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비·최나연 “요즘 골프는 '비거리 전쟁'…韓 선수들 설 땅 사라져”

스포츠

이데일리,

2025년 9월 16일, 오전 12:11

[광주(경기)=이데일리 스타in 주미희 기자] “요즘은 비거리 전쟁이예요. 남녀 모두 트렌드가 바뀌어서 피지컬과 거리가 받쳐주지 않으면 게임 자체가 성립되지 않아요.”(박인비)

“중학생 골프 선수들도 허리가 부러질 정도로 세게 치는 데 집중해요. 그렇게 안 하면 살아남을 수 없다고 합니다. 주니어 무대도 이미 비거리 전쟁이에요.”(최나연)

(왼쪽부터)박인비와 최나연이 지난 13일 경기 광주시의 더 시에나 서울CC에서 열린 ‘제3회 더 시에나컵’에 참가해 이데일리와 인터뷰를 가진 뒤,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지난 13일 경기 광주시의 더 시에나 서울CC에서 열린 자선 골프 대회 ‘더 시에나 컵’에 참가한 ‘골프 여제’ 박인비, 최나연을 만났다. 지금은 투어를 떠나 있지만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21승을 거두고 커리어 그랜드슬램과 올림픽 금메달을 따낸 박인비, LPGA 투어 통산 9승을 올린 최나연은 자신들의 근황이나 계획을 이야기할 땐 유쾌하게, 골프계에 대한 조언 등을 건넬 때에는 진지하게 이야기를 풀어냈다.

◇“미국은 새로운 세계…후배들 도전정신 갖길”

대화는 자연스레 골프 투어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갔다. 두 골프 전설은 인터뷰를 시작하자 “골프가 이제 완전히 ‘파워 게임’이 됐는데, 과연 이게 맞는 방향인지 모르겠다”며 우려했다. 특히 미국 투어는 코스 전장이 길어져 장타자가 아니면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게 두 사람의 견해다. 2019년 약 5852m였던 LPGA 투어의 평균 코스 길이는 올해 6060m로 늘었다. 프로 선수가 1년에 평균 비거리 5m를 늘리는 것도 어려운 일인데, 6년새 전장이 208m나 늘었으니, 장타를 강조하는 코스 세팅에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이에 미국골프협회(USGA)와 영국 R&A는 비거리 규제 조치도 발표했다.

박인비는 “골프는 샷 기술, 14개 클럽을 다루는 능력, 인내심·판단력 등 모든 부분을 테스트하는 스포츠”라며 “물론 장타가 중요하지만. 너무 많은 부분을 차지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박인비, 최나연이 활약할 당시 한국 선수들은 LPGA 투어 무대에서 1년에 15승씩을 쓸어담기도 했다. 전체 대회 중 절반에 가까운 대회에서 우승한 셈이다.전장이 길어진 뒤로는 연 5승을 합작하기도 힘들어졌다. 박인비는 “우리나라는 장타보다는 정확도나 퍼트, 쇼트게임 등 스마트한 플레이가 돋보이는 선수가 더 많다. 그런데 최근 거리가 많이 나가는 선수들이 장악하다 보니 우리 선수들이 설 자리가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이제는 한국 선수들도 모든 걸 겸비해야 한다. 섬세한 플레이에 장타까지 받쳐주면 우승 경쟁력을 다시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인비와 최나연은 ‘젊은 피’ 공급이 예전만큼 활발하지 않은 것도 우리 선수들의 경쟁력이 떨어지는 배경으로 꼽았다. 201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LPGA 투어에서 활동하는 선수가 40명씩 됐다. 한국 루키들이 미국 투어에 진출하자마자 우승하던 시기도 있었다. 현재는 그 수가 절반으로 뚝 떨어졌다. 국내 골프 투어 활성화로 미국 투어에 도전하지 않는 선수가 많아진 데다, 스폰서들도 국내 투어를 뛰는 선수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최나연은 “해외 무대에서 통하지 않는 한국 골프는 의미 없다”며 “스폰서 등 모두가 도와야 한다. 선수를 키워서 내보내고 예전처럼 해외 무대에서 우승하는 모습이 많이 나와야 주니어 선수들 육성까지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인비도 동의했다. 그는 “미국 생활이 힘들고 고생스럽지만, 배우고 성장하는 게 어마어마하게 크다”면서 “우리 선수들이 시도조차 안 하고 있어 안타깝다. 후배들이 물어보면 무조건 미국 도전을 권한다”고 언급했다.

◇“지금 스코어요? 조금 잘 치는 아마추어 수준이죠”

5년째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는 최나연의 채널 ‘나연 이즈 백’에서 최근 공개된 ‘V157’ 라운드 영상은 그야말로 인기 폭발이었다. ‘V157’은 박인비를 비롯해 최나연, 신지애, 이보미, 김하늘, 이정은, 유소연 등 최정상급 1988년 동갑내기 친구들과 후배 유소연이 만든 모임이다. 라운드 모임 중 최나연이 휴대폰을 켜서 찍은 영상의 조회수가 무려 44만 회에 달했다. 호화로운 선수 라인업에 비해 스윙 실수, 상대를 방해하는 구찌, 생활형 수다까지 인간적인 모습이 웃음과 공감을 샀다.

박인비는 “선수 시절에는 골프가 일이었다 보니 늘 좋은 퍼포먼스를 내야 하고, 골프가 안 되면 스트레스 받는 삶을 살아왔다”면서 “이제는 그런 삶에서 벗어나 골프를 더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시각이 생겼다”고 말했다. 은퇴한 뒤 스코어는 어떻냐는 질문에는 “그냥 조금 잘 치는 아마추어 수준이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저 아줌마 거리 좀 나네’ 이렇게 생각할 것”이라고 말한 뒤 깔깔대고 웃었다.

보통 성공한 운동 선수들은 자녀에게 똑같은 운동을 시키지 않겠다고 하는데, 박인비는 현재 30개월 된 첫째 딸 인서에게 골프채를 쥐어줬다고 한다. 박인비는 “운동 자체가 아이의 성향을 발달시키는 데 좋다. 또 저희 부부가 골프 선수였고 코치이다 보니 딸에게 가장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다”며 “운동 선수라는 삶 자체가 궁극적으로 인생의 목표와 비슷하다. 내 건강을 위해 사는 삶이어서 좋았다. 딸이 밝은 환경에서 내 몸을 가꾸면서 살았으면 싶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물론 ‘박인비의 딸’이라는 사실이 부담은 있겠지만 그건 딸이 감내해야 하는 몫이다”라고 선을 그어 웃음을 자아냈다.

두 사람은 골프계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도 모색하고 있다. 지난해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에 도전했다가 아쉽게 낙방한 박인비는 “국제골프연맹(IGF)과 계속 대화를 나누는 등 행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일을 하려 한다”고 했고, 최나연은 “수 생활을 오래 했으니 스윙뿐만 아니라 경험, 멘털, 식습관 등의 계획까지 모든 걸 알려줄 수 있어서 후계자를 양성하는 코치로 활동하고 싶다”고 밝혔다.

박인비.
최나연.
박인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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