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린 씨앗이 없으면 결실을 기대할 수 없다. 쇠퇴를 거듭하는 한국 마라톤에게도 같은 질문이 던져진다.
케냐, 에티오피아 등이 세계적인 마라톤 강국이 된 건 단순히 선수들의 타고난 '피지컬' 때문은 아니다. 체계적인 훈련 시스템, 기록과 성적에 대한 포상 등 지속적인 투자가 수반됐기 때문이다.
김재룡 한국전력 감독은 현시점에서 단기간에 성적을 끌어올리려면 훈련 방식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김 감독은 "한국 마라톤이 선수 풀이 바닥났다고 하지만, 그 안에서도 재능과 의지를 가진 선수들이 꽤 있다"면서 "세계 마라톤 수준에 근접하기 위해선 고지대 훈련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본다"고 했다.
그는 "예전에도 고지대 훈련을 많이 했지만, 지금은 환경이 더욱 좋아졌다"면서 "케냐에서 좋은 선수들이 계속 나오는 것 또한 이런 좋은 훈련 환경의 영향이 매우 크다고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지대 훈련의 효과는 실제 사례로도 나타나고 있다. '마라톤 변방'에 가까운 우즈베키스탄의 쇼크루흐 다블라토프는 수년 전만 해도 개인 최고 기록이 2시간24분대였다.
그러나 1년에 수차례씩 케냐를 방문해 고지대 훈련을 진행하며 기록을 빠르게 단축했고, 지난 2023년 12월 2시간7분02초의 자국 신기록을 세웠다.
우즈베키스탄의 쇼크루흐 다블라토프(왼쪽)와 김재룡 한국전력 감독. (김재룡 감독 제공)
김 감독은 "쇼크루흐는 한전 선수들과 함께 훈련할 때 우리보다 페이스가 느렸던 선수"라면서 "케냐에 한 번 올 때마다 2~3개월 이상 체류하면서 꾸준하게 고지대 훈련을 반복하면서 확실한 효과를 냈다"고 했다.
다만 현시점에서 '해외 전지훈련'을 위해 지갑을 열 수 있는 실업팀은 많지 않다. 현재 국내 실업팀은 15개 남짓이지만, 지자체와 공기업을 제외하고 사기업이 운영하는 팀은 코오롱과 삼성전자뿐이다. 이 두 팀도 예전만큼 많은 투자를 하기엔 버거운 상황이다.
김 감독은 "항공 비용을 제외하면 오히려 체류 비용은 중국, 일본의 고지대 훈련보다 나을 수도 있다"면서 "우리 팀(한전)도 올 초 60일간 훈련을 진행했다. 효과를 보려면 꾸준하게 해줘야 하는데 여건이 쉽지 않다"며 아쉬워했다.
그는 "선수들에게 당장 '열심히 하지 않는다'고 다그칠 게 아니라, 열심히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줄 필요도 있다"면서 "각 팀의 대표 선수들을 모아 합동훈련을 하는 등 내부적으로 머리를 맞대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고 했다.
그러면서 "마라톤은 타고난 신체 조건도 매우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중국, 일본, 우즈베키스탄 선수들보다 피지컬이 부족한 건 아니다. 해보려는 의지가 있어야 변화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마라톤 국가대표 박민호. © 뉴스1 민경석 기자
올 9월 아시안게임에 출전할 예정인 김홍록(한국전력)도 "케냐 고지대 훈련을 하면서 세계적인 선수들도 많이 봤다"면서 "그 선수들과 함께 발을 맞춰보는 것만으로도 큰 경험이었고, 훈련 코스 역시 완벽했다"고 했다.
당장 급격한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선수들은 주어진 여건에서 묵묵히 최선을 다하고 있다.
박민호는 "한국 마라톤이 어려운 시간이 길어지고 있지만, 하나둘 좋은 선수들이 나오고 있다"면서 "내 기록이 곧 한국 마라톤의 기록이라는 사명감을 가지고 임하겠다. 누군가 한 명이 '알'을 깨고 앞서 나가면 다 같이 성장하고, 인프라도 발전할 수 있는 여건이 될 것이라 믿는다"고 했다.
김홍록도 "한국 마라톤이 많이 처져 있어서 많은 질타도 받지만, 선수들이 노력하지 않거나 간절함이 없는 게 아니다"라면서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고 나 역시 더 높은 목표를 가지고 꿈을 키워가겠다"고 강조했다.
선수들은 여전히 뛰고 있다. 한국 마라톤이 다시 세계 무대에서 경쟁력을 되찾을 수 있을지는 결국 그들의 노력에 걸맞은 시스템과 투자, 그리고 변화의 의지가 뒷받침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starburyny@news1.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