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지냐는 16일(한국시각)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 H조 1차전 스페인전에서 무려 7개 선방을 기록하며 카보베르데의 0-0 무승부를 이끌었다.
월드컵 본선에 처음 출전한 인구 53만의 작은 나라 카보베르데는 2010년 월 우승국이자 이번 대회 우승 후보로 꼽히는 스페인을 상대로 역사적인 첫 승점을 따냈다.
스페인과 경기에서 눈부신 선방으로 0-0 무승부를 이끌어낸 카보베르데 골키퍼 보지냐가 자국 국기를 든 채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AP PHOTO
보지냐는 스페인의 결정적인 슈팅을 잇달아 막아냈다. 페널티 지역 안팎에서 날아오는 슈팅에 몸을 던졌다. 수비진을 계속 독려하며 마지막까지 집중력을 유지했다. 경기가 끝나자 그는 골문 근처에서 몸을 숙인 채 눈물을 흘렸다. 동료들이 달려와 그를 끌어안았다.
보지냐는 경기 후 가족을 떠올렸다고 했다. 자신을 키워준 조부모와 어머니가 생각났다는 것이다. 그의 조부모는 몇 년 전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는 미국 입국 비자 준비 비용을 제때 마련하지 못해 아들의 월드컵 데뷔전을 현장에서 보지 못했다.
카보베르데 국민들은 미국 비자를 받기 위해 최대 1만5000달러(약 2272만 원)의 보증금을 요구받는 대상 국가에 포함돼 있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비자 초과 체류율이 높은 국가를 대상으로 시행한 입국 규제 조치의 일환이었다. 이후 카보베르데를 포함한 일부 월드컵 참가국의 티켓 소지자에게는 해당 요건이 일시 중단됐지만, 많은 팬에게는 이미 늦었다는 비판이 나왔다.
보지냐의 축구 인생도 순탄하지 않았다. 그는 25세가 돼서야 앙골라 클럽 프로그레수에서 프로 선수로 데뷔했다. 이후 몰도바, 키프로스, 슬로바키아, 포르투갈 등을 거쳤다. 현재는 포르투갈 2부 리그 샤베스에서 뛰고 있다. 카보베르데 대표팀에는 2012년 합류했다.
대표팀 은퇴를 고민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월드컵이라는 꿈 때문에 계속 버텼다. 보지냐는 “나는 이 순간, 이 꿈을 위해 평생을 일했다”며 “과거의 많은 세대가 이 날을 꿈꿨지만 이루지 못했다. 이제 그 꿈이 현실이 됐다”고 말했다.
그의 본명은 조시마르 조제 에보라 디아스다. 그런데 ‘보지냐’라는 이름을 쓰는데는 사연이 있다. 이는 포르투갈어로 ‘작은 할머니’를 뜻하는 별명이다. 어린 시절 함께 축구하던 형들이 붙여준 것이다. 보지냐가 경기장에서 밀리면 ‘할머니에게 이를거야’라고 말한데서 시작됐다. 이후 같은 팀에 본명 조시마르를 가진 선수가 또 생기자, 그는 이 별명을 아예 선수명으로 사용하게 됐다.
동료들도 보지냐를 향한 존경을 숨기지 않았다. 수비수 스티븐 모레이라는 “우리는 평소 그의 나이를 두고 장난을 치곤 한다”면서도 “그는 큰 전설이다. 오늘 미친 경기를 했다.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또 다른 수비수 피코 로페스는 “그는 카보베르데를 위해 산다. 훈련 때는 엄격하지만, 우리를 더 나아지게 만든다”며 “오늘 그는 행동으로 보여줬다”고 했다.
경기 뒤 보지냐는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그의 인스타그램 팔로어는 경기 전 약 5만명 수준에서 몇 시간 만에 240만명 이상으로 급증했다. 월드컵 데뷔전까지 40년을 기다린 골키퍼는 단 한 경기로 카보베르데 축구를 대표하는 상징이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