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21세기 대군부인'
최근 인기리에 종영한 '21세기 대군부인'까지, 드라마 역사 왜곡 논란이 계속되는 상황 속 일부에선 판타지 장르에 과하고 엄격한 잣대를 적용한 것이 아니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한국 드라마의 해외 영향력이 커지고 시청자들의 역사 인식 민감도 또한 높아지면서, 고증 절차 강화의 필요성은 갈수록 강조되고 있다. 논란이 일어날 때마다 '사후대처'로 끝낼 것이 아니라, 사전에 오류를 줄이기 위한 효율적이고 현실적인 시스템이 마련돼야한다는 의견 역시 더욱 강해지고 있다.
◇ "어디까지 사실이고 어디부터 허구인지 제작진 스스로 명확히 인식해야"
역사 왜곡 논란이 시작되는 이유로는 드라마 서사에서 드러나는 역사 인식과, 시대상을 설명하는 소품 등 고증 오류 등이 꼽히고 있다. 전문가들은 먼저 제작진의 역사 인식 제고와 고증 절차 강화, 더불어 작품의 뼈대가 되는 촘촘한 세계관 구축이 선행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전문가들은 최근 사극 시장의 대세로 자리 잡은 판타지, 퓨전 장르 역시 '상상력으로 만든 허구' 설정까지도 고증 의무를 잊으면 안 된다는 지적하고 있다. 계속되는 역사 왜곡 논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다.
심용환 역사N교육연구소 소장은 뉴스1에 "퓨전 사극의 흐름 자체를 막을 수는 없다"면서도 "제작진이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부터가 허구인지 스스로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어떤 부분을 창의적으로 변형했는지 제작진이 충분히 이해하고 있어야 시청자들의 문제 제기에 설득력 있게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도 뉴스1에 "판타지 장르라고 해서 왜곡된 역사가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상황까지 허용돼서는 안 된다"며 "허구와 역사적 사실의 경계를 제작진이 분명하게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드라마 제작사 관계자 A 씨는 "판타지와 퓨전 사극 장르여도 세계관을 창조하고 이야기로 만드는 것은 드라마의 매우 중요한 베이스다, 촘촘하고 깊이가 있어야 한다"라며 "어떤 장르든 마찬가지이지만 역사적 사건을 다룰 때는 특히 신중한 고민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역사학자 최태성 인스타그램
'21세기 대군 부인'의 역사 왜곡 논란 이후 역사학계에서는 사전에 고증 절차를 확인하는 감수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는 제안이 나왔다.
심 소장은 "방송가에 제대로 된 역사 관련 자문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다, 자문료도 따로 책정된 게 없고 있더라도 미미한 수준"이라며 "해당 분야에 투자가 이뤄지지 않으니 전문가들도 지속해서 참여하기 어려운 구조가 됐다"라고 주장했다.
애플TV 드라마 '파친코' 자문으로 참여했다는 심 소장은 "미국에는 자문위원회가 구성되고 여러 전문가가 장기간 작품을 검토하는 시스템이 있다"라며 "유명 배우 한 명의 회당 출연료 일부만 투자해도 충분히 구축 가능한 시스템"이라고 대안을 제시했다.
서 교수도 체계적 검증 시스템 구축의 필요성을 피력했다. 서 교수는 "한 명의 전문가 의견만으로 검증을 진행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라며 "역사학계에서도 크로스 체크를 통해 다각도로 검증하는 구조가 마련됐다면 상당수 논란은 예방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사 강사 겸 방송인 최태성은 '21세기 대군부인' 논란 당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고증 비용은 왜 그리도 아까워하는지, 고증에 필요한 시간은 왜 그리도 무시하는지"라며 "역사학계도 역사물 고증 연구소 하나 만들어 주기 바란다, 제작자들이 고민하지 않고, 고증연구소에 작품 맡기면 대본-복장-세트장 모두를 원스톱으로 안전하게 해결해 줄 수 있는 연구소"란 글을 올렸다.
◇ "현실적 논의, 우선"
다만 다수의 드라마 제작 관계자들은 역사학계가 제안하는 '고증연구소'나 '외부 감수'는 제작 업계의 현실과 상당한 거리가 있는 대안이라면서 유효성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창작의 자유를 위축할 수 있다는 우려가 깊은 데다, 자체 자문을 진행하던 기존의 제작 과정에 외부 자문을 추가했을 때 필요한 시간과 비용의 부담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제작사 관계자 B 씨는 "(고증연구소를) 선뜻 이용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현재도 제작진이 자문을 받으면서 기획하고 있는 부분이다, 작가들도 상상력을 기반으로 자유롭게 표현해야 하지 않겠나"라고 했다.
제작사 관계자 C 씨는 "현재 제작 시스템에서는 실현되기 어려운 아이디어다, 사전제작 드라마가 많아졌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할 시간적인 여유가 없다"라고 강조했다.
오래도록 방송업계에 몸담은 관계자 D 씨는 "기획안 자체가 제작사나 방송사의 중요한 IP다, 소재나 이야기 전개 방식도 공개하기 어려운데 이걸 어느 정도 공개해야 한다고 하면 과연 맡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라고 덧붙였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역시 고증연구소, 감수 위원회 등의 제안을 두고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드라마 제작 자체도 어려운데 거기까지 투자할 여력이 없을 것"이라면서 "자칫하면 콘텐츠를 창작하는 데 있어서 제한이 생기고 창작을 위축시키게 만들 수 있다"라고 했다.
정 평론가는 "제작사에서 (고증) 시스템을 만들기보다는 제작자들이 역사학자나 전문가들을 통해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요소들을 사전에 확인하고, (제작 과정에서) 오류가 생겼을 때 팩트 체크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안전장치가 오히려 더 낫다고 본다"라고 덧붙였다.
ichi@news1.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