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HN 이주환 기자) 마운드 위에서 국경을 허물었던 전설적인 ‘이도류’의 자태는 이제 기록의 한 페이지로 남게 됐다.
지난 6일(미국 현지시간) 공개된 대회 공식 명단에서 오타니 쇼헤이(LA 다저스)의 이름 옆에는 '투수(P)'도 '이도류(TWP)'도 아닌 '지명타자(DH)'라는 단출한 수식어만 남았다.
이는 오타니가 이번 대회를 기점으로 더 이상 국가대표 마운드에 서지 않겠다는 무언의 선언이자, 소속팀의 철저한 관리 시스템이 국가 대항전이라는 명분을 넘어섰음을 입증하는 대목이다.
사무라이 재팬의 이바타 히로카즈 감독이 마지막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이유는 명확하다. 오타니는 지난 2023년 대회에서 'TWO WAY PLAYER'(이도류)라는 전무후무한 보직으로 출전해 야구 역사를 새로 썼기 때문이다.
당시 그는 투수로 3경기에 나서 2승 1세이브, 평균자책점 1.86이라는 완벽한 투구를 선보였고, 타석에서도 7경기 동안 10안타 1홈런 8타점, 타율 0.435와 OPS 1.345라는 비현실적인 화력을 뿜어내며 일본의 우승을 직접 견인했다.
하지만 2026년의 현실은 냉혹하다. 데이브 로버츠 다저스 감독은 지난 1일 "WBC에서 오타니의 투구는 없다"고 단언했다.
두 차례의 팔꿈치 수술 이력을 가진 '7억 달러의 사나이'를 보호하기 위한 구단의 비즈니스적 결단이자, 선수 본인이 커리어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 내린 선택이다.
단순히 의지의 문제를 넘어 촘촘한 규정의 그물망 역시 오타니의 마운드행을 가로막고 있다. 이번 대회의 야수 등판 규정은 아직 베일에 싸여 있으나 지난 대회의 전례를 비추어 볼 때 WBC 기술위원회의 사전 승인 없이는 야수의 투구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설령 오타니가 기적적인 회복세를 보여 등판을 자원하더라도, 대회 직전 평가전부터 실전 등판에 이르기까지 복잡한 행정적 절차를 통과하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는 분석이다.
일본 현지의 반응은 아쉬움을 넘어 당혹감에 가깝다. "오타니의 등판 없이는 미국의 파상공세를 막아내기 어렵다"는 우려 섞인 탄식이 쏟아지고 있다. 2023년 결승전 9회말, 마이크 트라웃을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전 세계에 전율을 안겼던 그 '기적의 순간'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상실감이다.
2026년의 오타니는 오직 방망이 하나로 일본의 2연패를 짊어져야 한다. '투수 오타니'라는 가장 강력한 무기를 내려놓은 일본 대표팀이, 타격에만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게 될 오타니와 함께 어떤 새로운 전략을 구사할지가 이번 대회의 최대 쟁점이 됐다.
전설적인 이도류의 시대는 잠시 멈췄지만, 타자로서의 한계를 시험하게 될 오타니의 또 다른 도전이 시작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Jomboy media, MLB닷컴, MHN DB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