봅슬레이는 중력을 이용해 얼음 트랙을 내려오는 경기다. 선수의 기량이 중요하긴 하지만 진짜 승부는 장비에서 갈린다. 썰매는 탄소섬유 복합 소재로 제작된다. 가볍고 강해야 하며, 공기 저항을 최소화하기 위해 일체형 유선 구조로 설계된다. 미세한 표면 차이나 무게 중심 위치 변화만으로도 기록이 0.01초 단위로 갈린다.
한국 봅슬레이 대표팀. 사진=대한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
한국 봅슬레이 대표팀. 사진=대한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
실제로 세계적인 자동차 메이커인 BMW는 독일 봅슬레이, 루지, 스켈레톤 연맹(BSD)의 기술 파트너를 맡고 있다. 오래 전부터 썰매 제작 및 3D 프린팅 기술을 활용한 장비 최적화를 지원하고 있다. 아우디 역시 독일 봅슬레이 대표팀 선수들에게 바람의 저항을 연구하는 풍동 센터를 훈련 시설로 제공한다.
현대차(005380)도 2018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 한국 봅슬레이 대표팀의 썰매 제작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다만 실제 경기에서 선수들은 현대차가 제작한 썰매 대신 라트비아의 전문 제조사 BTC가 제작한 썰매를 타고 경기에 나섰다. 봅슬레이 썰매 기술과 관련해 라트비아는 독일과 더불어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독일의 경우 자국 대표팀을 제외하고 썰매 관련 기술 공개를 철저히 제한한다. 그래서 한국 등 상당수 국가들이 라트비아에서 제작한 썰매를 애용한다.
가격도 슈퍼카에 비견된다. 대한봅슬레이스켈레톤 연맹 관계자는 “세계 정상급 국가대표팀 봅슬레이 썰매는 대당 1억 원에서 1억 5000만 원 수준이고 최고급 모델은 2억 원을 웃돈다”며 “썰매의 핵심 부품인 러너(칼날)만 해도 수천만 원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한때 한국 봅슬레이는 국가대표 선수들이 다른 나라가 타던 썰매를 중고로 구입해서 탄 적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세계 정상급 선수들과 같은 수준의 최고급 썰매를 타고 대회에 나선다. 현재 대표팀도 라트비아제 썰매를 애용한다. 봅슬레이 종목 관계자는 “종목 특성상 연속성이 중요하다”면서 “우리 선수들이 라트비아 제품에 익숙하다보니 썰매를 쉽게 바꾸기 어렵다”고 언급했다.
실제로 같은 선수가 썰매나 장비 교체 후 성적이 수직으로 오르거나 떨어지는 사례가 적지 않다. 연맹 관계자는 “봅슬레이에서 썰매는 단순한 장비가 아니다. 자동차의 엔진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봅슬레이가 ‘첨단 과학의 집약체’로 불리는 이유는 극한 조건 때문이다. 영하의 온도, 초고속 주행, 강한 원심력이 동시에 작용한다. 그런 만큼 썰매는 흔들림 없이 직진성과 안정성을 유지해야 한다. 진동 제어, 마찰 계수 등 물리학 및 공학 기술이 총동원된다.
그래서 봅슬레이는 ‘얼음 위의 포뮬러원(F1)’으로도 불린다. 선수의 기량 외에도 해당 국가의 기술력과 산업 경쟁력이 종목에 반영된다. 얼음 트랙 위에서 펼쳐지는 속도 싸움 뒤에는 최첨단 과학과 공학의 보이지 않는 경쟁이 펼쳐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