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OSEN=고성환 기자] 한국 탁구의 새로운 역사가 탄생했다. 임종훈(한국거래소)-신유빈(대한항공) 조가 중국 탁구를 무너뜨리고 월드테이블테니스(WTT) 파이널스 정상에 올랐다.
'혼합복식 간판' 임종훈-신유빈 조는 13일(한국시간) 홍콩에서 열린 WTT 파이널스 2025 혼합복식 결승에서 중국의 왕추친-쑨잉사 조를 3-0(11-9 11-8 11-6)으로 대파하며 대회 '초대 챔피언'으로 등극했다.
특히 WTT 파이널스이기에 더욱 뜻깊은 우승이다. WTT 파이널스는 그랜드 스매시와 챔피언스, 컨텐더 성적을 종합해 한 해 동안 가장 좋은 성적을 낸 16명(남녀단식), 8개 조(혼합복식)만 초청받는 '왕중왕전'격 대회다. 혼합복식은 이번에 처음 도입됐다.
그런 무대에서 한국 탁구가 가장 높은 곳에 오른 것. 지금까지 한국 선수가 결승 무대를 밟아보는 일조차 없었지만, 임종훈과 신유빈은 사상 첫 결승행에 이어 금메달까지 목에 거는 기염을 토했다. 지난해 2024 파리 올림픽에서 혼합복식 동메달을 획득한 데 이어 두 선수가 만들어낸 또 하나의 쾌거다.


만리장성 같았던 왕추친-쑨잉사의 벽을 마침내 넘어선 임종훈-신유빈이다. 왕추친과 쑨잉사는 각각 남녀 단식 세계 랭킹 1위를 자랑하는 강자다. 임종훈과 신유빈은 지난해 파리 올림픽, 올해 도하 세계선수권대회 준결승에서 이들을 만나 연달아 패했다. 통산 전적은 이날 경기 전까지 6전 6패였다.
하지만 이번 결승전에선 달랐다. 임종훈-신유빈 조는 3-0 완승을 거두며 '6전 7기'에 성공했다. 그것도 금메달이 걸려있는 승부였기에 더 값졌다. 왕추친-쑨잉사 조는 4강에서 일본의 마쓰시마 소라-하리모토 미와 조를 게임 점수 3-0으로 누르고 올라왔지만, 쑨잉사가 왼쪽 발목을 다친 악재를 이겨내지 못했다.
결승전답게 1게임부터 접전이 펼쳐졌다. 임종훈-신유빈은 9-9 동점에서 임종훈의 공격으로 게임 포인트에 도달했고, 왕추친의 범실로 리드를 잡았다. 2게임에선 9-4로 앞서나가다가 내리 4실점하며 9-8까지 추격을 허용했지만, 이후 연달아 득점하며 게임 스코어 2-0을 만들었다.
임종훈과 신유빈은 마지막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았다. 둘은 3게임 초반 3-4로 끌려갔으나 금세 6-5로 점수를 뒤집었다. 그리고 10-6에서 왕추친의 공격이 테이블을 벗어나며 임종훈-신유빈 조의 우승이 확정됐다.


하루에만 중국 탁구를 두 차례나 무너뜨린 임종훈-신유빈이다. 둘은 같은 날 열린 준결승전에서도 혼합복식 '세계 1위' 린스둥-콰이만(중국) 조를 만나 3-1(6-11 11-6 11-2 14-12) 역전승을 쓰며 모두를 놀라게 했다.
린스둥-콰이만 조는 올해 WTT 시리즈 최상위급인 그랜드 스매시 3관왕에 빛나는 최강자답게 강한 상대였다. 임종훈-신유빈 조는 1게임을 6-11로 내줬고, 2게임에서도 3-5로 뒤지며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벤치의 작전 타임 이후 6-5로 앞서나가며 흐름을 바꿨고, 이후 단 1점만 허용하며 11-6으로 2게임을 가져왔다.
3게임은 말 그대로 압살이었다. 임종훈과 신유빈은 린스둥-콰이만 조를 정신없이 뒤흔들어놓으며 순식간에 7-1까지 치고 나갔다. 당황한 린스둥은 서브 범실까지 범하며 무너졌다. 3게임 최종 점수는 11-2였다.
4게임도 짜릿한 역전승이었다. 임종훈-신유빈 조는 중반까지 5-7로 끌려갔으나 4연속 득점을 올리며 경기를 뒤집었다. 린스둥-콰이만 조도 포기하지 않고 세 차례나 듀스를 만들었지만, 결국 임종훈과 신유빈이 두 점을 더 따내며 34분에 달하는 혈투의 승자가 됐다.


그리고 임종훈-신유빈 조는 결승에서 왕추친-쑨잉사 조까지 잡아내며 챔피언으로 등극했다. 신유빈도 열흘 전 무릎 인대를 다쳐 최고의 컨디션이 아니었지만, 뛰어난 집중력과 실력으로 이변을 쓰는 데 성공했다.
특히 임종훈은 신혼여행까지 미루고 절치부심한 성과 그 이상을 보여줬다. 그는 지난달 결혼식을 올렸으나 WTT 파이널스에만 초점을 맞췄고, 기어코 중국 탁구가 자랑하는 강자들을 연달아 격파하며 한국 탁구의 새 역사를 작성했다.
경기 후 임종훈과 신유빈은 경쟁자이기 이전에 탁구 동료이기도 한 중국 선수들을 챙기는 걸 잊지 않았다. 임종훈은 "몸 상태가 다들 좋지 않았다. 유빈이도 그렇고, 쑨잉샤도 부상당했다. 왕추친도 많은 경기로 힘들 텐데 끝까지 모든 선수가 열심히 해줘서 고맙다"라며 "프로페셔널하게 경기해 준 왕추친, 쑨잉샤 선수한테 고맙다. 유빈이한테도 굉장히 고맙다"라고 말했다.
이번 시즌 두 차례 준우승 끝에 마지막 순간 정상에 오른 신유빈 역시 "옆에서 종훈 오빠가 많이 도와줘서 우승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운동선수들은 몸 관리가 가장 중요하다. 나도 이렇게 마음이 아픈데, 다 같이 힘내서 아프지 않고 행복하게 경쟁할 수 있으면 좋겠다"라며 "쑨잉샤, 테이크 케어(몸 관리 잘해)"라고 쑨잉샤의 쾌유를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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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WT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