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HN 홍동희 선임기자) 스크린 속 소년의 눈동자가 풀리고, 가녀린 손끝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영화 '슈가'의 중반부, 저혈당 쇼크가 찾아온 12살 동명의 모습에 숨죽이고 있던 객석의 공기가 일순간 멈췄다. 그건 단순히 아픈 척하는 아역 배우의 연기가 아니었다. 몸에 에너지가 끊기는 찰나의 공포, 그 아득해지는 순간을 온몸으로 견뎌내고 있는 한 '배우'의 놀라운 몰입이었다.
우리는 드라마 '눈물의 여왕'에서 여주인공의 기억 속에 박제된 슬픈 오빠로 그를 기억한다. 하지만 2026년 1월, 배우 고동하는 그 박제된 기억을 찢고 나와, 마운드 위에서 씩씩하게 내일을 꿈꾸는 소년이 되어 우리 앞에 섰다.
영화 '슈가'는 1형 당뇨병 판정을 받은 아들을 위해 세상을 바꾸려는 엄마 미라(최지우 분)의 이야기인 동시에, 평생 주삿바늘과 친구가 되어야 하는 소년 동명의 성장담이다. 자칫 뻔한 눈물 짜기 신파로 흐를 수 있었던 이 영화가 단단하게 땅을 딛고 설 수 있었던 건, 주인공을 맡은 고동하의 놀라운 진정성 덕분이다.
고동하는 이번 배역을 위해 성인 연기자들도 혀를 내두를 만한 준비 과정을 거쳤다고 한다. 그는 촬영 전 실제 1형 당뇨를 앓고 있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귀담아들었다. 단순히 "학교 화장실에 숨어서 몰래 주사를 맞아야 하는 부끄러움, 친구들과 떡볶이 한 접시를 마음 편히 먹지 못하는 소외감을 12살의 마음으로 이해하려 애썼다. 영화 속에서 그가 인슐린 펌프를 능숙하게 만지고, 혈당 수치에 따라 미묘하게 달라지는 표정을 지어 보인 건 이런 치열한 공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의 연기에는 억지로 짜낸 동정심이 없다. 대신 그 아픔을 겪는 당사자에 대한 존중이 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병약함과 대비되는 단단함이다. 극 중 동명은 야구팀의 에이스 투수를 꿈꾼다. 자신의 역할에 힘을 싣기 위해 그는 촬영 몇 달 전부터 매일 야구장을 찾아 공을 던졌다고 한다. 마운드 위에서 그가 던지는 공은 단순한 야구공이 아니라, 세상의 편견을 향해 꽂아 넣는 묵직한 돌직구 같았다.
대선배인 최지우와의 호흡에서도 그는 전혀 밀리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최지우로 하여금 "억지로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모성애가 끓어오르게 만들었다"고 고백하게 할 만큼 그는 훌륭한 파트너였다. 촬영장에서 감정 연기를 앞두고 긴장한 그를 위해 최지우가 피아노를 쳐주었다는 일화는 두 배우가 쌓은 신뢰의 깊이를 보여준다. 엄마의 보호만 받던 여린 아들에서, 점차 엄마의 슬픔을 이해하고 위로하며 성장해가는 과정을 그는 섬세하게 그려냈다.
고동하는 그동안 '황후의 품격'이나 '눈물의 여왕', '보쌈-운명을 훔치다'를 거치며 짧은 등장만으로도 시청자를 울리는 재주를 증명해 왔다. 그러나 영화 '슈가'는 그가 단순히 '울리는 재주'를 가진 아역이 아니라, 한 작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끌고 갈 수 있는 '주연 배우'임을 선포하는 무대다.
12살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깊이 있는 눈빛, 그리고 타인의 고통을 진짜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는 진지한 태도. 배우 고동하는 이제 누군가의 아역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한국 영화계와 방송계가 주목해야 할 '괴물 신예'로 자신의 이름을 확실히 새길 것이다.
영화가 끝나고 불이 켜질 때, 관객들은 1형 당뇨라는 낯선 병명 대신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공을 던지는 소년의 땀방울을 기억하게 될 것이다. 고동하가 던진 희망의 스트라이크가 스크린을 넘어 우리의 가슴 한복판에 꽂혔다.
사진=MHN DB, tvN, 스튜디오타겟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