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스러운데 힙하다… ‘B급 감성’에 빠진 스크린·OTT[스타in 포커스]

연예

이데일리,

2026년 5월 28일, 오후 05:28

[이데일리 스타in 윤기백 기자] 한때 B급 감성이나 이른바 ‘병맛 코드’(과장된 설정과 황당한 웃음의 조합)는 허술하거나 유치한 콘텐츠를 비꼬는 표현에 가까웠다. 일부러 힘을 빼거나 황당한 설정을 넣은 작품들은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기 일쑤였다. 하지만 최근 스크린과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시장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졌다. 과장된 설정과 촌스러운 감성, 예상 밖 전개를 오히려 하나의 스타일로 소비하는 흐름이 강해지면서 ‘잘 만든 B급 콘텐츠’가 가장 빠르게 화제를 모으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제 병맛 코드는 단순한 인터넷 유행어를 넘어, 젊은 세대의 취향과 콘텐츠 소비 방식을 관통하는 새로운 흥행 공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영화 '와일드 씽'의 한 장면.(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B급 감성에 병맛까지… 스크린·OTT 점령

내달 3일 개봉하는 영화 ‘와일드 씽’은 B급 감성으로 가득한 작품이다. 강동원, 엄태구, 박지현이 세기말 혼성 댄스그룹으로 변신한 이 작품은 공개 전부터 독특한 콘셉트만으로 온라인을 달궜다. 촌스러운 스타일링과 과장된 연기, 1990~2000년대 감성을 일부러 극대화한 연출은 “이게 뭐냐”는 반응과 동시에 “계속 생각난다”는 중독성을 만들어냈다. 특히 OST와 포토카드, 캐릭터 설정까지 실제 아이돌 콘텐츠처럼 소비되며 하나의 놀이 문화로 확장되고 있다. 영화 속 밈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커뮤니티를 통해 재생산되는 구조다.

OTT에서도 병맛 코드의 존재감은 강해지고 있다. 티빙 ‘취사병 전설이 되다’는 군대라는 익숙한 배경에 웹툰식 판타지와 과장된 연출을 더하며 강한 반응을 얻고 있다. 현실적인 군 생활 묘사보다는 “말도 안 되는데 웃기다”는 감각에 집중한다. 주인공이 요리 하나로 군대를 뒤집는 설정 자체가 비현실적이지만, 오히려 그 황당함이 시청자들의 도파민을 자극한다는 평가다. 진지함과 허술함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오가는 리듬 역시 병맛 콘텐츠 특유의 매력 포인트로 꼽힌다.

티빙 '취사병 전설이 되다'의 한 장면.(사진=티빙 캡처)
지난 13일 개봉해 관객들을 만나고 있는 영화 ‘교생실습’ 역시 비슷한 흐름 위에 있다. 학교라는 익숙한 공간에 블랙코미디와 과장된 캐릭터를 결합하며 “킹받는데 웃긴” 감성을 전면에 내세웠다. 현실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황당한 상황들이 연달아 이어지지만, 관객들은 오히려 그 비현실성을 놀이처럼 소비한다. 특정 대사와 장면이 짧은 영상으로 잘려 SNS에서 유행하는 것 역시 최근 병맛 콘텐츠의 특징 중 하나다.

흥미로운 건 이런 작품들이 단순히 ‘가벼운 웃음’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와일드 씽’은 세기말 연예 산업을 패러디하면서도 스타 시스템과 대중 소비 문화를 비튼다. ‘취사병 전설이 되다’는 군대 조직 문화를 판타지적으로 풍자하고, ‘교생실습’은 학교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교권 추락의 현실을 블랙코미디로 풀어낸다. 황당하고 가벼워 보이지만, 그 안에는 현실을 비틀어 바라보는 시선이 숨어 있다는 이야기다.

영화 '교생실습'의 한 장면.(사진=스튜디오 산타클로스)
◇도파민형 콘텐츠 확산… 숏폼 시대 최적화

업계에서는 이러한 흐름을 ‘도파민형 콘텐츠의 확산’과 연결해 해석하고 있다. 짧고 빠른 소비에 익숙한 시대일수록, 복잡한 설명보다 즉각적인 반응을 유도하는 콘텐츠가 유리하다는 것이다. 콘텐츠 제작사 관계자는 “숏폼 플랫폼과 SNS 환경에서는 깊은 서사보다 강한 한 장면, 진지한 메시지보다 공유하고 싶은 웃음 코드가 더 빠르게 퍼진다”며 “병맛 콘텐츠는 바로 그 지점을 정확히 공략하고 있다”고 짚었다.

특히 젊은 세대에게 병맛 코드는 더 이상 ‘촌스러움’이 아니다. 오히려 일부러 힘을 빼고 과장하는 감각 자체가 힙한 문화로 받아들여진다. ‘와일드 씽’ 속 세기말 패션과 음악, 어설픈 CG와 과몰입 연기까지 모두 ‘웃기기 위해 진심인 태도’로 소비된다. 완벽하게 멋진 것보다, 기꺼이 망가지고 과장된 콘텐츠에 더 열광하는 흐름이 만들어지고 있는 셈이다.

영화 '와일드 씽'의 한 장면.(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콘텐츠 시장에서도 이런 변화는 뚜렷하다. 과거 B급 감성이 틈새 취향에 가까웠다면, 이제는 대형 제작사와 OTT 플랫폼이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메인 스트림 코드가 됐다. 실제로 최근 흥행작 상당수는 진지함만으로 승부하기보다 밈과 키치, 병맛 정서를 적극 섞어 대중성과 화제성을 동시에 노리고 있다.

결국 지금의 병맛 열풍은 단순한 유행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피로감이 큰 시대일수록 관객들은 무겁고 거대한 세계관보다, 부담 없이 웃고 빠르게 몰입할 수 있는 콘텐츠를 찾는다. 그리고 그 웃음은 점점 더 과장되고, 황당하고, 기묘한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콘텐츠 업계 관계자는 “‘와일드 씽’, ‘취사병 전설이 되다’, ‘교생실습’이 보여주는 공통점은 분명하다”며 “요즘 콘텐츠 시장에서 가장 강력한 경쟁력은 완벽함이 아니라, 얼마나 재밌게 망가질 수 있느냐에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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