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 대신 양심을 택한 '대가' 산체스…운명의 7세트가 남긴 품격

스포츠

이데일리,

2026년 2월 03일, 오전 11:55

[이데일리 스타in 이석무 기자] 프로당구 PBA 무대에서 ‘스페인 당구 전설’ 다니엘 산체스(웰컴저축은행)가 스포츠맨십의 기준을 다시 세웠다. 우승이 눈앞에 있던 결승전에서 누구도 알아채기 힘든 파울을 스스로 신고해 패배를 자초했지만, 그 선택은 결과보다 더 큰 울림을 남겼다.

산체스는 지난 2일 경기도 고양시 ‘고양 킨텍스 PBA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5~26시즌 9차 투어 ‘웰컴저축은행 PBA-LPBA 챔피언십’ PBA 결승전에서 ‘베트남 특급’ 응으옌꾸억응우옌(하나카드)과 풀세트 접전을 벌인 끝에 3-4로 패해 준우승에 그쳤다.

다니엘 산체스(오른쪽)가 명승부 끝에 우승을 차지한 응우옌꾸억응우옌에게 축하 인사를 전하고 있다. 사진=PBA
앞서 7차 투어와 8차 투에서 연속 우승을 차지한 산체스는 이날 아쉽게 3연속 우승 대기록 수립에 실패했다. 하지만 그가 이날 결승전에서 보여준 스포츠맨십은 우승 트로피보다 훨씬 더 빛나고 가치있었다.

산체스는 결승전에서 1, 2세트를 먼저 따냈지만 3, 4세트를 Q.응우옌에게 내줬다. 이후 5세트를 잡았지만 6세트를 다시 놓치면서 마지막 7세트까지 승부를 이어갔다.

상금 1억 원이 걸린 운명의 결승전 7세트. 그런데 산체스는 1이닝 선고에서 4점을 뽑으며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 그런데 잠시 후 보는 이들의 눈을 의심케 하는 장면이 나왔다.

5점 째를 노리는 과정에서 스트로크 준비 동작 도중 큐가 수구에 미세하게 닿았다고 느낀 산체스는 곧바로 주심에게 파울 여부 확인을 요청했다. 비디오 리플레이로도 공의 흔들림을 감지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심판진은 산체스의 자진 고백을 받아들여 무득점을 선언했다.

공격권을 넘겨받은 Q.응우옌은 침착하게 점수를 쌓았고, 3이닝째 하이런 8득점에 성공, 11-4로 경기를 끝냈다. 그렇게 산체스의 3연속 우승 도전은 좌절됐다. 생애 첫 PBA 우승을 이룬 Q.응우옌은 곧바로 산체스에게 다가가 고개를 숙여 인사를 전했다. 산체스도 환하게 웃으며 Q.응우옌을 끌어안았다.

경기 직후 산체스에게 절체절명의 순간에서 왜 그런 자진신고를 했는지 물었다. 그의 대답은 간단했다. “큐가 공에 닿는 느낌을 분명히 알았다”며 “이를 알리지 않으면 잠들기 전에 계속 떠오를 것 같았다. 파울로 이득을 취하고 싶지 않았다. 그것이 바로 당구라는 스포츠다”고 말했다. 당구 대가의 품격을 확인할 수 있는 한 마디였다.

우승을 차지한 응우옌도 산체스에게 깊은 고마움을 전했다. 그는 “산체스가 왜 최고의 선수인지 다시 느꼈다”며 “경기 중 본인의 파울을 먼저 알리는 모습을 보며 존경심이 들었다”고 밝혔다.

이날 경기는 수준 높은 공격과 수비가 이어진 명승부였다. 누구의 승리도 납득할 수 있는 흐르이었다. 하지만 산체스는 결과와 상금 대신 원칙과 양심을 택했다. 패배를 감수한 선택은 기록으로 남지 않는다. 대신 리그와 팬들에게는 분명한 메시지를 남겼다.

산체스는 졌지만, 진정한 승리자였다. 승리를 위해 온갖 편법과 속임수가 오가는 스포츠 세계에서 산체스의 고백은 진정한 스포츠 정신이 뭔지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었다.

산체스는 “나는 기록적인 부분에는 크게 욕심이 없다. 그저 당구를 사랑하는 사람이고, 내가 치르는 모든 경기에서 최선을 다할 뿐이다”며 “많은 사람들이 ‘산체스가 돌아왔다’고 말하는데 난 한 번도 당구대를 떠난적이 없다. 계속해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더 높은 수준을 위해 발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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