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LA 다저스 프레디 프리먼 ⓒGettyimages(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https://file.osen.co.kr/article/2026/05/10/202605101822777183_6a0094afbd857.jpg)
![[사진] 애틀랜타 바비 콕스 전 감독 ⓒGettyimages(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https://file.osen.co.kr/article/2026/05/10/202605101822777183_6a0094b023a01.jpg)
[OSEN=이상학 객원기자] “바비는 아직도 내 안에 있다.”
1990년대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바비 콕스 전 감독이 지난 10일(이하 한국시간) 별세했다. 향년 84세. 한 시대를 풍미한 거장의 영면에 메이저리그 전체가 애도했다.
별세 소식을 알린 애틀랜타 구단은 “콕스 감독은 야구계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사람이었고, 특히 그를 위해 뛰었던 선수들에게 사랑받았다. 선수 육성과 경기를 운영하는 그의 풍부한 지식은 2014년 야구 명예의 전당 헌액이라는 최고의 영예로 보답받았다. 애틀랜타 감독으로서 그의 유산은 누구도 따라잡을 수 없을 것이다”고 추모했다.
롭 만프레드 MLB 커미셔너도 “바비 콕스는 야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전성기 중 하나를 이끌었다. 애틀랜타 감독으로서 그의 팀은 매년 10월 포스트시즌 단골이었고, 한 세대의 팬들에게 꾸준함, 프로 정신, 챔피언십 야구를 상징했다. 그의 리더십과 재능을 알아보는 안목, 선수 육성에 대한 헌신은 수많은 명예의 전당 헌액 선수들의 커리어 형성에 기여했다”며 고인의 업적을 기렸다.
콕스 감독과 함께한 몇 안 되는 현역 선수 중 한 명인 프레디 프리먼(36·LA 다저스)도 이날 아침 스승의 별세 소식을 듣고 슬픔에 빠졌다. 마침 이날 애틀랜타는 다저스 원정이었고, 프리먼은 경기 전 현지 언론과 만나 콕스 감독과 추억을 떠올렸다. 지난 2010년 9월 애틀랜타에서 메이저리그 데뷔한 프리먼은 콕스 감독의 마지막 시즌 끝자락을 지켜봤다. 스프링 트레이닝도 2년을 함께했다.
‘ESPN’을 비롯해 현지 언론에 따르면 프리먼은 “브레이브스 팬들에게, 야구계 전체에 슬픈 날이다. 오늘 내내 그와의 기억들을 떠올렸다. 콕스 감독이 사인해준 유니폼이 애틀랜타 집에 걸려있다. 거기에는 ‘프레디에게, 계속 쳐라’라고 적혀 있다”며 애틀랜타에서 배운 것을 지금도 지키고 있다고 했다.
![[사진] 애틀랜타 바비 콕스 전 감독 ⓒGettyimages(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https://file.osen.co.kr/article/2026/05/10/202605101822777183_6a0094b095262.jpg)
프리먼은 “애틀랜타는 일을 조금 다르게 처리하는데 그게 바로 브레이브스 방식이다. 내가 배운 방식이다. 지금도 내가 지키는 것들이 있다. 타격 연습 때 유니폼 모든 단추를 채우며 모자는 항상 정면을 향하게 쓴다. 모자를 거꾸로 쓰지 않고, 선글라도 마찬가지다. 내일 구름이 지나가더라도 내가 쓴 모자의 LA 로고 위로 선글라스를 걸친 모습은 보지 못할 것이다. 모자 뒤에 걸쳐놓을 테니까 말이다. 그게 바비의 방식이다. 바비는 여전히 내 안에 살아있다”고 말했다.
프리먼은 전형적인 ‘올드스쿨’ 선수로 애틀랜타 시절 큰 선글라스를 쓰고 모자를 푹 눌러쓰고 나타난 신인 로날드 아쿠냐 주니어를 따끔하게 혼낸 일화도 있다. 다저스에 와서도 웬만해선 경기에 빠지지 않고 출장을 고집해 로테이션 휴식에 익숙한 클럽하우스 문화도 바꿨다. 이런 고집스러움이 때로는 꼰대처럼 비쳐질 수 있지만 신인 때 콕스 감독에게 배운 프리먼의 철칙은 36세가 된 지금까지 롱런하는 비결이 되고 있다.
콕스 감독이 이끄는 애틀랜타 선수들은 항상 타격 연습 때 유니폼을 풀로 입어야 했다. 모자를 뒤집어 쓰거나 삐딱하게 쓸 수도 없었다. 선글라스는 구단 로고를 가리지 않게끔 모자 뒤에 걸어뒀고, 클럽하우스에서는 시끄러운 음악이 흘러나오지 않았다. 하나된 팀을 만들기 위해 엄격했던 콕스 감독이지만 그 속에는 진심 어린 애정과 격려가 있었다.
