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리는 21일(한국시간) 이탈리아 밀라노 아이스스케이팅 아레나에서 열린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여자 1500m 결승에서 2분32초076으로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했다. 결승선을 끊는 순간 두 팔을 번쩍 들어 올렸다. 한국 쇼트트랙의 새로운 에이스 탄생을 알리는 상징적 장면이었다.
'뉴에이스' 김길리가 여자 1500m 금메달을 획득한 뒤 태극기를 몸에 두른 채 기뻐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쇼트트랙 여자 1500m 결승을 마친 뒤 김길리(오른쪽)와 최민정이 함께 기뻐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번 대회에서 김길리의 시작은 불안했다. 혼성 2000m 계주 준결승에서 미국의 커린 스토더드와 부딪혀 넘어지는 불운을 겪었다. 결승 진출이 좌절되자 아쉬움의 눈물이 먼저 터졌다. 빙판 위에 주저앉은 그의 얼굴엔 진한 먹구름이 가득했다. 하지만 그는 다시 스케이트 끈을 질끈 묶었다. 그 장면은 좌절의 끝이 아니라 반전의 시작이었다.
20일 열린 여자 3000m 계주 결승에서 김길리는 마지막 주자로 나섰다. 2바퀴를 남기고 직선 주로에서 인코스를 파고들었다. 선두를 달리던 아리아나 폰타나(이탈리아)를 스쳐 지나가듯 제쳤다. 마지막 코너에서 살짝 휘청였지만 두 손으로 빙판을 짚고 버텼다. 넘어지지 않겠다는 의지가 만든 초인적 힘이었다. 그대로 결승선을 통과했고 이번 올림픽 쇼트트랙 첫 금메달로 이어졌다.
계주에서 마음의 짐을 덜어낸 김길리는 1500m 결승에서 본격적으로 제 실력을 벌휘했다. 레이스 중반까지 뒤에서 기회를 노리다 마지막 두 바퀴를 남기고 속도를 끌어올렸다. 스케이트 날이 얼음을 긁는 소리가 경기장에 울렸다. 대표팀 선배이자 롤모델인 최민정까지 제치고 맨 앞으로 나섰다.
최민정도 욕심을 부리지 않고 후배에게 길을 터줬다. 세대교체를 의미하는 상징적인 장면이 연출됐다. 결승선을 통과한 뒤 김길리는 힘있게 포효한 뒤 최민정과 뜨거운 포옹을 나눴다.
시상대에 오른 김길리는 애국가가 울려 퍼지자 눈시울을 붉혔다. 대회 초반 아쉬움의 눈물을 흘렸던 그는 이날 기쁨과 안도의 눈물을 흘렸다. 그동안 그의 두 어깨를 짓눌렀던 부담감을 털고 비로소 마음껏 웃었다.
2004년생 김길리는 주니어 시절부터 장거리 종목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강한 체력을 바탕으로 한 후반 추월에 뚜렷한 강점을 보였다. 2023~24시즌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월드투어 종합 1위에 오르며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후 국제대회에서 다소 기복을 나타내기도 했지만 이번 올림픽을 통해 진정한 세계 최강자가 됐음을 증명했다. 넘어졌던 자리에서 더 빠르게 일어서는 법을 배웠다.
한국 여자 쇼트트랙은 전이경에서 최민정으로, 그리고 다시 김길리로 이어지는 계보를 완성했다. 늘 위기의 순간을 맞이했지만 그때마다 자연스레 새 영웅이 탄행했다. 밀라노의 주인공은 단연 김길리였다. 김길리의 활약 속에 한국 쇼트트랙은 위기 속에서 다시 웃을 수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