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지태 "천만 배우보다 중요한 건 숫자 이상의 가치" [영화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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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BC연예,

2026년 2월 01일, 오후 12:00

조선 6대 왕 단종의 마지막 발자취를 그린 영화 '왕과 사는 남자'에서 당대 최고의 권력자 한명회를 연기한 배우 유지태를 만났다. 조선 왕실의 적정자였던 이홍위(단종)을 내쫓고 수양대군을 왕좌에 앉힌 일등공신, 왕보다 더 큰 권력을 가졌던 한명회를 유지태는 거인 같은 체구와 압도적인 무게감, 에너지로 그려냈다. 하지만 인터뷰 내내 그가 가장 많이 이야기한 건 캐릭터의 악의나 성취가 아니라, 영화라는 매체 자체에 대한 애정과 신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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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태는 자신이 걸어온 필모그래피에 대해 비교적 담담하게 말한다. "상업적으로 잘 된 작품들을 보면, 제가 맡았던 역할들이 대부분 비열하거나 악인, 혹은 중심 축을 담당하는 인물들이었다"고 말했다. 그런 이미지가 반복되며 대중에게 각인된 것도 사실이지만, 그는 그것을 숙명처럼 받아들이기보다는 배우로서 늘 경계해왔다고 했다. "제가 연기 인생에서 가장 주의했던 게 타이프 캐스팅이었다. 한 가지 얼굴로만 소비되는 배우가 되는 건 피하고 싶었다"는 설명이다.

그는 스스로를 '스펙트럼이 넓은 배우'라고 표현했다. 멜로와 악역, 상업영화와 독립영화, 단편과 장편을 가리지 않고 선택해 온 행보 역시 그 연장선에 있다. 멜로 영화 '봄날은 간다'와 '동감'으로 대중적인 사랑을 받는 한편, '올드보이'의 이우진, '비질란테'와 '꾼' 속 인물들처럼 강렬한 악역을 통해 전혀 다른 얼굴을 각인시켰다. 동시에 '자전거 소년', '마이 라띠마' 같은 독립·예술영화는 물론, 자신이 연출한 단편과 장편 작업까지 병행하며 배우와 감독의 경계를 넘나들어 왔다.

"천만 배우라는 타이틀을 아직 가져본 적은 없다"고 웃으며 말했지만, 곧이어 그는 "영화는 숫자를 넘는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단호하게 덧붙였다. 실제로 '올드보이'는 국내 관객 수 약 350만 명에 그쳤지만, 개봉 이후 시간이 흐를수록 평가가 축적되며 지금까지도 전 세계 영화 팬들에게 회자되는 작품으로 남아 있다. 유지태는 해당 작품 속 이우진 캐릭터로 해외 영화 사이트와 커뮤니티에서 선정한 '역대 영화 빌런 순위'에서 16위에 선정되었고 이는 아시아 배우 중 유일한 기록이다. 그는 이 결과에 대해 “제가 잘했다기보다, 감독이 캐릭터를 잘 만든 덕분”이라며 공을 돌렸지만, 숫자와 순위를 넘어선 영화의 생명력을 증명하는 사례라는 점에서는 의미가 분명하다.

"그 숫자가 제가 잘해서라기보다는, 감독님이 잘 그려주신 덕분"이라고 말했지만, 유지태는 분명히 알고 있었다. 관객 수와 영화의 생명력은 반드시 비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는 "지금은 온라인 시대가 됐다. 영화는 개봉 당시의 스코어로만 평가할 수 있는 매체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요즘도 젊은 관객들이 '동감'이나 '봄날은 간다' 같은 영화를 새롭게 발견하고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고 했다.

감독이자 교육자로서의 시선도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그는 "이 산업은 인기에 편승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 배우나 감독 모두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그런 불안을 다독여주는 건 결국 영화라고 했다. 유지태는 "켄 로치 감독이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그리고 '우리들' 같은 영화를 보면 '아, 저렇게 해도 되는구나' 싶어진다"고 말했다. 이어 "세상이 아무리 빠르게 돌아가고, 순위와 숫자로만 평가되는 구조 안에 있어도 그런 영화들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게 저한테는 되게 중요하다"며 "영화는 관객 수 이상의 가치를 가질 수 있다는 걸 다시 확인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그는 "그런 영화들을 보면 마음이 좀 놓인다. 저한테는 일종의 안전지대 같은 느낌"이라고 표현했다.

이런 생각은 그가 독립영화 상영 모임을 꾸준히 이어가는 이유와도 맞닿아 있다. 유지태는 "제가 극장 세대이고, 부산국제영화제 세대"라고 말했다. 학생 시절부터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영화를 이야기하고, 술자리에서도 끝없이 영화를 이야기하던 시간이 자신에게는 가장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고 했다. "요즘은 그런 자리가 많이 사라진 것 같아서, 그럼 내가 하면 되겠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그의 일상 역시 영화 중심으로 짜여 있다. 방송 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에서 화제가 됐던 '시간 절약형 식단' 역시 같은 맥락이다. 그는 "영화가 너무 재미있어서 밥 먹는 시간이 아까웠다"고 말했다. 운동, 대본, 언어 공부까지 병행해야 하는 일정 속에서 식사는 효율의 영역이 됐다. "불 쓰는 시간이 아까워서 전자레인지로 먹기 시작했다"며 웃었지만, 그 말에는 연기와 영화에 대한 그의 몰입도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유지태는 여전히 자신이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배우로서, 감독으로서, 교육자로서의 역할은 달라졌지만, 영화 앞에서만큼은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같은 마음이라는 것이다. 그는 "지금도 젊은 배우들에게 늘 이야기한다. 중압감이나 압박감보다는, 지금 자신이 가진 에너지를 잘 지키라고. 그 고유성이 결국 스크린에 남는다"고 말했다.

2월 4일 개봉하는 '왕과 사는 남자'는 1457년 청령포, 마을의 부흥을 위해 유배지를 자처한 촌장과 왕위에서 쫓겨나 유배된 어린 선왕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하지만 한명회를 연기한 유지태의 말과 태도를 따라가다 보면, 이 영화는 또 다른 질문으로 이어진다. 숫자와 순위의 시대에, 영화는 무엇으로 남는가. 유지태는 그 질문을 여전히 포기하지 않은 배우였다.

iMBC연예 김경희 | 사진출처 쇼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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