![[사진] 애틀랜타 바비 콕스 전 감독 ⓒGettyimages(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https://file.osen.co.kr/article/2026/05/10/202605101822777183_6a0094b1218c1.jpg)
지난 1998~2000년 애틀랜타 선수로 콕스 감독과 함께한 월트 와이스 현재 애틀랜타 감독은 “그가 남긴 유산의 일부가 될 수 있었다는 건 정말 큰 영광이다. 내가 함께한 가장 위대한 리더 중 한 명으로 팀 내 충성심을 고취시키는 데 있어 최고였다. 그건 그가 선수들을 격려하는 방식 때문이었다. 항상 선수들이 실제보다 더 잘하고 있다고 느끼게 해줬다”며 1999년 월드시리즈에서 양키스에 패했을 때 감정을 그 예로 들었다. 와이스 감독은 “그때 선수들이 느낀 감정은 콕스 감독을 실망시켰다는 것이었다. 프로스포츠에서 그런 감정을 느끼는 것이 쉽지 않다. 선수들이 콕스 감독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보여주는 것이다”며 선수들로부터 존경받는 감독이었다고 강조했다.
선수 시절 뉴욕 양키스에서 메이저리그 2년만 뛴 내야수 출신 콕스 감독은 1978년 애틀랜타 감독으로 부임했다. 4년간 팀을 이끌었지만 지난 7일 91세로 타계한 테드 터너 구단주에 의해 해임됐고, 1982~1985년 토론토 블루제이스 사령탑을 거쳐 단장으로 애틀랜타에 컴백했다. 터너 구단주의 부름이 있었다. 1990년 존 슈어홀츠에게 단장 자리를 넘겨준 뒤 다시 감독으로 애틀랜타 지휘봉을 잡았고, 이때부터 화려한 전성기가 열렸다. 1991~2005년(1994년 파업 시즌 제외) 역대 최장 14년 연속 지구 우승을 달성했고, 1995년 애틀랜타 연고지 이전 이후 첫 월드시리즈 우승도 해냈다.
콕스 감독의 성적은 29시즌 통산 4508경기 2504승2001패(승률 .556). 2504승은 역대 감독 중 4위에 해당한다. 그 중 2149승을 애틀랜타에서 거뒀는데 1991~2010년 애틀랜타에서 기록한 승률(.581)은 같은 기간 ‘악의 제국’ 양키스(.582) 다음 높은 수치다. 내셔널리그(NL) 동부지구 우승 15회, NL 우승 5회, 월드시리즈 우승 1회, 올해의 감독상 4회 수상의 화려한 업적을 남긴 콕스 감독은 역대 최다 162회의 최다 퇴장 기록도 갖고 있다. 억울해하는 선수들을 지키기 위해 심판들과 맞섰다.
![[사진] 애틀랜타 바비 콕스 전 감독이 심판에게 항의하다 퇴장을 당하고 있다. ⓒGettyimages(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https://file.osen.co.kr/article/2026/05/10/202605101822777183_6a0094b184af8.jpg)
콕스 감독 밑에서 수많은 슈퍼스타들이 탄생했다. 당대 최고 투수였던 그렉 매덕스, 톰 글래빈, 존 스몰츠, 그리고 3루수 치퍼 존스, 1루수 프레드 맥그리프, 중견수 앤드류 존스 등 명예의 전당 선수들이 콕스 감독 밑에서 뛰며 전성기를 보냈다.
미래 명예의 전당 선수인 프리먼은 “명예의 전당 감독에게 지도를 받는 선수는 많지 않다. 나의 빅리그 첫 감독은 명예의 전당 감독이었고, 그는 우리를 끝까지 지켜줬다. 선수 한 명, 한 명과 인간적으로 소통하는 감독이었다. 19세 선수와 40세 선수를 똑같이 아꼈다”며 2010년 9월 첫 날 확장 로스터 때 콜업된 뒤 만난 콕스 감독과 추억을 떠올렸다.
데뷔를 앞두고 프리먼은 경기 전 라커룸 앞에서 멍하니 서있었다. 극도의 긴장감에 토할 뻔 했던 그때, 콕스 감독이 걸어와선 “젠장, 빅리그에 오기까지 왜 이렇게 오래 걸렸어?”라고 말했다. 프리먼은 “그 순간 긴장이 싹 사라졌다”며 “콕스 감독은 동료애와 단합, 하나의 팀으로서 행동하는 방법 등을 가르쳐준 훌륭한 사람이었다. 내가 성장한 방식이었고, 그가 가르쳐준 것이다. 지금까지도 그것에 감사하다”고 고인에게 감사의 뜻을 표했다. /waw@osen.co.kr
![[사진] 애틀랜타 신인 시절 프레디 프리먼 ⓒGettyimages(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https://file.osen.co.kr/article/2026/05/10/202605101822777183_6a0094b1ea05a.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