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워진 이름에서, 에이스로' 키움 배동현의 인생 역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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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2026년 4월 13일, 오전 10:45

[이데일리 스타in 이석무 기자] 프로야구 정규시즌 초반 가장 큰 화제의 인물은 키움히어로즈 투수 배동현(28)이다. 주전 경쟁에서 밀려 쫓겨나듯 유니폼을 갈아입었던 투수가 불과 몇 달 만에 팀의 에이스로 발돋움했다.

배동현은 지난 12일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26 KBO리그 롯데자이언츠와 홈 경기에서 선발 안우진에 이어 두 번째 투수로 등판, 6이닝 무실점 호투를 펼쳤다.

최고 148km에 이르는 묵직한 직구에 슬라이더, 체인지업, 커브를 적절히 섞어 던지면서 롯데 타선을 잠재웠다. 78구로 6이닝을 정리할 만큼 공격적이면서 효율적인 투구를 펼쳤다. 선발이 아닌 상황에서도 사실상 ‘퀄리티스타트’에 준하는 내용을 만들어내 키움의 2-0 승리를 견인했다.

이 승리로 배동현은 시즌 3승째를 기록하며 리그 다승 공동 선두에 올라섰다. 평균자책점도 1.65까지 낮췄다. 시즌 초반 가장 돋보이는 투수 중 한 명으로 자리 잡았다. 반짝활약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경쟁력을 입증하는 모습이다.

한때 명단에서 지워졌던 선수에서 새로운 팀의 에이스로 거듭난 배동현. 사진=키움히어로즈
키움히어로즈 배동현. 사진=키움히어로즈
배동현은 하루아침에 하늘에서 떨어진 선수가 아니다. 경기고-한일장신대를 졸업한 뒤 2021년 신인드래프트 2차 5라운드 42순위로 한화이글스에 지명됐다. 입단 당시에도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체격 조건이나 구위는 평범했다.

프로 첫 해는 1군 경기에 20차례 등판했다. 1승3패 평균자책점 4.50으로 성적은 무난했다. 하지만 38이닝을 던지면서 볼넷을 25개나 내줄 정도로 제구 불안이 뚜렷했다.

배동현은 이후 1군에서 기회를 얻지 못했다. 상무에서 군 복무를 마치고 2023년 한화로 복귀했지만 두터운 투수진에 밀려 퓨처스리그에서 계속 머물렀다. 특히 2024년에는 29경기에 나와 평균자책점 0.30의 빼어난 성적을 남겼지만 여전히 그의 자리는 2군이었다.

선수 인생의 큰 변화는 밖에서 찾아왔다. 한화는 2025년 2차 드래프트에서 배동현을 보호선수 35인 명단에 포함시키지 않았고, 키움이 3라운드에서 그를 지명했다. 지명 순위에서도 나타나듯 큰 주목을 받지 못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는 키움 구단이 내린 최고의 결정이 됐다.

키움 유니폼을 입은 배동현은 색깔을 완전히 바꿨다. 과거에는 구속에 의존하는 단조로운 투구 패턴이었다. 지금은 슬라이더와 체인지업, 커브를 적절히 섞는 ‘완성형 투수’로 진화했다. 구속 자체는 과거와 큰 변화가 없다. 하지만 타자를 상대하는 방식이 달라졌다. 맞더라도 스트라이크를 잡는 데 적극적이다. 그 결과 올 시즌 16⅓이닝을 던지면서 볼넷을 단 2개만 내줬다.

배동현은 올 시즌 키움이 거둔 4승 중 3승을 책임졌다. 3승 모두 팀 연패 상황에서 따냈다. 팀 흐름을 전환하는 ‘스토퍼’로 자리매김했다. 불안정했던 키움 마운드에서 가장 확실한 카드로 자리 잡았다.

경기 후 배동현은 “팀 연패를 끊을 수 있어 기쁘다. (안)우진이의 뒤를 지켜주고 싶었다”며 “다음에는 연승을 이어가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의 말 속에는 어렵게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가 묻어 있다.

2차 드래프트는 1군 기회를 얻지 못한 선수들에게 새로운 기회와 환경을 제공하기 위한 제도다. 대표적 성공 사례로는 LG트윈스 2루수 신민재가 꼽힌다. 두산베어스에서 자리 잡지 못했던 그는 LG로 이적 후 빠른 발과 수비를 앞세워 주전으로 도약했다. 팀 우승에도 기여하며 커리어를 완전히 뒤바꿨다. 골드글러브를 수상했고 국가대표로서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도 참가했다.

배동현 역시 신민재와 같은 흐름 위에 서 있다. 팀이 바뀌자 역할이 바뀌었다. 역할이 바뀌자 결과가 달라졌다. 2차 드래프트가 ‘흙 속의 진주’를 발견한 전형적인 사례다.

퓨처스리그를 전전하던 시절, 배동현은 ‘가능성은 있지만 기회가 없는 투수’로 분류됐다. 이제는 기회를 스스로 증명하는 단계에 올라섰다. 단순한 반짝 활약이 아니라 팀의 운명을 믿고 맡길 투수로 자리매김하는 과정이다.

한때 명단에서 지워졌던 이름이, 이제는 마운드 위에서 가장 또렷하게 불리고 있다. 배동현의 성장 드라마는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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