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주 앞 오열하던 '사도' 이효제, '기리고'의 포문을 열다 [인터뷰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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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BC연예,

2026년 5월 21일, 오전 11:19

배우 이효제에게 '기리고'는 성과이자 증명이었다. 길었던 과도기를 통과했다는 확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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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그를 보고 여전히 영화 '사도'를 떠올린다. 뒤주에 갇힌 아버지를 향해 달려가 끝내 오열하던 어린 세손이었다. 짧은 등장에도 감정을 폭발시키며 뇌리에 박힌 얼굴이다. 혹자는 작품을 보다 검색창을 켠다. 익숙한 얼굴인데 이름은 낯설고, 검색해 보면 그제야 과거 얼굴들이 이어진다. 이효제 역시 이번 작품 이후 반응이 달라졌다고. 화면 안의 배우가 궁금해서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청신호다. 이효제는 "예전 제 모습을 기억하던 분들이 작품을 보고 인스타를 찾아오시는 경우가 많았다"며 "아역 때 이미지였다가 지금은 또 다른 모습이 됐다고 말씀해 주시는 게 신기했다"고 말했다.

넷플릭스 '기리고'에서 이효제가 맡은 형욱은 이야기의 첫 문을 여는 인물이다. 학생다운 밝음과 어딘가 설명되지 않는 불안을 동시에 품고 있고, 누구보다 먼저 현실 밖 세계를 믿는다. 공개 이후 가장 먼저 회자된 건 20kg이 넘는 증량이었다. 실제 이효제는 오디션 당시 50kg대 후반의 빼빼 마른 체형이었고 형욱을 위해 약 두 달 동안 체중을 늘려 최종적으로 20kg 이상 증량했다. 몸을 바꾸는 만큼 인물을 이해하는 시간도 길어졌다. 극 중 형욱은 애니메이션과 게임에 몰입하는, 이른바 오타쿠적 성향이 강한 인물이다. 이효제는 단순히 취향을 따라 하는 수준에서 접근하지 않았다.

그는 "형욱의 서사는 대본 안에 크게 드러나 있지 않았다"며 "학업 스트레스나 친구 관계에서 오는 압박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게임도 직접 해보고 애니도 보면서 형욱은 왜 이런 말투를 쓰게 됐을까를 계속 고민했다"며 "애니 속 인물이 실제로 나를 구해준다면 어떨까, 나라면 어떤 세계를 탈출구로 삼았을까 같은 상상을 많이 했다"고 설명했다. 오디션 역시 같은 방향이었다. 당시 그는 외형적으로는 형욱과 거리가 있었다. "오디션 때는 58kg 정도였다. 엄청 말라 있었는데 연기적으로는 많이 준비해서 자신감 있게 했다"고 떠올린 그는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감독님도 외형보다 눈빛이나 인물 자체를 많이 봐주셨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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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제는 형욱을 파고드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자신의 학창 시절도 돌아봤다. 촬영과 학교생활을 병행했던 그는 스스로를 조용한 학생이었다고 표현했다. 스트레스를 크게 드러내기보다 안으로 쌓는 편이었고 사람을 오래 보는 쪽에 가까웠다고. 친구들이 어떤 말을 쓰고 어떤 방식으로 관계를 맺는지를 곰곰이 관찰하곤 했다. 당시의 습관은 자양분이 되어 슬기로운 연기 생활로 이어졌다. '기리고' 형욱 역시 실제 학창 시절 친구 한 명이 좋은 예시로 활용됐다.

