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HN 홍동희 선임기자) "자연스러운 만남 추구(자만추) 같은 소리 하네."
드라마 속 주인공의 건조한 한마디가 안방극장을 서늘하게 찔렀다. JTBC 새 토일드라마 '미혼남녀의 효율적 만남'이 방송 첫 주부터 30대 시청자들의 격한 공감을 얻으며 심상치 않은 입소문을 타고 있다.
지난달 28일 첫선을 보인 이 드라마는 1회 전국 시청률 3.1%로 가볍게 출발해, 2회에서는 최고 4.7%까지 치솟으며 쾌조의 스타트를 끊었다. 타리 작가의 인기 웹툰을 원작으로 한 이 12부작 미니시리즈는, 그동안 한국 로맨스 드라마가 지독하게 팔아왔던 '운명적 사랑'이라는 판타지를 과감히 박살 낸다. 대신, 서로의 조건과 스펙을 꼼꼼하게 저울질하는 철저한 '인위적 만남(인만추)'의 생태계를 까발리며, 지극히 현실적이고 뼈아픈 현대인들의 연애 민낯을 스크린에 올려놓았다.
극의 중심에는 더 힐스 호텔 구매팀 선임 이의영(한지민 분)이 있다. 올해 서른셋인 그녀도 처음엔 낭만이 있었다. 대학 후배이자 직장 동료인 강도현(신재하 분)과의 운명적인 사내 연애를 남몰래 꿈꿨다. 하지만 도현이 풋풋한 인턴사원 심새벽(김소혜 분)에게 반해 자신에게 '오작교' 역할을 부탁하자, 의영이 오랫동안 품어온 소박한 낭만은 처참하게 짓밟힌다.
깊은 상실감에 빠진 의영이 선택한 새로운 돌파구는 감정 소모를 철저히 덜어낸 '효율적인 만남'이다. 직장 상사의 주선으로 소개팅 시장에 뛰어든 그녀는 상대를 앞에 두고 노골적으로 연봉과 스펙을 따져 묻는다. 한없이 속물 같아 보이지만, 시청자들은 그런 의영에게 차마 돌을 던지지 못한다. 서른셋이라는 나이가 주는 막연한 불안감 속에서, 더 이상 상처받고 싶지 않은 30대 직장인의 방어기제가 '효율'이라는 차가운 갑옷으로 나타났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이 서늘한 리얼리티를 완벽하게 납득시키는 건 단연 주연 배우 한지민의 내공이다. 그간 수많은 로맨틱 코미디에서 사랑스럽고 무해한 매력을 뽐냈던 '로코퀸'은 없다. 이번 작품에서 그녀는 업무에 찌들고 상처받기 두려워 잔뜩 날이 선, 팍팍한 30대 직장인의 얼굴로 완벽히 갈아입었다.
실연의 아픔 앞에서도 애써 평온한 척 출근하는 건조한 눈빛, 소개팅 자리에서 조건을 깐깐하게 따지면서도 내면의 취약함을 다 숨기지 못하는 미세한 떨림은 감탄을 자아낸다. 특히 2회의 놀이터 씬은 한지민의 진가가 폭발한 대목이다. 소개팅 대타로 나온 신지수(이기택 분)의 돌발 행동에 찰나의 강렬한 떨림을 느끼고도, 이를 이성으로 짓누르며 "단순한 성욕"이라고 단호하게 선을 긋고 돌아서는 장면은 압권이었다. 그녀는 머리와 가슴이 충돌하는 그 혼란스러운 찰나를 완벽하게 낚아챘다.
의영이 단단하게 쌓아 올린 '효율주의' 세계관을 냅다 흔들어버리는 두 남자의 대비도 핵심 관전 포인트다.
박성훈이 연기하는 송태섭은 조건과 효율이 만들어낸 무결점의 이성주의자다. 건실한 목공 회사 대표이자 바른 생활 사나이인 그는, 의영과 첫눈에 엇갈린 후에도 피곤한 '썸'의 과정을 싹둑 자르고 "결혼을 전제로 만나자"며 흔들림 없는 안정감을 들이민다. 박성훈은 특유의 묵직한 목소리로 삭막하지만 치명적인 '어른들의 로맨스' 텐션을 훌륭하게 살려낸다.
반면, 신지수 역의 이기택은 의영의 철벽을 무너뜨리는 '통제 불능의 본능' 그 자체다. 커밍아웃을 못한 동성애자 친구를 대신해 소개팅에 나온 그는 뼛속까지 자유로운 영혼이다. 스펙을 따지는 의영에게 무례하게 굴면서도, 묘한 긴장감과 도파민을 뿜어내며 의영이 애써 억눌렀던 감정을 격렬하게 흔들어 놓는다. 완벽한 스펙의 태섭과 거침없는 본능의 지수 사이에서 방황하는 의영의 모습은, 머리와 가슴 사이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오늘날 우리들의 씁쓸한 자화상이다.
총 12부작이라는 빠른 속도감 속에서 드라마가 원작 웹툰과 어떻게 다른 결말을 맺을지도 초미의 관심사다. 원작에서는 평생 지각 한 번 없던 태섭이 의영을 위해 회사를 뛰쳐나오는 사건을 계기로, 의영이 화려한 포장지 대신 익숙하고 따뜻한 '가나 초콜릿' 같은 태섭을 선택하며 훈훈하게 마무리된다. 하지만 영상 매체 특유의 끈적한 화학작용이 극대화된 드라마는 시청자들에게 전혀 다른 결말의 가능성마저 열어두고 있다.
결국 '미혼남녀의 효율적 만남'은 로맨스라는 달콤한 외피를 뒤집어쓴 채, 가성비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사랑의 진짜 가치'를 묵직하게 묻는다. 감정마저 손익계산서에 올려놓고 따지는 서늘한 세상 속에서, 이의영이 어떻게 스스로를 가둔 갑옷을 벗고 진심을 향해 나아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매주 주말 밤, 배우 한지민이 온몸으로 써 내려갈 이 뼈아프고도 매혹적인 '진짜 연애' 이야기에 우리가 채널을 고정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사진=MHN DB, JTBC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