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스타in 이석무 기자] 2026 밀라노-코르티나 동계올림픽에 참가한 우크라이나 스켈레톤 선수가 러시아의 침공으로 숨진 자국 선수들의 얼굴이 담긴 헬멧을 착용하려다 출전 금지 조치를 당했다.
우크라이나 스켈레톤 국가대표 블라디슬라브 헤라스케비츠는 13일(현지시간) 이탈리아 코르티나담페초에서 열린 대회 남자 스켈레톤 경기를 불과 몇 시간 앞두고 출전 명단에서 제외됐다.
국제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IBSF) 심판단이 그가 착용하려 한 헬멧이 올림픽 헌장 및 IOC 선수 표현 가이드라인을 위반한다고 판단해서 내린 결정이다.
IOC는 경기장 및 시상식에서 정치적 시위나 메시지를 금지하는 규정을 적용해왔다. 최근 며칠간 헤라스케비치와 절충안을 놓고 협의하기도 했다. 실제로 IOC는 헤라스케비츠가 훈련에서 해당 헬멧을 사용하는 것을 허용했다. 검은 완장을 부착하거나 경기 후 공동취재구역에서 헬멧을 드는 방안도 제시했다. 하지만 헤라스케비츠는 “같은 조건에서 경쟁할 권리가 있다”며 대체 헬멧 착용을 거부했다.
마크 애덤스 IOC 대변인은 밀라노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헤라스케비츠는 경기에 출전하길 진심으로 원했다”며 “우리는 슬픔을 표현할 여러 기회를 제공했다. 하지만 규칙 없는 스포츠는 존재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러시아의 침공으로 세상을 떠난 우크라이나인들의 얼굴을 새긴 헬멧을 쓴 우크라이나 스켈레톤 선수 블라디슬라브 헤라스케비츠. 사진=AFPBBNews
커스티 코벤트리 IOC 위원장도 헤라스케비츠와 직접 면담을 가졌다. IOC는 당초 그의 선수 자격을 박탈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코벤트리위원장의 요청으로 징계위원회가 재검토해 헤라스케비츠가 대회에 마무는 것은 허용하기로 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즉각 반발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헤라스케비츠에게 ‘자유 훈장’을 수여하며 “IOC 결정은 올림픽 정신의 공정성과 평화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어 “스포츠는 전쟁을 멈추는 데 기여해야지, 침략자 편에 서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헤라스케비츠는 자신의 SNS 영상에서 “스캔들을 원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IOC의 부당한 규정 해석이 논란을 만들었다”며 “헬멧은 정치적 메시지가 아니라 추모의 의미”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그는 이 문제를 스포츠중재재판소(CAS)에 제소하기로 했다. 대회 기간 한시적으로 운영되는 CAS 임시재판부에는 이 사건이 아직 접수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IOC는 20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한 이후 러시아올림픽위원회에 강도높은 제재를 가했다. 2024 파리 하계올림픽과 이번 밀라노-코르티나 동계올림픽에서 러시아 선수들을 ‘개인 중립 선수’자격으로 제한적으로 출전하도록 했다. 다만 최근 러시아의 국제스포츠 무대 복귀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우크라이나의 경계심도 커진 상황이다.
헤라스케비츠의 아버지이자 코치인 미하일로 헤라스케비츠는 “전사자 추모는 협상의 대상이 아니다”며 “IOC가 선수 한 명이 아니라 우크라이나 전체를 실격시켰다”고 주장했다. 이어 “아들은 최근 훈련 성적으로 봤을때 메달권 경쟁이 충분히 가능했다”고 강조였다.
우크라이나의 반발에 대해 IOC는 “이번 조치는 러시아를 보호하거나 우크라이나를 침묵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코벤트리 위원장은 “헤라스케비츠의 메시지는 강력하고 기억의 의미를 담고 있다”며 “그 점에는 누구도 이견이 없다”고 밝혔다.
올림픽은 정치와 스포츠의 경계 사이에서 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이번 사건의 여론과 IOC의 후속 대응은 향후 러시아의 올림픽 복귀 논의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