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 사각지대에 갇힌 꿈' 부산경호고 유도부, 지원 절실한 이유

스포츠

이데일리,

2026년 3월 31일, 오전 11:27

[이데일리 스타in 이석무 기자] 요즘처럼 엘리트 체육이 외면받는 시대에 부산의 한 고등학교 유도부가 기적 같은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전용 훈련장도, 제대로 된 매트도 없이 시작한 부산경호고등학교 유도부가 그 주인공이다.

부산경호고 유도부 학생들. 가장 왼쪽은 김재범 대한체육회 경기력향상위원장. 사진=부산경호고
김재범(왼쪽) 대한체육회 경기력향상위원장. 황태원 부산경호고 유도부 감독. 사진=올파이츠 유니버스
하지만 이들의 빛나는 땀방울 이면에는 ‘제도적 사각지대’라는 장벽이 가로막고 있다. 31일 체육계에 따르면, 지난 2024년 단 6명의 선수로 첫발을 뗀 부산경호고 유도부는 지도자들의 헌신과 학생들의 노력에 힘입어 2년 만인 현재 17명으로 규모가 확대됐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 자칫 방황할 수 있었던 학생들을 스포츠의 길로 이끈 결과다.

이들은 현재 관할 교육청으로부터 단 1원의 예산 지원도 받지 못하고 있다. 일반 고등학교가 아닌 ‘학력 인정 고등학교’로 분류돼있기 때문이다.

부산경호고는 1970년 설립된 ‘새길 선도학원’이 뿌리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정규 중학교나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어린 나이에 공장 등에서 일해야 했던 청소년에게 배움의 기회를 주기 위해 설립된 사회교육시설(야학, 실업학교)로 시작했다.

처음에는 정식 학교로 인정받지 못해 이 곳 학생들은 국가가 공인한 고등학교 졸업장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1980년대 후반부터 국가적으로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열심히 공부한 사람들의 노력을 인정해 주자’는 움직임이 생겼다. 결국 1988년 ‘학력인정 사회교육시설’로 공식 인가를 받은데 이어 1996년 지금 형태인 ‘학력인정 평생교육시설’로 지정됐다.

현재 부산경호고는 일반 고등학교는 아니지만, 정해진 교육과정을 마치면 정규 고등학교를 졸업한 것과 똑같은 자격(대학 진학 가능 등)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이곳 유도부 학생들은 ‘구시대적 제도’ 탓에 운동을 하고 싶어도 일반 학생들과 같은 기본적인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 공식적인 ‘학교 운동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똑같은 고교 유도부 선수지만 훈련 장비 구매는 물론, 대회 출전비, 훈련장 대관료 등 모든 비용을 지도자 사비와 주변의 도움에만 의존하고 있다.

막막한 현실 속에서도 팀을 지탱한 것은 주변의 따뜻한 연대였다. 김재두 부산경호고 교장은 학생들의 가능성을 믿고 창단을 밀어붙였다. 정수범 부산광역시 유도회장도 유도회 훈련장 사용을 흔쾌히 허락했다. 현장에서는 최일균 부장교사가 울타리가 됐고, 국가대표 출신 황태원 감독이 사비를 털어가며 선수들의 기본기를 다지고 있다.

이들의 사연이 알려지자 대한민국 유도 ‘레전드’ 김재범 대한체육회 경기력향상위원장도 팔을 걷어붙였다. 김 위원장은 직접 훈련장을 찾아 학생들에게 세계 최정상급 기술을 전수하며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다.

황태원 감독은 “우리 아이들은 설립 형태가 다른 학교에 다닌다는 이유만으로 똑같이 흘린 땀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며 “제도적 소외 속에서도 묵묵히 매트를 지키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지도자로서 가슴이 아프다”고 털어놓았다.

부산경호고 유도부는 부산시교육청과 시 체육회 등 관계 기관에 제도 개선을 간곡히 호소하고 있다. 체육계 관계자는 “규정과 제도의 틀에 갇혀 학생들의 열정이 꺾이지 않도록, 학력 인정 학교 운동부에 대한 예외적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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