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 주역' 응어리 씻어낸 이정후 "수많은 행운, 하늘이 도왔다"[WBC]

스포츠

뉴스1,

2026년 3월 10일, 오전 12:42

9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2026 월드베이스볼클래식 조별리그 C조 대한민국과 호주의 경기. 3회초 대한민국 공격 무사 2루때 이정후가 1타점 적시타를 친 뒤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2026.3.9 © 뉴스1 구윤성 기자

"행운의 여신이 우리를 도와줬다."

'류지현호 주장' 이정후는 2026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기적의 8강 진출을 일군 뒤 이렇게 말했다.

류지현 감독이 이끄는 한국 야구대표팀은 9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2026 WBC 1라운드 C조 4차전에서 호주에 7-2로 승리, 극적으로 8강 진출권을 따냈다.

2승2패로 호주, 대만과 동률을 이룬 한국은 아웃카운트 당 최소 실점률에서 앞서며 일본(3승)에 이어 조 2위를 차지, 17년 만에 8강 무대를 밟게 됐다.

2실점 이하로 막고 5점 차 이상으로 이겨야 하는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류지현호는 '역사적인 승리'를 따냈다.

전날(8일) 대만전에서 안타 4개로 차갑게 식었던 타선은 뜨겁게 타오르며 호주 마운드를 무너뜨렸다. 불펜도 위태로운 모습을 보였지만, 숱한 위기에도 2실점으로 버텨냈다. 그리고 이정후가 운명의 9회에 맹활약하며 '도쿄돔의 기적'을 완성했다.

8회말 뼈아픈 실점으로 6-2가 된 상황에서 펼쳐진 9회초. 이정후가 1사 1루에서 때린 타구가 투수 잭 오러플린의 글러브를 맞고 굴절된 데다 유격수 제리드 데일이 2루 송구 실책을 범했다. 내야 땅볼이 될 타구로 1사 1, 3루를 만들었고 곧이어 안현민의 중견수 희생플라이로 1점을 추가했다.

다시 실점 없이 5점 차 우위를 지켜야 9회말, 이번에는 이정후가 호수비를 펼쳤다. 1사 1루에서 우중간을 가르는 릭슨 윙그로브의 타구를 슬라이딩 캐치로 잡아냈다.

경기 후 이정후는 "여러 행운이 모여 이룬 승리였다"며 "어제 일본이 호주를 잡아주면서 우리에게 기회가 왔다. 또 우리가 먼저 선공했기 때문에 이기는 상황에서 한 번 더 공격할 수 있었다. 이건 매우 크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9일 오후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2026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C조 대한민국과 호주의 경기, 9회말 1사 1루 대한민국 이정후가 윙그로브의 타구를 잡아낸 뒤 안도하고 있다. 2026.3.9 © 뉴스1 구윤성 기자

이어 "9회초 타석 때도 타구가 투수의 글러브에 맞지 않았다면 상상하기도 싫은 일이 일어났을 것이다. 그런데 행운이 따르면서 유격수 실책까지 나왔다"며 "9회말 수비 때도 우중간 방향으로 이동했기 때문에 타구를 캐치할 수 있었다. 사실 타구가 조명에 들어갔는데, 이마저도 운 좋게 잡을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한국이 5회초까지 5-0을 만들며 8강 진출 조건을 충족했지만, 이후 호주의 거센 반격에 마지막까지 긴장의 끈을 늦출 수 없었다.

이정후는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분위기가 처지진 않았다. 호주에 한 점을 주더라도 우리가 7점만 내면 된다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마지막 9회말 수비에 들어갈 때는 제 야구 인생 중 가장 떨렸던 것 같다"고 했다.

큰 중압감을 이겨내고 5점 차 승리를 지켜낸 마무리 투수 조병현에게도 엄지를 치켜세웠다. 이정후는 "모든 선수가 맡은 역할을 너무 잘해줬지만, (조)병현이가 가장 마음고생이 심했을 것이다. 멀티 이닝을 잘 막아준 병현이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이번 대표팀에 합류했을 때 이정후는 "내가 프로에 입단하고 국가대표로 발탁된 뒤 항상 참사였다. 내가 참사의 주역인 것 같다"고 자책한 바 있다.

그 응어리를 마침내 씻어낸 이정후는 "과거 왕조의 주역이었던 (류)현진 선배도 있고, 앞으로 새로운 왕조를 만들어갈 후배들도 있다. 그들의 기운이 더 강했다"며 "그동안 국제대회에서 좋지 않은 성적을 냈던 (박)해민이형, (고)우석이, (김)혜성이와도 이야기를 나눴다. 오늘 드디어 끊어낸 것 같다"고 기뻐했다.

또한 이정후는 "대표팀의 스태프, 지원스태프, 코칭스태프, 선수들, 그리고 현장에 오신 팬과 한국에서 응원해주신 팬 모두가 우리의 승리를 바라는 한마음으로 모이면서 수많은 행운이 왔다"고 했다.

9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2026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조별리그 C조 대한민국과 호주의 경기, 7-2 승리로 8강 진출을 확정지은 대한민국 문보경, 안현민이 이정후를 끌어안고 있다. 2026.3.9 © 뉴스1 구윤성 기자

지난해 메이저리그 무대에서 수비 문제를 지적받았던 이정후에게도 의미가 컸던 호주전이었다.

지난해까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주전 중견수로 활약했던 이정후는 '수비가 뛰어난' 중견수 해리슨 베이더의 합류로, 포지션을 우익수로 이동했다.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지만, 그는 팀을 위해 기꺼이 받아들였다.

이정후는 "지난해 수비 부분에서 많이 부족하게 느꼈고 많이 반성했다. 솔직히 멘털적으로도 흔들렸다"면서 "그래서 비시즌 때 이를 가장 신경 많이 썼고, 스프링캠프에 가서도 정말 열심히 수비 훈련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큰 경기에서 호수비를 펼치면서 큰 자신감을 얻게 됐다.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됐다"고 만족감을 표했다.

대표팀은 전세기를 타고 8강 토너먼트가 열리는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로 향해 오는 14일 론디포파크에서 D조 1위와 4강행을 다툰다. D조 1위는 도미니카공화국 혹은 베네수엘라가 유력하다.

이정후는 "강팀을 계속 만나게 되지만, 끝까지 열심히 최선을 다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rok1954@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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