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스타in 이석무 기자] ‘코트의 포청천’으로 불리는 한재우 한국핸드볼연맹(KOHA) 심판본부장은 원래 ‘태권소년’이었다. 태권도 유망주였던 그는 우연히 참가한 교내 체육대회 핸드볼 시합을 통해 인생의 방향을 틀었다. 태권도복 대신 학교 운동장에서 선 핸드볼 골대가 그의 새로운 무대가 됐다.
한 본부장은 선수와 지도자를 거쳐 1979년 심판 자격을 취득했다. 46년 동안 핸드볼 심판으로서 국내 코트를 지켜왔다. 현재는 핸드볼 H리그의 심판본부장을 맡고 있다. 지난해 11월 개막한 H리그에서 모든 경기의 판정 기준을 정하고, 심판 배정·교육·경기 운영을 총괄하는 ‘슈퍼바이저’ 역할을 맡았다.
45년 간 핸드볼 심판으로서 한 길을 걸어온 '한국 핸드볼의 산역사' 한재우 한국핸드볼연맹(KOHA) 심판본부장. 사진=이석무 기자
H리그는 새 시즌을 맞아 경기 규정을 국제 기준에 맞춰 강화했다. 개정 방향은 빠르고 다이나믹하한 경기 운영이다. 예를 들어 공이 경기장 밖으로 나갔을 경우 경기장 외곽에 미리 준비한 예비 공으로 바로 시작하도록 했다. 골키퍼가 골 에어리어 안에서 막은 볼을 에어리어 밖에서 잡은 경우 안에서 재드로우를 할 수 있었지만 바뀐 룰에서는 밖에서 잡은 그대로 경기를 진행한다.
규정이 어떻게 어떻게 바뀌던 간에 원칙은 같다. 한 본부장이 특히 강조하는 가치는 ‘질서’와 ‘책임’이다. 같은 반칙이 어느 팀에는 파울, 다른 팀에는 묵인된다면 리그에 대한 신뢰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한 본부장은 두 가지를 반복해 확인한다. 한 경기 안에서 두 심판이 같은 잣대를 들이대고 있는지, 그리고 두 팀을 향한 형평성이 지켜지고 있는지다. 이는 단순한 기술 문제가 아니라 심판 개인의 인성과 자세의 문제라는 것이 한 본부장의 소신이다. 그래서 그는 후배 심판들에게 “좋은 심판은 실력 이전에 품성과 절제가 받쳐줘야 한다”고 늘 강조한다.
영상판독(VAR) 도입도 ‘책임 있는 판정’을 위한 장치다. 여러 대의 카메라로 득점 장면과 중대한 반칙 상황을 다시 확인해 명백한 오심 가능성을 줄인다. 다음 날에는 심판·감독관 회의를 통해 전날 판정을 함께 복기한다.
한 본부장은 “실수를 덮어두기보다 기록으로 남기고 공유해 다시는 같은 오판을 반복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기술의 도움을 받더라도 최종 책임은 여전히 사람, 즉 심판이 져야 한다”고 말했다.
한 본부장의 45년은 한 자리에서 원칙을 지키며 버틴 시간이다. 심판은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대신 늘 코트 구석에서 선수와 관중을 지켜보는 자리다. 규칙을 어긴 자에게는 누구든 호각을 들이대야 하는 냉정한 역할이다. 흔들리는 규범과 느슨해진 기준 속에서도 중심을 잡아야 한다.
좋은 핸드볼 심판의 조건은 무엇일까. 한 본부장은 “실력과 능력은 기본”이라면서 “사적인 영역에서의 인성과 품성이 갖춰져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인성과 품성은 경기 중에도 그대로 드러난다”며 “지도자에게 신뢰받을 수 있는 성품이 가장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핸드볼 선수 출신이 아니면 심판이 될 수 없다는 고정관념도 부정했다. 한 본부장은 “룰을 정확히 이해하고 체력과 경기 경험을 쌓으면 가능하다”는 것이다.?
실제 사례도 소개했다. 현재 아시아인으로는 유일하게 국제핸드볼연맹(IHF) 규칙연구그룹 위원으로 활동하는 이석 한국핸드볼연맹 심판본부 차장이 대표적인 예다. 그는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IHF 국제심판으로 활동했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2021년 도쿄 올림픽에서 심판을 맡았고 세계선수권도 남녀 대회를 합쳐 9번이나 코트에 섰다.
이석 차장은 엘리트 선수 출신이 아니다. 대학교(서울대 체육교육과) 시절 동아리에서 핸드볼을 한 것이 전부다. 하지만 이후 국제심판이 되겠다고 뜻을 세우고 거기에 맞는 준비를 한 뒤 결국 세계적인 심판으로 성장했다. 지금은 현역 심판에서 물러난 뒤 아시아핸드볼연맹(AHF) 전문가위원회와 경기감독관, IHF 룰제정위원회와 감독관 등 심판 행정을 담당하고 있다.
새 시즌 H리그가 막을 올린 가운데 한 본부장은 팬들에게도 당부의 메시지를 남겼다. 그는 “핸드볼은 다른 종목에서 보기 힘든 강한 몸싸움과 빠른 템포가 매력인 스포츠”라며 “TV로 볼 때와 실제 경기장에서 느끼는 박진감은 다르다. 현장에서 선수들의 열정을 직접 보면 핸드볼의 재미를 더 크게 느끼실 것”이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