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오디세이'에서 신스틸러 역할을 톡톡히 해낸 15년차 중견(犬)배우 소이어.(사진=영화 '오디세이' 예고편 캡처)
아르고스는 호메로스의 원작에서도 가장 유명한 장면 가운데 하나를 책임지는 존재다. 트로이 전쟁과 긴 방랑을 마치고 20년 만에 이타카로 돌아온 오디세우스는 정체를 감춘 채 자신의 궁전으로 향한다. 가족과 주변 사람들조차 그를 알아보지 못하지만 늙고 쇠약해진 아르고스만큼은 단번에 주인을 알아본다. 꼬리를 흔들고 귀를 내린 아르고스는 오디세우스와 재회한 뒤 숨을 거둔다.
놀란 감독은 이 짧지만 강렬한 장면을 살리기 위해 ‘견공 연기’에도 공을 들였다. 소이어와 동물 트레이너 마이크 밀리오티에게 주어진 준비 기간은 약 두 달. 중요한 건 주인을 20년 만에 만난 개가 마냥 반갑게 뛰어드는 연기가 아니었다. 죽음을 앞둔 노견이 마지막 힘을 짜내 주인을 알아보는 순간을 표현해야 했다.
소이어는 오디세우스를 발견한 뒤 고개를 아주 조금 들어 올리고, 꼬리 역시 힘차게가 아니라 조심스럽게 흔들도록 훈련받았다. 트레이너는 낮고 차분한 목소리와 느린 움직임으로 소이어의 반응을 조절했다. 현장에서도 소이어가 감정을 유지할 수 있도록 배우와 스태프들에게 조용한 분위기를 요청했다고 한다.
절제된 연기의 파괴력은 예상보다 컸다. 시칠리아에서 아르고스의 장면을 촬영하자 현장 스태프들이 눈물을 흘렸다. 텔레마코스를 연기한 톰 홀랜드는 자신의 클로즈업 촬영이 바로 뒤에 이어졌는데도 스태프들이 소이어의 연기에 빠져 여전히 울고 있었다고 회상했다. 톰 홀랜드와 맷 데이먼은 가장 까다로웠던 상대 배우를 묻는 질문에 나란히 ‘소이어’를 꼽기도 했다.
아르고스의 ‘1견 3역’이 아닌 ‘1역 3견’ 캐스팅도 눈길을 끈다. 세월의 흐름을 표현하기 위해 어린 시절과 중년, 노년의 아르고스를 각각 다른 개가 연기했다. 소이어는 그중 마지막을 책임졌다. 캐스팅 과정에서는 견종도 고려됐다. 포르투갈 포덴고는 오랜 역사를 가진 견종으로, 배우 존 레귀자모는 고대 그리스 시대의 개와 가까운 견종이라는 점이 캐스팅에 영향을 미쳤다고 전했다.
무엇보다 소이어는 별도의 오디션도 보지 않았다. 이미 여러 영화와 TV 시리즈를 거친 ‘경력직’인 데다 아르고스에 어울리는 외모를 갖췄다는 판단에서다. 독립적이고 감정적인 성향을 지닌 포덴고는 훈련이 까다로운 견종으로 알려졌지만, 오랜 시간 호흡을 맞춘 트레이너와 소이어는 작은 몸짓만으로 아르고스의 기다림을 표현해냈다.
수많은 스타와 거대한 스케일을 앞세운 ‘오디세이’지만 아르고스에게 필요한 연기는 화려한 액션도 긴 대사도 아니었다. 고개를 한번 들고, 꼬리를 한번 흔드는 것. 20년을 기다린 충견의 마지막 순간을 표현한 15년차 중‘견’배우 소이어가 ‘오디세이’의 뜻밖의 신스틸러로 떠오른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