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짝 카드 아니었다…이기혁, 왼쪽 스토퍼로 월드컵 옵션 입증

스포츠

OSEN,

2026년 5월 31일, 오후 07:44

[OSEN=이인환 기자] 깜짝 발탁이 아니라 월드컵용 실험이었다. 이기혁이 왼쪽 스토퍼로 풀타임을 소화하며 홍명보호 수비 조합에 새로운 선택지를 남겼다.

한국 축구대표팀은 31일(한국시간) 미국 유타주 프로보의 브리검영대 사우스필드에서 열린 트리니다드토바고와 평가전에서 5-0으로 승리했다. 손흥민과 조규성의 멀티골이 가장 크게 보인 경기였지만, 수비 쪽에서는 이기혁의 위치와 활용법도 눈에 띄었다.

이기혁은 이날 스리백의 왼쪽 스토퍼로 선발 출전해 끝까지 뛰었다. 대표팀 경험이 많지 않은 선수에게 월드컵 직전 평가전 풀타임은 가벼운 의미가 아니다. 홍명보 감독은 단순히 숫자를 채우기 위해 그를 세운 것이 아니었다. 왼발 패스와 대각선 전환, 후방 빌드업에서 이기혁의 장점을 살리려는 의도가 분명했다.

한국은 전통적으로 왼발 센터백 자원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빌드업을 시작하는 방향, 상대 압박을 벗어나는 첫 패스, 측면으로 빠지는 전환 패스는 발 방향에 따라 질이 달라진다. 이기혁은 왼쪽에서 공을 잡았을 때 중앙과 반대편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선수다. 약체 상대였다고 해도 이런 장점은 평가할 만했다.

이날 한국은 후방에서 무리하게 길게 차기보다 수비 라인에서 공을 돌리며 전진하는 장면을 여러 차례 만들었다. 이기혁은 왼쪽에서 공을 받은 뒤 전방이나 반대편으로 패스를 뿌리며 템포를 조절했다. 상대가 강하게 압박하지 않은 환경이긴 했지만, 월드컵을 앞두고 특정 전술 옵션을 실전에서 시험했다는 점은 의미가 있다.

다만 보완점도 있었다. 홍명보 감독은 이기혁의 장점을 인정하면서도 빌드업 과정에서 가벼운 플레이는 줄여야 한다는 취지로 지적했다. 본선에서는 한 번의 패스 미스가 바로 실점 위기로 이어진다. 수비수가 공을 잘 다루는 것만큼이나, 위험 지역에서 언제 단순하게 처리할지 판단하는 능력도 필요하다.

이기혁의 경쟁은 이제 시작이다. 김민재를 중심으로 대표팀 수비 라인의 축은 정해져 있지만, 월드컵은 한 조합만으로 치를 수 없다. 상대 유형에 따라 스리백과 포백, 왼발 수비수 활용 여부가 달라질 수 있다. 이기혁은 이날 자신의 장점을 보여주며 홍명보 감독에게 선택지를 하나 더 건넸다.

대표팀에서 새 얼굴이 살아남으려면 실험만으로는 부족하다. 실험이 결과로 이어져야 한다. 트리니다드토바고전에서 이기혁은 큰 실수 없이 경기를 마쳤고, 빌드업에서도 자신의 색을 보였다. 강한 상대를 만나 같은 장면을 반복할 수 있느냐가 다음 시험이다.

홍명보호는 월드컵을 앞두고 공격진의 득점 감각을 확인했다. 동시에 수비에서는 이기혁이라는 카드를 점검했다. 5-0 대승 속에서 조용히 남은 수확이었다.

월드컵 본선에서는 왼쪽 스토퍼의 역할이 더 커질 수 있다. 멕시코처럼 측면 전환이 빠른 팀을 만나면 왼쪽 수비수가 공을 끊은 뒤 첫 패스를 어디로 보내느냐가 역습의 출발점이 된다. 체코처럼 높이와 힘을 앞세우는 팀을 상대로는 제공권과 위치 선정도 필요하다. 이기혁은 패스 장점만으로는 부족하고, 수비 본연의 안정감까지 보여줘야 한다.

그래서 이번 경기는 합격 통보가 아니라 1차 통과에 가깝다. 홍명보 감독은 장점을 확인했고, 동시에 보완할 부분도 분명히 봤다. 새 얼굴이 월드컵에서 살아남으려면 두 번째 평가전과 훈련에서 같은 신뢰를 이어가야 한다. 이기혁에게 트리니다드토바고전은 출발점이었다.

/mcadoo@osen.co.kr

추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