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조 감독은 장편 데뷔작 '갈매기'로 제21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 대상, 제68회 산세바스티안국제영화제 특별 언급을 비롯해 국내외 유수 영화제의 주목을 받으며 단편영화 '혀', '혐오가족' 등 사회를 향한 예리한 시선과 묵직한 질문을 던져온 연출가다. 첫 상업영화 개봉을 앞두고 만난 김미조 감독의 얼굴에는 기분 좋은 긴장감과 작품에 대한 깊은 진심이 묻어났다.
이전까지 늘 자신이 궁금하고 보고 싶은 이야기만을 먼저 생각해 왔다는 김미조 감독은 첫 상업영화를 준비하며 시선을 외부로 확장했다. 내가 느끼는 바에 대해 관객도 똑같이 공감해 줄지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 것이다. 사적 제재라는 민감한 소재 속에서 관객들이 '나라도 저렇게 하겠다'는 마음을 품게 만드는 것이 그가 세운 가장 큰 목표였다. 개개인의 선택을 공감 있게 설계하면서도 장르적 긴장감을 잃지 않는 균형감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 과정에서 스스로에게 다짐한 세 가지 목표도 명확했다. 스태프가 창피해하지 않는 작품을 만들 것, 손익분기점을 넘길 것, 그리고 이 작품을 발판 삼아 다음 작품으로 이어나갈 수 있을 것. 이 소박하지만 단단한 기준이 '경주기행'을 받치는 힘이 됐다.
비극적인 사건을 바탕에 두면서도 블랙코미디의 요소를 잃지 않는 감독 특유의 톤앤매너는 그의 가정환경과 삶을 대하는 태도에서 비롯됐다. 수능을 네 번이나 보는 딸에게 "예쁘기만 하면 된다"며 웃음으로 승화해 준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유머로 넘기려는 김미조 감독 가족의 특성은 영화 속에 그대로 반영됐다. 비극이지만 관객이 마음을 놓고 시작하게 해야 비로소 이 가족을 온전히 응원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시사회 전날에는 너무 긴장한 나머지 한숨도 자지 못했다는 김 감독은 자신이 담아낸 진심이 잘 전달될지, 비극을 블랙코미디로 풀었다는 점에 거부감을 느끼진 않을지 걱정이 컸다고 털어놨다. 다행히 시사 이후 국내외를 막론하고 좋은 반응이 이어졌다. 해외 영화제 호평 역시 '가족'이라는 만국 공통의 언어가 통했기에 가능했던 결과였다.
영화의 모티브는 그가 가족과 함께 떠났던 실제 경주 여행에서 출발했다. 당시 찾았던 경주는 유난히 비가 많이 내렸다. 낮에는 화창하다가 저녁에는 비가 쏟아지던 경주에서 우비를 입고 대릉원을 걷는 어느 가족의 모습을 실제로 보았고, 그 모습이 어딘가 기이하게 느껴졌다고. 그 장면에 대해 고민하다가 대표적인 수학여행지인 '경주'라는 공간에서 비극이 일어났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다시 찾아오는 가족의 이야기를 떠올린 순간 '경주기행'의 씨앗이 심어졌다.
극 중 개성 넘치는 딸들의 모습에는 감독 실제 가족들의 비하인드가 흥미롭게 녹아있다. 영화 속 주인공이 딸 넷의 엄마이듯 감독의 실제 가족 역시 딸 넷이다. 또한 실제로 프로레슬링과 스턴트 경험이 있는 셋째 언니는 극 중 '바이올렛 밤' 기술의 실제 모델이 됐다. 큰언니 역시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려 애쓰던 모습을 캐릭터에 투영했다. 법대를 자퇴하고 사범대에 진학했다가 결국 영화로 방향을 틀었던 김 감독 자신은 남들의 시선이 기준이 되는 언니들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해 "이기적이고 차갑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언니들과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마다 '내가 알던 엄마가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었고, 딸마다 어머니를 받아들이는 모습이 제각각인 것을 보며 그는 "가족은 가장 강력한 조력자이자 가장 강력한 적대자"라는 문장을 써 붙이고 시나리오를 완성해 나갔다. 극 중 자매들이 나누는 농담 같은 대사도 실제 언니들이 썼던 말이었기에, 시사회에 찾아온 감독의 가족들은 슬퍼할 만하면 프로레슬링 기술이 나오고 머리통을 부숴버린다는 대사가 나오는 바람에 도무지 집중할 수 없었다며 웃음을 터뜨렸다는 후문이다.
단편 시절부터 시작해 '갈매기'를 거쳐 '경주기행'에 이르기까지, 김미조 감독은 이번 작품이 자신에게 일종의 '살풀이'였다고 말한다. 오랫동안 품어왔던 가족에 대한 궁금증과 이야기를 원 없이 작품으로 쏟아내는 과정, 이것이 김미조 감독에게 영화의 의미였다. 몇 년 전부터 '매드맥스' 같은 역동적인 작품을 만들어보고 싶었다며 눈을 반짝이는 그에게서, 다음 행보에 대한 기분 좋은 기대감이 피어올랐다.
iMBC연예 김경희 | 사진출처 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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