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더빙 타고…유럽·남미 파고드는 ‘K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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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2026년 4월 09일, 오전 06:00

[이데일리 스타in 최희재 기자] “1인치의 장벽이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드라마 ‘옥씨부인전’ 속 천승휘(추영우 역)의 명대사(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봉준호 감독이 2020년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감독상·각본상·국제장편영화상 등 4관왕을 거머쥔 뒤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다. 1인치의 장벽은 영어권 관객이 자막이 필요한 비영어권 영화를 잘 보지 않는 걸 빗대 표현한 말이다. 그의 말처럼 인공지능(AI) 더빙 기술이 고도화하면서 ‘언어 장벽’이 빠르게 허물어지고 있다. K콘텐츠의 글로벌 확산도 더욱 가속화할 전망이다.

◇비용·시간 90% 절감…중소 제작사 ‘유통 자생력’ 확보

8일 엔터업계에 따르면 JTBC 드라마 ‘옥씨부인전’은 영어·스페인어·프랑스어 AI 더빙을 통해 지난해 11월부터 유럽 주요 국가에 순차 공개되고 있다. 눈에 띄는 건 이 작품이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가 아닌, 스마트TV 기반 ‘패스트’를 통해 서비스한다는 것이다. 패스트는 광고 기반 무료 실시간 스트리밍 TV라는 뜻으로 ‘Free Ad-supported Streaming’(FAST)의 약자다.

그간 유럽과 남미 지역은 K콘텐츠에 대한 수요와 높은 스마트TV 보급률에도 불구하고, 언어 장벽과 높은 더빙 비용 부담으로 진출이 쉽지 않은 시장으로 꼽혀왔다. 업계 관계자는 “전통적인 더빙 작업에는 막대한 비용이 들어 수출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한계를 극복한 것은 AI 더빙 기술이다. AI 더빙은 기존 성우 중심의 더빙 방식과 달리 제작 비용을 10분의 1 수준으로 낮추고, 4개월이 걸리던 작업을 하루 만에 가능하게 하며 제작 효율을 크게 끌어올렸다. 더빙 콘텐츠의 경우 자막 대비 시청 지속 시간도 최대 4배까지 늘어나는 등 소비 효율도 크게 개선됐다.

이에 중소 제작사들도 글로벌 OTT에 의존하지 않고 해외 플랫폼에 직접 콘텐츠를 공급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다. 제작사 관계자는 “현지화 비용 부담이 크게 줄어들면서 유통 방식이 다양해지고 해외 진출 기회도 확대됐다”고 말했다. 특히 더빙 소비가 일반적인 서유럽과 남미 시장 공략이 가능해지면서 K콘텐츠의 확장성이 한층 커졌다는 평가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옴디아는 전 세계 패스트 시장이 2030년 약 110억 달러(약 16조 2481억 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업계에서는 AI 더빙 기술과 결합한 새로운 유통 구조가 K콘텐츠 글로벌 확산의 핵심 동력으로 자리 잡을 것으로 보고 있다.

허드슨 AI 자체 더빙 기술을 통해 작업 중인 모습(사진=허드슨 AI)
◇정부·플랫폼·AI 기업 공조…K콘텐츠 영토 확장

이런 성과는 정부와 기업 간 협업을 통해 가능해졌다. 중소벤처기업부와 LG전자(066570)가 추진한 ‘AI 초격차 챌린지’를 통해서다. LG전자가 글로벌 인프라를 제공하고, AI 스타트업 허드슨 AI가 배우의 감정선과 목소리 톤을 살린 다국어 더빙 기술을 지원하면서 시너지를 냈다.

신현진 허드슨 AI 대표는 “과거 AI 더빙이 일부 대작 중심의 단발성 사업에 그쳤다면, 이제는 플랫폼 기업과 협업해 현지화를 진행하는 단계로 진화했다”며 “대형 플랫폼에 의존하지 않고도 독자적인 글로벌 유통 역량이 형성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 차원의 지원도 본격화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해 추경에서 확보한 80억 원의 예산으로 ‘AI 더빙 특화 K패스트 채널’을 구축했다. 현재 삼성 TV 플러스와 LG 채널을 통해 1200여 편의 K콘텐츠가 영어·스페인어·포르투갈어로 더빙돼 전 세계 22개국에 송출되고 있다. 22년 전 공개됐던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부터 ‘낭만닥터 김사부’, 예능 ‘나는 솔로’ 등 인기 콘텐츠들이 다시 해외 시장으로 진출하고 있다.

심미선 순천향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비용 문제로 활용되지 못했던 콘텐츠들이 해외로 나갈 수 있는 길이 열렸다”며 “AI 기업은 기술을 개발하고 제작사는 지식재산권(IP) 가치를 극대화하며, 플랫폼은 신규 수익 창출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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