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예지, 틈의 사유] 배치를 바꾸면 시작되는 이야기들

연예

MHN스포츠,

2025년 4월 03일, 오후 04:24

 한동안 ‘잘 아는’ 연주자들과만 무대에 올랐다. 내가 잘 아는 연주자들이기도 했고, 나를 잘 아는 연주자들이기도 했다. 그들은 내가 어떤 실수를 해도 기꺼이 그 실수를 무마해 줄 준비가 되어 있었으며, 나 또한 그들의 연주에 익숙했기에 당황할 일이 적었다. 당황할 일이 적다는 건 실수의 확률이 작아진다는 것과 같은 의미였다. 늘 나를 괴롭히는 무대 공포 또한 훨씬 덜했다. 그래도 떨리긴 매한가지였지만, 가사를 잊거나, 박자를 놓치고, 틀린 음을 부른다 해도 기댈 곳이 있다는 안정감은 무대에 오르는 일이 온전히 공포는 아니도록, 단 몇 퍼센트일지라도 즐거움이란 게 함께 하도록 만들어 주었다.

하지만 ‘안정’이라는 말의 또 다른 의미는 ‘지루함’이었다. 다시 말해 재미가 사라졌다. 노래를 부르는 일 자체에 대한 지루함이, 실력 향상 곡선에서의 지루함이 찾아왔다. 그간 될 수 있는 한 피해 다녔던 ‘잘 모르는’ 연주자들과의 무대에서 힌트를 얻었다. 그들은 내 노래를 모르고, 나도 그들의 연주를 몰랐다. 작은 사건에도 적잖이 당황했고, 이를 실수로 귀결하지 않기 위해서는 더욱 예민하게 듣고 반응해야 했다. 지루함은 당장 사라졌다.

 재즈 클럽 연주의 많은 수는 사전 리허설을 거치지 않고 악보나 구두 약속만을 가지고 진행된다. 악보는 실제 악보일 수도 있고, 연주자의 머릿속에 있는 악보일 수도 있다. 이렇게 리허설 없이 즉흥적으로 진행되는 연주를 잼 세션(Jam Session)이라고 하는데, 이는 본격적인 모던 재즈의 시기부터 재즈의 주요한 연주 방식이었다. 앞서 ‘잘 아는’ 연주자들과의 무대는 재즈 클럽 연주라 해도, 나의 재즈 레퍼토리들을 이미 연주해 본 적이 있는 사람들과의 연주였으므로 사전 리허설을 진행한 쪽에 가까웠다. 리허설을 거치면 약속은 좀 더 구체적인 계획이 되고, 음악적 틀은 체화(體化)된다. 당연히 사운드의 구조는 좀 더 탄탄해진다. 들뢰즈의 말을 빌리면 ‘홈 패인 공간’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홈 패인 공간은 말 그대로 홈이 파인 흔적이 있어 길을 잃을 확률이 적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하며, 궤도를 이탈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해도 돌아갈 방향을 알고 있다. ‘홈 패인 공간’의 반대는 ‘매끄러운 공간’이다. 매끄러운 공간에서는 우연한 사건들이 의미를 만들어 낸다. 미리 정해진 틀이나 방향성도 없으며, 끊임없이 변화하고,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공간이다. 재즈 연주는 홈 패인 공간과 매끄러운 공간 사이의 스펙트럼을 자유롭게 오간다.

 재즈를 떠올리면 자유라는 이미지에 방점을 찍는 경우가 많은데, 의외로 재즈는 엄격하게 유산을 계승하고, 규칙을 지키는 음악이다. 재즈 안에는 재즈 연주자와 감상자가 공유하는 어법과 관습이 있으며, 즉흥연주 또한 약속과 규범을 기반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니까 재즈 즉흥연주는 일종의 틀 안에서 작곡자가 선택하지 않았던 또 다른 가능성을 찾아내는 것, 재현과 창작 사이를, 즉 홈 패인 공간과 매끄러운 공간을 넘나드는 행위인 것이다.

 스탠더드 재즈를 연주한다고 해보자. 주어진 악곡은 하나의 영토가 된다. 재즈 연주자들은 이 영토로부터 탈주하여 새 영토로의 확장을 꾀한다. 그러나 이는 주어진 영토로부터의 완전한 탈주라기보다는 그 경계를 지켜 가며, 2차원적 면적 대신 3차원적 부피를 확장하는 것이라고 상상해 본다. 연주자들은 주어진 영토의 홈을 그대로 따라가되, 가끔은 홈을 가로지르거나, 홈의 층위를 확장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낸다. 주어진 영토는 평면적이지만, 연주는 3차원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점차 입체화되어 가는 것이다. 재즈가 “차이를 동반한 반복”이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재즈의 평면은 끊임없이 반복되지만, 그 부피는 단 한 번도 동일하지 않다. 그래서 매번의 연주는 유일하다.

