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OSEN=이인환 기자] 무너진 건 왕즈이였다. 그리고 그 장면이 모든 것을 설명했다. 체력전에서 먼저 무릎을 짚었다. ‘안세영 시대’가 왜 쉽게 끝나지 않는지, 가장 명확하게 드러난 순간이었다.
안세영(24, 삼성생명)은 12일 중국에서 열린 2026 아시아배드민턴선수권대회 여자단식 결승에서 왕즈이를 게임 스코어 2-1(21-12, 17-21, 21-18)로 제압하며 정상에 올랐다. 단순한 우승이 아니었다. 흐름을 다시 되찾은 승리였다.
둘의 관계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상대 전적 18승 5패. 안세영의 압도적인 우위였다. 하지만 직전 전영 오픈 결승에서 왕즈이가 승리를 거두며 균열이 생겼다. 중국은 들끓었다. ‘공략법을 찾았다’는 평가가 쏟아졌다.
핵심은 체력이었다. 그동안 안세영의 상징이던 스테미너를 상대로 왕즈이가 버텨내며 승리를 가져간 것이 결정적이었다. 흐름이 바뀌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준비도 집요했다. 왕즈이는 이번 대회를 앞두고 산악 훈련까지 소화했다. 베이징 서산 팔대처에서 약 2300계단을 오르는 코스를 반복했다. 안세영이라는 벽을 넘기 위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결승은 100분에 달하는 혈투로 이어졌다. 결국 승부는 체력전으로 흘렀다. 그리고 3세트. 마지막 순간까지 버틴 건 안세영이었다.
중국 ‘소후’도 이를 인정했다. “3점 차 접전이었지만 체력과 운영에서 승부가 갈렸다”고 분석했다.
특히 경기 도중 왕즈이가 허리를 숙이고 무릎을 짚는 장면에 주목했다. “안세영보다 먼저 체력 한계에 도달했다. 매우 이례적이다”라는 평가였다.
경기의 본질은 단순했다. 흔들림이었다. 안세영은 전후 코트를 끊임없이 활용하며 템포를 조절했다. 베이스라인을 장악한 상태에서 네트와 후위를 자유롭게 오갔다. 단순한 랠리가 아니었다. 설계된 압박이었다.
왕즈이의 수비는 여전히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버티지 못했다. 후반으로 갈수록 무게 중심이 무너졌고, 실수가 늘어났다. 반대로 안세영은 흔들리지 않았다. 컨트롤 실수는 거의 없었다.
결국 다시 증명했다. ‘완성도’의 차이다. 체력, 운영, 집중력. 모든 요소에서 안세영이 한 단계 위였다.
이 승리로 안세영은 올림픽, 세계선수권, 아시안게임, 아시아선수권까지 모두 석권했다. 커리어 그랜드슬램 완성이다. 더 이상 증명할 것이 없는 단계에 도달했다.
경기 후 안세영은 솔직했다. “답답했던 것이 해소됐다. 편안하다”면서도 “부담감에 욕심도 생겼다. 그래도 해내서 후련하다”고 말했다. 정상의 무게를 스스로 이겨낸 과정이었다.
흥미로운 건 태도다. 도전자들의 추격을 부담이 아닌 동력으로 삼는다. “상대들이 점점 더 준비한다는 걸 느낀다. 나도 더 나아가야 한다는 힘이 된다”라고 했다. 이어 “힘들지만 더 재밌어진다”고 덧붙였다.
결국 결론은 명확하다. 왕즈이의 도전은 의미 있었지만, 판을 바꾸기에는 부족했다. 그리고 그 격차는 여전히 존재한다. 안세영은 다시 정상에 섰다. 그리고 그 자리는 아직 흔들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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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대한배드민턴협회, 아시아배드민턴연맹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