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빽가언니' 방송화면 캡처
빽가는 15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 '빽가언니'에 "그동안 못했던 이야기..."라는 제목의 영상을 올렸다. 해당 영상에서 빽가는 자신의 외증조부가 독립운동가 경림(景林) 진희창이라고 밝혔다.
이날 영상에서 빽가는 "사실 내가 한 번도 방송이나 유튜브에서 꺼내지 않은 얘기가 있다, 나의 외증조부님께서 독립운동가였다"면서 "진짜 20년 넘게 활동한 멤버들에게도 말한 적이 없다, 오늘 처음으로 내가 그 이야기를 한 번 해볼까 한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돌아가신 우리 어머니께서 생전에 그런 말씀을 많이 하셨다, 성현아(빽가의 본명), 우리 집은 사실 독립운동가 후손의 집이다, 그래서 항상 어디 가서 기죽지 말고 마음의 긍지를 갖고 살라고 말씀하셨다"며 어머니의 이야기를 회상했다.
빽가는 그간 외증조부의 이야기를 꺼내지 않은 것은 조심스러운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외증조부의 이름을 언급하면서 그분의 업적에 얹혀 가는 느낌이 들까 봐 (그랬다)"고 밝혔다.
'빽가언니' 방송화면 캡처
이처럼 숨겨둔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독립운동가의 후손을 돕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빽가는 "오늘이 광복절이다, 예전부터 독립운동가 후손분들이 경제적으로 어렵게 산다는 얘기를 들었다, 예전에는 내가 누굴 도울 수 있는 상황이나 여력이 되지 않았는데 이제는 그럴 수 있게 돼서 독립운동가 후손 중에 형편이 어려우시거나 도움이 필요한 분들이 계시면 내가 도움을 드리고 싶어서 오늘 이야기를 꺼내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빽가에 따르면 그의 외증조부 진희창은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재정과 운영을 담당했다. 경술국치 이후 상하이로 망명한 진희창은 상하이 전차 회사의 감독으로 일하며 고국에서 일제를 피해 상하이로 건너오는 독립투사를 비밀리에 도왔다. 자금과 안가를 제공하는 베이스캠프 역할을 한 그는 1919년 4월 10일에 독립지사 29인이 모여 연 임시의정원에 의원으로 참석, 우리나라의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정하고 임시헌장을 공포, 임시정부 수립의 계기를 만들었다.
빽가는 "역사적인 대한민국 첫 출발 과정에 외증조부가 함께 하신 것"이라면서 "독립운동할 때 필요한 건 무기도 무기지만 결국 돈이다, 1920년 상하이 한인사회에서 상하이 대한인거류민단이라는 교민 자치 조직을 만들었는데 외증조부가 의사원으로 활동하면서 교민사회 재정과 운영을 뒷받침 했다"고 전했다.
또한 진희창은 김구의 백범일지에도 등장할 정도로 김구와 밀접한 관계였다. 빽가는 "이 사실을 알고 진짜 놀랐던 게 백범 김구 선생님의 백범일지에도 우리 증조할아버지의 이름이 직접 나온다"며 "당시에 김구 선생님이 상하이에서 얼마나 가난했느냐면 백범일지 중에 본인 스스로 '나는 이들의 집으로 다니면 아침저녁으로 빌어먹으니 거지 중에 상거지'라고 적었더라, (그러면서)'진의창 같은 가까운 동지들이 미운 밥을 주지 않고 나를 도왔다'고 적었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빽가는 "미운 밥 주지 않았다는 한 문장이 진짜 가슴을 친다, 가장 힘들고 굶주렸을 때 눈치 안 주고 따뜻한 밥 한 끼를 챙겨주고 거처를 마련해 주면서 끝까지 인간적인 버팀목이 돼주신 분이 우리 외증조부였다"고 자랑스러워했다.
더불어 그는 "우리 외증조부께서 독립운동가예요, 라고 자랑거리로 삼기엔 그 헌신이 너무나 크고 무거웠다"는 그간 이 사실을 함구할 수밖에 없었던 마음을 표현하기도 했다.
eujenej@news1.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