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보수에 어른이 없는 게 아니다

정치

뉴스1,

2026년 9월 06일, 오후 03:31

조정식 국회의장과 제22대 국회의원들이 지난 3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계단에서 후반기 단체 기념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신장식 조국혁신당 대표,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대표, 조 의장,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 우원식 전 국회의장, 박덕흠 국회부의장. 2026.9.3 © 뉴스1 신웅수 기자

"지금 보수에는 어른이 없다."

국민의힘 관계자들로부터 종종 들은 말이다. 어떤 이는 2021년 4·7 재보궐선거 참패 직후 당시 여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 지도부가 총사퇴한 사례를 꺼내기도 했다. 12·3 비상계엄으로 정권을 내주고 지방선거까지 패한 이후 구심점 없이 사분오열된 제1야당의 자조 섞인 진단으로 들렸다.

그럴 만도 하다. 국민의힘은 6·3 지방선거에서 광역단체장 16곳 중 3곳을 지키는 데 그쳤지만, 석 달이 지나도록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았다. 장동혁 대표 등 지도부는 자리를 지켰고, 사퇴를 요구하던 비당권파도 뾰족한 대안을 내놓지 못했다. 그사이 지도부는 당협위원장 직선제 등 당원 권한을 강화하는 방안을 추진했고, 중앙윤리위원회는 장 대표와 각을 세워온 현역 의원 네 명에게 '당원권 정지' 중징계 처분을 내렸다.

그런데 정말 어른이 없는 것일까. 30대에 갓 접어든 출입 기자가 만나본 국민의힘 의원들의 면면은 그렇지 않았다. 오랜 기간 몸담은 분야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정부 정책의 맹점을 짚어주는 어른을, 남들이 크게 알아주지도 않을 지역구 민원을 일일이 메모하던 어른을 봤다. 찬 바닥에 앉는 게 일상인 막내급 기자에게 늘 "밥은 먹었느냐"는 안부 인사를 건네는 어른도 있었다.

실력이나 인품을 떠나 당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진심으로 걱정하던 이들도 적지 않았다. 지방선거 패배에 대한 지도부 책임론을 제기하고, '징계 정치'가 당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우려하던 이들이었다. 당이 강성 지지층에만 매몰돼 무작정 끌려가선 안 된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다만 이런 이야기의 끝은 대체로 비슷했다. "실명은 자제해달라." 지도부나 당원의 눈총을 사 다가올 총선에서 공천받지 못할까 하는 우려로 읽혔다.

윤리위의 중징계 처분은 그 우려가 허상이 아님을 보여줬다. 이들은 국민의힘 소속으로 다음 총선 출마가 사실상 불투명해졌다. 물론 네 의원의 언행에 문제가 없었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네 명 모두 비당권파라는 점에서 윤리위가 '고무줄 징계'를 했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당 안팎에서 '정적 제거'라는 말이 나온 것도 무리는 아닌 이유다.

당심만 살피는 행태는 정반대로도 작동했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 이후 일부 의원들이 제기한 '부정선거' 의혹이 대표적이다. 선거 관리의 부실 자체는 규명돼야 마땅하지만, 이를 부정선거로 치부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특히 이들은 우리 사회에서 부정선거에 내포된 그 저의를 잘 알면서도 강성 지지층의 호응을 위해 손쉬운 방법을 택했다. 침묵하는 의원과 잘못된 목소리를 알면서도 낸 의원은 정반대로 보이지만, 둘 다 민심보단 당심만을 고려한 결과라는 점에선 다르지 않다.

당심에 갇힌 결과는 지지율로 드러났다. 지난 4일 한국갤럽 조사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운영 긍정 평가는 40%로 취임 후 최저치를 갈아치웠다. 다른 조사에선 30%대까지 추락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여전히 민주당에 뒤처져 있다. 정부·여당이 실책을 되풀이해도 국민 눈에는 야당이 대안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민심을 당심보다 우위에 둬야 한다. 정치인이 자기 생존 앞에서 소신을 접는 것은 흔한 일이다. 그래서 누군가의 용기에 기대는 대신 올바른 소리의 대가를 낮추는 편이 현실적이다. 이를 위해 공천 과정에서 당 대표와 당원의 영향력을 줄여야 한다. 또 말이 아닌 실천으로 윤리위의 독립성을 확보하고, 징계에 있어선 누구에게나 똑같은 잣대가 적용돼야 한다.

집권 여당의 폭주를 막는 것도 결국 야당이 제 몫을 할 때 가능하다. 야당이 잘 돼야 여당도 잘 된다. 여야 간 상호 견제·감시 기능이 제대로 작동할 때 일방 독주에 제동이 걸리고, 국익에도 도움이 된다는 의미다. 국민의힘이 지금 해야 할 일은 어른을 찾아 나서는 것이 아니라, 어른이 '바른말'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ssh@news1.kr

추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