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빛나는 설원…산 깎고 물 얼려야 겨우 만난다

스포츠

이데일리,

2026년 1월 20일, 오전 12:05

[이데일리 스타in 이석무 기자] 지구촌 겨울 스포츠 축제인 2026 밀라노·코르티나 동계올림픽 개막이 20일도 채 남지 않았지만, 흥겨운 잔치를 기대하기엔 현실이 무겁다. 동계올림픽은 지금 구조적 위기다. 기온 상승과 강설량 감소로 대회를 정상적으로 치를 수 있는 개최지가 계속 줄어들고 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인공 눈에 대한 의존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그 대가는 자연 훼손과 탄소 배출 증가다.

2026 밀라노-코르티나 동계올림픽 스키 종목이 열리는 경기장에 엄청난 양의 인공눈이 뿌려지고 있다. 사진=AFPBBNews
인공 눈은 이미 동계올림픽의 ‘표준’이 됐다. 1980년 미국 레이크플래시드 대회에서 처음 사용된 인공눈은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사상 처음으로 자연설을 100% 대체했다. 당시 설상 종목이 열렸던 베이징 북서쪽 장자커우 지역은 연평균 겨울에 강수량이 1cm도 안되는 건조한 곳이었다. 인공눈을 만들기 위해 1억 명이 하루 동안 식수로 쓸 수 있는 약 200만 ㎥의 물을 저수지에서 끌어왔다. 인근 지역에선 물 부족 사태가 발생했다.

밀라노·코르티나 대회에서도 약 240만㎥의 인공 눈이 사용될 예정이다. 베이징 대회의 절반 수준이지만 이 역시 엄청난 양이다. 하늘에서 내린 눈밭 위에서 열렸던 과거 동계올림픽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다.

인공 눈은 막대한 물과 에너지가 필요하다. 조직위원회에 따르면 인공 눈 생산에 필요한 물은 약 9억 ℓ(리터)나 된다. 이를 위해 고지대에 저수지를 조성하고 대규모 전력 설비를 가동해야 한다. 전력 생산 과정에서 화석연료 사용과 온실가스 배출이 불가피하다. 눈을 만들기 위해 환경을 훼손하는 모순적인 구조가 반복된다. 세계 기상 과학자들은 “동계 스포츠가 열리는 전 세계 산악 지역 90여 곳 중 2050년대에 동계올림픽 개최가 가능한 곳은 절반밖에 안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미 과거 개최지 중 상당수는 재유치가 사실상 어렵다는 평가를 받는다. 1924년 제1회 동계올림픽이 열린 프랑스 샤모니를 비롯해 △1968년 그르노블 △1936년 독일 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 △2014년 러시아 소치 등도 부적격 지역으로 분류된다. 심지어 기후변화 대응에 실패할 경우 2080년이 되면 동계올림픽 개최 가능 지역이 30곳 이하로 줄어들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도 나온다.

동계올림픽 준비 과정에서 자연 훼손도 반복된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당시 스키 활강 경기장 조성을 위해 가리왕산 원시림에서 수만 그루의 나무가 베어졌다. 정부와 조직위원회는 대회 이후 ‘원형 복원’을 약속했지만 지금까지 이행되지 않았다.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1992년 프랑스 알베르빌 동계올림픽은 최악의 ‘환경 파괴 올림픽’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썼다. 크로스컨트리 경기장을 짓기 위해 희귀 습지를 훼손했다. 트랙 결빙을 위해 유독성 물질인 암모니아를 사용하는 바람에 인근 주민들이 방독면을 쓰고 생활해야 했다. 대회를 위해 건설된 호텔과 리조트는 대회 이후 파산해 한동안 흉물로 전락했다.

알베르빌 대회를 계기로 IOC는 올림픽 준비 과정에 ‘친환경’ 개념을 도입했다. 경기장 설계와 운영, 야생 서식지 보호에 대한 기준도 강화했지만 한계는 분명했다. 2014년 러시아 소치 동계올림픽 역시 국립공원 훼손과 습지 매립, 폐기물 방치 문제로 국제 환경단체의 강한 비판을 받았다.

최근에는 아예 동계올림픽 유치를 거부하는 도시와 국가도 늘고 있다. 스웨덴 스톡홀름, 독일 뮌헨, 스위스 발레 등은 환경 훼손과 막대한 재정 부담을 이유로 주민 투표를 통해 유치를 포기했다. 올림픽 반짝 특수 기대보다 지속 가능한 환경과 관리 비용에 대한 우려가 더 컸다.

IOC는 비판이 거세지자 기후가 안정된 소수 지역에서 동계올림픽을 순환 개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개최 시기를 앞당기고, 종목과 관중 규모를 축소하는 방안도 논의 중이다.

기후변화는 이제 동계올림픽의 주변 변수가 아니라 핵심 조건이 됐다. 가리왕산과 관련해 다큐멘터리 영화 ‘종이 울리는 순간’을 제작한 김주영 감독은 “환경파괴는 평창만의 문제가 아니라 밀라노-코르티나도 똑같은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며 “행사가 끝난 후에 예산과 환경을 계속 갉아먹고 있으며,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숙제는 해당 지역의 몫이 된다”고 지적했다.
알파인스키 경기장 건설을 위해 깎아낸 가리왕산 모습. 사진=시네마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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