욕을 희생하는 게 가능하냐”고 반문한 논리다. 더 나아가 통일 이후 미·중·일·러 등 4대 강국의 틈바구니 속에서의 생존전략을 고려하면 오히려 더 필수적이라는 견해도 있다.

여야 정치인 중에서는 홍준표 전 대구시장이 대표적인 핵무장론자다. 국민 여론도 날이 갈수록 우호적이다. 지난 2024년 통일연구원의 ‘통일의식’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 66%는 한국의 자체 핵무기 보유에 찬성했다. 2024년 최종현학술원의 ‘북핵 위기와 안보상황 인식’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 10명 중 7명 이상(72.8%)이 ‘한국의 독자적인 핵 개발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같은 조사에서 ‘북한 비핵화가 불가능하다’는 응답은 무려 91%였다.

대한민국은 과거 극비리에 핵개발 추진에 나선 적이 있다. 소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로 널리 알려진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의 이야기다. △‘아시아 국가들의 안보는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닉슨독트린 △월남 패망과 공산화 △지미 카터의 주한미군 철수 여파에 박 전 대통령이 극비 핵개발을 추진했지만 미국의 압력과 10.26 사태로 무산됐다. 참여정부 시절 해프닝도 빼놓을 수 없다. 국내 일부 과학자들이 핵무기의 원료인 우라늄 분리·농축 및 플루토늄 추출에 나섰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진 이후 국제사회가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지만 학술 목적의 과학실험이라는 이유로 겨우 넘어갔다.

주목할 점은 대한민국의 핵무기 제조 능력이다. 핵무기는 핵물질, 기폭장치, 장거리 운반수단 3박자만 갖추면 완성된다. 세계 최고 수준의 원자력 인프라와 기술을 고려하면 어렵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특히 우주발사체와 ICBM 기술은 거의 동일하다. 국제사회 일각에서도 나로호 발사 성공을 대한민국의 ICBM기술 보유로 해석할 정도다. 한마디로 대한민국은 핵무기를 못만드는 게 아니라 안 만드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현실적인 이유는 미국의 반대와 한미동맹 파탄, 국제사회의 경제 제재와 한국경제의 몰락 때문이다. 특히 자체 핵무장은 한반도 긴장고조에 따른 증시 폭락과 환율 폭등도 몰고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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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비핵화 협상은 북한 핵능력 고도화의 도우미였다. 군사적 옵션 선택은 한반도를 전쟁의 불바다로 만든다. 독자 핵무장론은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경제에 치명타다. 북핵문제의 본질은 간단하다. 마치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와 닮아있다. 한미 등 국제사회의 기본 입장은 “핵무기를 폐기하면 제재 완화와 체제 안정을 보장한다”는 것이다. 반면 북한은 “제재 해소, 특히 체제 안정을 먼저 보장해야 핵무기를 폐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면 북미대화의 쟁점은 비핵화가 아닌 핵동결과 군축이다. 대한민국은 머리에 핵을 이고 사는 인질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북핵 문제는 이제 정답이 없는 고차방정식이 돼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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