이와 관련 이효제는 "고등학교 때 정말 친한 친구가 있었는데 형욱과 닮아 있었다"며 "성격 좋고 누구랑도 잘 지내고 다 챙기는데 자기 힘든 건 잘 드러내지 않는 친구였다"고 말했다. 이어 "제가 학교를 빠질 때 과제나 수행평가도 챙겨주고 그랬다. 형욱을 준비하면서 그 친구에게 모티브를 많이 얻었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작품 공개 이후 가장 기억에 남은 반응 역시 "'학교마다 꼭 형욱 같은 친구가 있었다'는 이야기였다"며 "특별한 캐릭터가 아니라 진짜 어딘가 있었을 법한 사람처럼 봐주신 것 같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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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제의 얼굴은 귀하다. 선한 인상이지만 각도를 틀어보면 묘하게 날카로운 눈매가 존재한다. 이는 형욱을 통해 증명됐다. 마냥 해맑게 웃던 그가 열등에 사로잡혀 눈을 희번득일 때 적절한 재료로 쓰인 것이다. 이효제는 "배우로서 장점은 섬세한 부분도 있고 제 눈이 묘하게 선한 느낌도 있고 악한 느낌도 있다고 생각한다"며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다양한 걸 표현할 수 있는 것 같고 눈으로 말하는 걸 좋아하고 잘한다고 생각한다. '기리고' 감독님의 요구도 마찬가지였다. 착한 아이지만 광기를 폭발시킬 수 있는 배우를 원하셨다"고 말했다.

배우로서 그의 또 다른 특장점은 찰나의 순간 관객을 사로잡는 응집력이다. 이효제의 명장면은 늘 짧고 강력했다. '사도'에서 오열하던 천재 아역은 시간이 지나 '기리고'에서는 이야기의 포문을 여는 형욱이 되어 기괴하게 몸을 비틀며 죽어가는 순간으로 다시 시청자의 손에 땀을 쥐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그는 "'사도' 때를 생각해 보면 그때는 감각적으로 연기했던 기억이 크다"며 "지금은 왜 이 인물이 이런 감정을 느끼는지,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를 계속 탐구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이어 "예전에는 순간적으로 나오는 감정에 기대는 부분이 있었다면 지금은 조금 더 의도를 갖고 접근하려고 한다"며 "앞으로도 한쪽 얼굴로 기억되는 배우보다 계속 다른 얼굴을 보여줄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타고난 것에 스스로의 노력을 더한 셈이다. 어릴 때엔 감각으로, 자라나면서는 탐구와 노력으로 이룬 결과물이다.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아역 출신 배우들에게는 필수 난제가 있다. 어린 시절 대표작은 자산이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꼬리표가 되기도 한다. 익숙한 얼굴을 넘어 새로운 얼굴을 설득해야 하는 시간은 생각보다 길다. 이효제 역시 그 기나긴 터널을 지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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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아역 역할 오디션을 가면 나이가 많다고 하고 성인 역할을 보러 가면 또 어려 보인다고 했다"며 "몇백 번 떨어지다 보니까 내가 애매한 사람인가, 재능이 없는 건 아닐까 생각한 적도 있었다"고 털어놨다. 이어 "중학교 때는 연기를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는데 예고 입시를 준비하면서 바뀌었다"며 "그때부터는 누군가의 아역이 아니라 정말 연기를 좋아하는 배우가 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기리고' 오디션은 오히려 담담했다. 그는 "'기리고' 오디션 볼 때는 정말 내가 보여줄 수 있는 걸 다 보여주자는 생각이었다"며 "오히려 그렇게 내려놓으니까 편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작품 이후에도 여전히 '사도' 이야기를 해주시는 분들이 있는데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성인이 되고 나서 고민하고 연구했던 시간들을 알아봐 주시는 느낌이라 더 뭉클했다"고 말했다.

이 시기를 겪은 배우들이 종종 성인 배우처럼 보이고 싶은 마음에 실제 나이보다 무리하게 어른스러운 역할을 찾거나 교복을 서둘러 벗으려는 선택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효제는 "빨리 성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압박은 없다"며 "지금 나이에 할 수 있는 역할이면 교복도 좋고 사복도 좋다. 왜 빨리 교복을 벗으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연기할 수 있는 기회 자체가 감사한 거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목표는 뚜렷했다. 이효제는 "죽기 직전까지 연기하고 싶다. 꾸준히 대중에게 선택받고, 언젠가는 제가 정말 하고 싶은 역할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힘주어 말했다.

iMBC연예 이호영 | 사진출처 고스트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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