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픽 리뷰] 무대서 피 흘리고 잠수하고...'렛미인', 여운이 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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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HN스포츠,

2025년 7월 13일, 오전 07:00

(MHN 장민수 기자) 아름답고 잔혹하다. 잔잔하지만 강렬하다. 상반된 매력으로 더욱 짙은 여운을 남기는 연극 '렛미인'이다.

'렛미인'은 뱀파이어 소녀 일라이와 학교 폭력에 시달리는 외로운 소년 오스카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다. 욘 아이비데 린드크비스트 작가의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한다. 스웨덴과 미국에서 영화로도 제작된 바 있다. 

연극으로는 2013년 스코틀랜드 국립극단이 제작해 선보였다. 존 티파니 연출, 잭 쏜 작가 등이 창작진으로 참여했다. 국내에서는 지난 2016년 초연한 후, 약 9년 만에 돌아오게 됐다. 앞서 지난 2020년에 공연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로 취소된 바 있다.

무대 구성과 연출 방식이 먼저 시선을 사로잡는다. 무더운 여름 공연되고 있지만, 무대에는 한기가 감돈다. 눈 덮인 자작나무 숲을 보는 것만으로도 서늘함이 몰려온다. 

무대에는 오스카와 일라이가 주로 만나게 되는 정글짐이 버티고 선다. 그 외 장소를 표현할 소파, 침대, 캐비닛, 테이블 등은 배우들이 수시로 밀고 끌어 세팅한다. 리얼리티에서는 벗어난 미니멀한 구성이다. 

다소 어색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아주 영리한 선택이다. 극은 영화처럼 장면 전환이 상당히 많다. 장소를 무대 세트로 디테일하게 표현하려 했다면 계속되는 전환이 피로감과 지루함을 안겨줄 수도 있다. 미니멀한 구조로 인해 속도감을 유지하면서 효과적인 전개가 가능하다. 더불어 작품 특유의 기묘한 분위기까지 한층 강조되는 효과가 있다.

뱀파이어를 소재로 하는 만큼 잔혹한 장면들이 적지 않다. 이 지점에서는 리얼리티를 최대한 가져가고자 시도했다. 일라이의 흡혈 및 하칸의 살인 장면 등 피가 낭자하는 장면에서 실제 붉은 핏줄기가 배우의 몸을 감싼다. 또한 실시간으로 물이 채워지는 수조, 그 속에 들어가 숨을 참는 배우의 연기는 불안과 공포를 극대화하기도.

작품을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라면 순수와 잔혹함 아닐까 싶다. 흰 눈과 새빨간 피의 대비에 더해 몽환적인 음악과 안무가 '렛미인' 특유의 분위기를 극대화한다. 적막 속 강렬함이 인상적인 극이다.  

늙지 않고 불멸의 삶을 사는 고독한 소녀,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늘 외로운 소년. 의지할 곳 없는 이들의 사랑은 서로에게 위로이자 구원이다. 외로움에 대한 공감, 순수한 사랑이 주는 아름다움이 있다. 

그러나 오스카 이전에 일라이를 사랑한 하칸의 최후를 보노라면 오스카의 미래가 겹치며 잔인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비참한 끝이 예정된 사랑의 시작. 관객은 순수한 사랑에 매혹되고, 잔인한 운명에 공포를 느끼게 된다. 그 상반된 감정이 주는 오묘함이 짙은 여운으로 남는다.

이번 시즌 일라이 역은 권슬아, 백승연, 오스카 역은 안승균, 천우진, 하칸 역은 조정근, 지현준이 캐스팅됐다.

이중 안승균은 초연에 이어 재차 역할을 따냈다. 경력자답게 캐릭터 해석과 소화력이 뛰어나다. 오스카 특유의 순수하고 엉뚱한 매력을 잘 그려냈다. 황석희 번역가의 재치 있는 대사와 어우러져 웃음을 자아내는 순간이 많다.

재연에 출연 예정이었으나 무산됐던 권슬아는 드디어 일라이로 무대에 서게 됐다. 가장 큰 장점은 움직임. 뱀파이어로서의 뛰어난 신체 능력, 기괴한 움직임 등의 표현이 인상적이다. 여기에 하칸 역 조정근의 체념과 갈망을 오가는 감정 연기도 훌륭하다.

단 하나 아쉬운 점을 꼽자면 10대 초중반 소년, 소녀라는 설정에 비해 배우들이 다소 성숙해 보인다는 것. 그럼에도 전체적인 완성도가 상당히 뛰어난 작품이니, 그 정도 아쉬움쯤은 용인될 터다.

한편 '렛미인'은 오는 8월 16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공연된다.

 

사진=신시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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