 아무튼 어느 날부터 나는 ‘잘 모르는’ 연주자들과의 무대를 기꺼이 만들고 있었다. 내 연주 환경의 배치가 끊임없이 달라지도록 노력했다. 좀 더 많은 사건과 마주치길 원했다. 여기서 사건이란 연주 중의 예측 불가능한 자극들을 의미한다. 이 낯선 마주침은 나를 성장시켰다. 이는 곧 나라는 영토를 확장하는 일이기도 했다. ‘잘 모르는’ 연주자들과의 만남 속에서 발생하는 ‘잘 모르는’ 기호를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고, 그중 어떤 것들은 새롭게 체화되고, 또 어떤 것들은 버려졌다. 한동안 완성도 면에서 만족스러운 연주를 할 수는 없었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더 이상 노래하는 일이 지루하지 않다는 것이, 매번의 연주에서 새로운 세계를 만난다는 것이 설렜다. ‘잘 모르는’ 연주자들은 그 자체로 나에게 새로운 가능성의 공간이었다. 주어진 영토 안에서 서로의 세계가 충돌한다. 그 삐걱거림 사이를 미끄러지듯 움직이고, 때로는 한 발 물러서 관조했다. 예전에는 내 연주가 틀렸는지 아닌지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사건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맥락 그 자체가 중요했다. 그 맥락 속에서 나는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 어떤 언어를 선택할 것인지, 하나의 의미로 귀결할 건지 혹은 또 하나의 새로운 틈을 찾아낼 것인지에 대한 순간순간의 판단이 연주의 재미 그 자체였다.

 내가 늘 말하고자 하는 ‘재즈적 사유’는 비단 음악에 관한 것만은 아니다. 연주를 통해 시작된 사유가 결국엔 우리의 삶 전체와 맞닿아 있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반복되는 일상과 익숙한 관계, 예측 가능한 상호작용들 안에서 삶은 홈 패인 공간처럼 납작해져 있다. 납작한 삶이 지루하다면 우리는 배치를 바꿔야 한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야 하고, 새로운 환경을 찾아야 한다. 맥락이 달라지면 나 자신도 변화할 수밖에 없다. 익숙한 동료들을 떠나 낯선 사람들과 연주하면서 일어난 음악적 변화도 의미가 있었지만, 내 삶의 방향성 또한 달라졌다. 그날그날의 연주가 좀 더 재밌기 위해서는 내 소심한 성격이 태도에 고스란히 드러나서는 안 됐다. 모든 일에 좀 더 적극적이어야 했다. 먼저 다가가야 했고, 그 다가섬이 이왕이면 어색하지 않아야 했다. 가끔은 내 의견을 밀어붙이는 일도 필요했으며, 때로는 한없이 너그러운 사람이 되어야 했다. 나와는 다른 리듬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조심스럽게 자리를 모색하면서도, 나의 리듬을 잃지 않아야 했다. 연주의 배치를 바꾸는 일, 이는 결국 내 삶의 방식을, 더 나아가 나의 존재 방식을 변화시키는 일이었다. 재즈를 통해 나를 조율해 갔다. 일상의 태도에서, 관계의 방식에서, 모든 것에서 나는 어느새 재즈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사유는 음악을 넘어 삶의 리듬이 되었다.

 요즘은 내 안의 배치를 바꾸는 일에 집중한다. 익숙함 안의 한쪽 틈에서 낯섦을 찾아내는 일, 수없는 반복 안에서 작은 차이를 사유하는 일을 통해 내 음악의 부피를 확장해 가는 중이다. 고이지 않고 끝없이 흘러가는 것, 내가 믿는 재즈적 사유의 핵심이다.

 

 칼럼니스트 남예지
 칼럼니스트 남예지

 

칼럼니스트 남예지

재즈보컬리스트 / 공연기획사 ‘재즈올로지’ 대표
중앙대학교 글로벌예술학부 초빙교수

서울재즈아카데미 졸업, 중앙대 심리학 학사 및 실용음악 석사, 고려대 문화콘텐츠학 박사.
4장의 정규앨범과 다수의 프로젝트·OST 참여, 제22회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재즈보컬 음반상 수상.
저서 '재즈 끝나지 않는 물음', 재즈와 문화콘텐츠 관련 다수 논문 집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