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HN 홍동희 선임기자) 700억 원의 제작비, 현빈과 정우성이라는 당대 최고의 투톱, 그리고 '내부자들' 우민호 감독의 만남. 디즈니플러스 오리지널 시리즈 '메이드 인 코리아'는 2025년 대미를 장식할 최고의 기대작으로 꼽혔다. 하지만 막상 뚜껑이 열리자 대중의 반응은 찬사와 당혹감 사이에서 격렬하게 요동쳤다. 그 폭풍의 눈 한가운데에는 배우 정우성이 있었다.
정우성의 '불협화음', 미스캐스팅인가 철저한 계산인가
시리즈 초반, 검사 '장건영'으로 분한 정우성의 연기는 낯설다 못해 불편하다는 반응을 자아냈다. 과장되게 껄껄거리는 작위적인 웃음소리, 상대를 윽박지르는 연극적인 발성,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제스처는 우리가 알던 '중후하고 멋진 정우성'의 이미지와 대척점에 있었다.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몰입이 깨진다", "힘이 너무 들어갔다", "캐릭터 해석에 실패한 것 아니냐"는 혹평이 쏟아지기도 했다.
그러나 6화까지의 완주를 마친 시점에서 다시 복기해 보면, 이 '불편함'은 우민호 감독과 배우가 의도적으로 설계한 정교한 덫이었음을 알게 된다. 장건영은 1970년대라는 야만의 시대를 관통하며 정의를 부르짖지만, 그 내면 깊숙한 곳에는 친일 행적을 가진 아버지에 대한 부끄러움과 콤플렉스가 똬리를 틀고 있는 인물이다.
우민호 감독은 인터뷰에서 장건영의 과장된 행동이 "정신과 전문의의 자문까지 구해 설계한 방어기제"라고 밝혔다. 거대한 권력과 폭력 앞에서 맨정신으로 버티기 힘든 검사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낸 '광기 어린 페르소나'인 셈이다.
실제로 시리즈 후반부, 특히 6화에서 백기태(현빈 분)와 마주한 취조실 장면에서 정우성의 연기는 결을 달리한다. 아버지의 그늘과 자신의 한계를 직면했을 때, 초반의 작위적인 웃음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공허하고 서늘한 눈빛만이 남는다.
이 지점에서 관객은 비로소 그 거슬렸던 '오버 액션'이 장건영이라는 인물이 쓰고 있던 필사적인 가면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이는 단순한 연기력 논란으로 치부하기엔, 배우 정우성의 과감하고 도발적인 도전이라 평할 만하다. 그는 멋짐을 포기하고 기꺼이 시대의 광대가 되기를 자처했다.
'차가운 욕망' 현빈, 우민호의 페르소나가 되다
정우성이 뜨겁게 펄떡이는 활화산이라면, 백기태 역의 현빈은 차갑게 얼어붙은 빙하 같다. 현빈은 이번 작품에서 감정을 철저히 거세한 채, 오직 이익과 생존만을 위해 움직이는 기계적인 악인을 완벽하게 소화했다.
1970년대 클래식한 슈트를 입고 "국가는 나의 수익 모델"이라 믿는 그의 모습은 우민호 감독의 전작 '마약왕'의 이두삼이 가졌던 파멸적 광기와는 다른, 세련된 '비즈니스맨 빌런'의 전형을 보여준다.
현빈의 절제된 연기는 정우성의 폭발적인 에너지와 충돌하며 극의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는 버팀목이 된다. 특히 대사보다 눈빛과 미세한 근육의 떨림으로 감정을 전달하는 그의 연기는 자칫 과잉으로 흐를 수 있는 드라마의 톤을 안정적으로 잡아주었다. 해외 매체들이 "현빈의 인생 캐릭터 갱신"이라며 호평을 쏟아낸 이유다. 그는 가장 매력적인 악당의 얼굴로 시대를 조롱한다.
'내부자들'의 리얼리즘과 '남산의 부장들'의 미장센
'메이드 인 코리아'는 우민호 감독의 이른바 '욕망 3부작'의 집대성이자 확장판이다. 정치 깡패와 검찰의 유착을 다룬 '내부자들'의 날 선 리얼리즘, 권력의 심장부를 해부한 '남산의 부장들'의 차가운 심리 묘사, 그리고 '마약왕'의 화려한 시대적 미장센이 이 시리즈 안에 모두 녹아있다.
여기에 방점을 찍은 것은 조영욱 음악감독의 스코어다. 그는 무겁고 비장한 시대극의 문법을 따르는 대신, 경쾌하고 세련된 재즈 선율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피가 튀고 배신이 난무하는 70년대의 풍경 위로 흐르는 우아한 재즈는 상황의 비극성을 역설적으로 강조하며 시청각적 쾌감을 극대화한다.
물론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방대한 서사를 6개의 에피소드에 압축하다 보니 초반 전개가 다소 불친절하게 느껴질 수 있고, 우도환이나 원지안 등 매력적인 조연 캐릭터들의 활용이 제한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이는 이미 제작이 확정된 시즌 2를 위한 포석으로 이해할 수 있다.
미완의 대결, 시즌 2가 기대되는 이유
시즌 1의 결말은 닫힌 해피엔딩이 아닌, 더 큰 파국을 예고하는 '열린 지옥문'이다. 장건영은 백기태를 잡기 위해 모든 것을 걸었지만, 시대는 여전히 악인의 편에 서 있는 듯 보인다. "시즌 1 끝에 누군가는 분노에 차게 된다"는 정우성의 말처럼, 6화 엔딩에서 보여준 장건영의 좌절과 분노는 시즌 2의 강력한 동력이 될 것이다.
결과적으로 '메이드 인 코리아'는 배우들의 연기 변신에 대한 호불호 논란을 넘어, 1970년대라는 대한민국 현대사의 가장 뜨거운 순간을 스타일리시하게 복기해 낸 수작이다. 정우성의 '낯선 얼굴'은 결국 시대가 만든 괴물의 초상이었고, 현빈의 '차가운 얼굴'은 그 시대를 살아남은 생존자의 초상이었다.
이제 무대는 1980년대로 넘어간다. 광기의 시대를 통과한 두 남자가 다음 시즌에서 어떤 얼굴로 다시 마주할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이들의 대결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사진=MHN DB,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