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영화 대신 만들 순 없어… 중요한 건 이야기와 연출”[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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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2026년 5월 08일, 오전 06:03

[이데일리 윤기백 기자] 인공지능(AI) 영화시대, 감독은 사라질까. 적어도 안태진 감독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그는 생성형 AI를 “영화를 대신 만드는 기술”이 아니라 “상상을 현실로 옮기는 새로운 제작 방식”이라고 정의했다.

안태진 감독.(사진=본인 제공)
안 감독은 부산에서 영상 제작사 ‘이안미디어’를 이끌며 방송사·지자체·기업 콘텐츠와 광고를 제작해온 현업 영상 연출자다. 항공·시뮬레이션 기반 콘텐츠를 다루는 약 13만 명 규모의 유튜브 채널 ‘JJFLIGHT’도 운영하고 있다. 그는 최근 AI 단편영화 ‘재난문자’와 후속작 ‘재난문자2: 지하철’(SUBWAY 3)로 해외 영화제에서 잇따라 성과를 내며 주목받고 있다. ‘재난문자’ 시리즈는 1인 제작, 제작비 약 50만 원, 제작 기간 3주 만에 완성된 작품이다. 100% AI를 활용해 제작했다. 특히 ‘재난문자2: 지하철’은 ‘인디우드 국제 AI 시네페스트’(Indywood International AI Cinefest)에서 베스트 크로스-컬처럴 AI 필름(Best Cross-Cultural AI Film)을, ‘미국 톱 쇼츠 영화제’(Top Shorts)에서 베스트 AI 필름(Best AI Film)을 수상했다. 오는 21일 열리는 ‘칸 AI 영화제’(AI Film Awards Cannes 2026‘ 공식 상영작에도 이름을 올렸다.

안 감독은 최근 이데일리와 인터뷰에서 “AI로도 영화는 만들 수 있다”며 “다만 기존 영화처럼, 영화의 문법으로 만들어야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저는 공학 전공자입니다. 하지만 오래전부터 영상과 디자인 분야에 관심이 많았고, 실제로 영상 제작사를 운영하며 방송사·지자체·기업 콘텐츠를 만들어왔습니다. 생성형 AI가 등장했을 때도 단순한 유행으로 보지 않았어요. 제작 방식 자체를 바꾸는 기술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는 AI를 가장 먼저 실무에 끌어들인 제작자 중 한 명이다. 부산 KNN과 함께 100% AI 기반 공익 캠페인 광고를 제작했고, 실사와 AI를 결합한 하이브리드 영상 프로젝트도 다수 진행했다.

AI 단편영화 '재난문자' 장면들.(사진=유튜브 캡처)
하지만 그가 궁극적으로 도전하고 싶었던 영역은 ’영화‘였다.

“당시 인터넷에 올라오던 AI 영상은 대부분 짧은 클립이나 비주얼 실험에 가까웠습니다. 저는 서사와 감정, 긴장감이 유지되는 ’영화 형태‘ 자체를 구현해보고 싶었습니다. 단순 실험 영상이 아니라, 최소 15분 이상 몰입 가능한 작품을 만들고 싶었던 거죠.”

그렇게 탄생한 작품이 ’재난문자‘다. 작품은 비행기 안에서 재난문자를 수신한 승객들이 공포와 혼란에 휩싸이는 과정을 그린 아포칼립스 스릴러다. 그는 “재난문자의 경고음은 누구나 경험해본 집단적 공포의 장치”라고 설명했다.

“기내는 굉장히 흥미로운 공간입니다. 외부와 단절된 밀폐 공간이자, 서로 다른 생각과 감정을 가진 사람들이 잠시 함께 갇혀 있는 장소죠. 낙관적인 사람, 냉소적인 사람, 권위에 의존하는 사람, 음모론을 믿는 사람까지 현대 사회의 단면이 압축적으로 드러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재난문자‘는 단순 재난영화가 아니라, 현대 사회의 불안과 분열 구조를 기내 안에 투영한 사회심리극에 가깝다. 영화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AI 영상이라기보다 영화적 문법이 살아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해외 영화제 역시 이 지점을 높게 평가했다고 그는 분석했다.

“기존 AI 영상은 기술적으로는 흥미롭지만 이야기 구조까지 완결된 경우는 많지 않았습니다. 저는 처음부터 ’AI 영상‘이 아니라 ’영화‘를 만든다는 생각으로 접근했습니다. 그 차이가 심사위원들에게도 전달된 것 같습니다.”

AI 단편영화 '재난문자2' 장면들.(사진=유튜브 캡처)
실제 제작 과정은 웬만한 영화 못지않게 치밀하다. 전체 시나리오를 먼저 완성한 뒤 챗GPT를 활용해 컷 단위로 장면을 분리하고, 이를 다시 8~10초 분량 프롬프트로 세분화했다. 이후 소라2(Sora2)를 활용해 수백 개 장면을 반복 생성했다. 때론 원하는 결과물이 나올 때까지 한 장면을 15번 이상 다시 만들기도 했다.

“가장 어려웠던 건 일관성이었습니다. 인물 얼굴과 공간, 감정선, 카메라 흐름을 유지하는 게 쉽지 않았어요. 결국 프롬프트를 수정하고 생성하고 다시 고치는 반복 작업이 가장 오래 걸렸습니다. 저는 이 과정을 실제 영화 현장에서 감독이 배우와 스태프에게 디렉션을 주는 과정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그는 다양한 AI 모델과 워크플로를 연구 중이다. 최근 등장한 올인원 AI 영상 플랫폼에 대해서는 “무조건 비용과 시간이 줄어드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모델별 질감과 표현 방식이 달라, 오히려 일관된 톤을 유지하기 위해 하나의 주력 모델을 정하는 게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그는 이미 장편영화도 준비 중이다. 경제 재난을 다룬 미스터리 영화와 탈북민 실화를 바탕으로 한 드라마 두 편의 시나리오를 구상 중이며, AI를 활용한 1인 장편 제작도 가능하다고 봤다. 예상 제작 기간은 약 3개월, 제작비는 1000만~2000만 원 수준이다.

다만 그는 AI 영화에 대한 환상도 경계했다. 누구나 영상을 만들 수 있는 시대는 왔지만, 누구나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얘기다.

“AI는 제작 과정 일부를 대체할 수는 있어도, 이야기 구조와 연출, 편집, 영상 언어까지 대신해주지는 못합니다. 결국 중요한 건 창작자의 역량입니다. 오히려 AI 시대가 될수록 기본적인 연출력과 서사 설계 능력은 더 중요해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안태진 감독.(사진=본인 제공)
그는 앞으로도 ’SF 같은 AI 영화‘보다 현실적인 인간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요즘 AI 영화라고 하면 미래적이고 화려한 SF를 많이 떠올리는데, 저는 오히려 일반 상업영화 같은 드라마와 장르물을 만들고 싶습니다. 현실적인 상황 속 인간 감정을 다루는 영화요. 시간과 비용 때문에 포기해야 했던 상상이 이제는 가능해졌다는 게 가장 익사이팅한 부분입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AI 영화의 미래를 “기술보다 협업의 문제”라고 말했다.

“저는 지금까지 TV 프로그램과 광고를 만들며 항상 상영 플랫폼이 정해진 상태에서 작업해왔습니다. 하지만 AI 영화는 아직 산업 구조가 완성되지 않았어요. 앞으로 투자·배급·상영 등 다양한 분야와 협업하면서 상업적으로도 의미 있는 AI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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