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OSEN=이인환 기자] 손흥민(33, 토트넘)에게 찾아오는 절호의 기회다.
이 한 줄의 문장이 가진 무게는 적지 않았다. 팀도, 감독도 아닌 선수 본인이 복귀를 직접 암시했다는 점에서, 손흥민의 메시지는 더 확실한 신호로 받아들여진다. 특히 사실상 리그가 끝난 상황이기에 누가 봐도 유로파리그 결승전을 노린다는 느낌의 발언이었다.
부상 이후 한 달 가까이 침묵을 이어온 손흥민의 등장이었다. 그는 지난달 유로파리그 8강 1차전에서 부상을 입은 뒤 공식전 7경기 연속 결장 중이었다.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와의 8강 2차전에서 복귀를 시도했지만 통증이 재발했고, 이후에는 팀 훈련과 분리돼 개인 회복 프로그램을 소화해왔다.
토트넘은 손흥민 없이도 결승행을 이뤄냈다. 9일 노르웨이 보되의 아스미라 스타디온에서 열린 유로파리그 준결승 2차전에서 토트넘은 FK 보되/글림트를 2-0으로 꺾으며 1, 2차전 합계 5-1로 압승을 거뒀다. 이제 결승전은 오는 22일, 스페인 빌바오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맞붙는다. 손흥민에게도 커리어 첫 트로피를 걸고 싸울 수 있는 일생일대의 무대가 펼쳐지는 셈이다.
복귀 여부는 그동안 포스테코글루 감독이 수차례 언급해왔다. 그는 "훈련은 하고 있으나 아직 팀 훈련은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신중한 입장을 취했지만, 손흥민의 메시지가 등장하면서 복귀 가능성은 한층 높아졌다. 부상자 정보 전문 사이트 '프리미어 인저리'는 손흥민의 복귀 예상일로 오는 11일 크리스탈 팰리스전을 지목했고, 이는 결승전 11일 전이다.
현지에서도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기브 미 스포츠'의 폴 오키프 기자는 "손흥민이 결승전에 나설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라고 전했고, '토트넘 홋스퍼 뉴스'는 "손흥민은 마법 같은 순간을 만들어낼 수 있는 선수"라며 전술적 카드로서의 가치를 강조했다.
물론 리스크도 존재한다. '결승전 복귀'라는 그림이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 지금의 상황은 2019년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을 연상케 한다. 당시 토트넘은 AFC 아약스를 상대로 극적인 4강을 만들어낸 루카스 모우라를 벤치에 앉히고, 부상에서 복귀한 해리 케인을 선발로 내세웠다. 결과는 0-2 완패. 케인은 경기 내내 무기력했고, 모우라는 눈물을 흘렸다.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감독은 '존재감'에 기댄 선택이 결국 치명적인 패착이 됐다.
손흥민은 케인과 다른 유형의 선수다. 그는 선발로 나서지 않더라도 후반 교체 카드로 활용할 수 있고, 공격진에 다양성을 줄 수 있다. 무엇보다 그는 '경기장 밖'에서 존재감을 발휘할 수 있는 주장이다. 경험, 헌신, 리더십은 숫자로 평가할 수 없는 무기다.
이번 결승은 손흥민에게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우승을 경험하지 못한 손흥민에게는 '무관의 제왕'이라는 꼬리표를 떼어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2008년 리그컵 이후 무려 17년간 무관에 시달려온 토트넘에도 역사적인 전환점이 될 수 있다.
여기에 토트넘은 11일 영국 런던의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에서 열리는 2024-2025시즌 프리미어리그 36라운드 홈 경기에서 크리스탈 팰리스와 만난다. 현재 토트넘은 승점 38(11승 5무 19패)로 16위에 머물러 있다. 한 경기만 더 패하면 1992년 프리미어리그 출범 이후 구단 역사상 최초로 20패를 기록하게 된다. 반면 팰리스는 승점 46(11승 13무 11패)으로 12위에 올라 있다.
경기를 하루 앞두고 열린 사전 기자회견에서 긍정적인 뉴스가 들려왔다. 바로 손흥민이 돌아올 수도 있다는 것. 포스테코글루 감독은 "모두가 목요일 경기를 무사히 마쳤다. 내일 손흥민을 몇 분 정도 뛰게 할 수 있을 거라고 반쯤 희망하고 있다. 그가 진정으로 돌아올 수 있는 오직 한 명"이라고 말했다.
바로 결승전에 복귀하기 보다는 리그 경기에서 예열해서 실전 감각을 회복한다면 더욱 좋은 상황. 토트넘 팬페이즈 '홋스퍼 HQ'도 "손흥민은 이번 주말 크리스탈 팰리스전에서 후반 출전할 수 있다. 벤치에서 시작한 뒤 후반에 나와서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다. 빌라전에서도 컨디션을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라고 짚었다.
어떻게 보면 손흥민과 토트넘 입장에서는 모든 결승전 중에서 가장 승산이 높은 경기다. 과거 2018-2019 시즌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UCL) 결승에서 위르겐 클롭 감독의 리버풀이나 과거 리그컵대회에서 펩 과르디올라 감독의 맨체스터 시티를 만났던 것에 비해 상대적으로 전력이 비슷한 상대인 것.
이번 시즌 토트넘은 맨유를 상대로 3승을 거뒀다. 리그서 더블, 컵대회 8강서 4-3으로 승리를 거둔 바 있다. 말 그대로 이번 시즌 절대 우위를 가지고 있는 것. 과연 엔지 포스테코글루 감독의 토트넘이 손흥민을 위해서라도 맨유를 잡고 우승을 차지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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