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분… 허무하게 끝난 손흥민 라스트댄스

스포츠

이데일리,

2026년 6월 29일, 오전 12:02

[이데일리 스타in 이석무 기자] ‘171분’

손흥민이 2026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 3경기에서 출전한 시간이다. 추가시간을 제외하고 전·후반 90분으로 감안해 총 270분 가운데 절반 조금 더 뛴 셈이다.

손흥민은 한국 축구의 얼굴이자 대표팀의 에이스였다. 2010년 12월 30일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에서 열린 시리아와 친선경기에서 만 18세 나이로 A매치에 데뷔했다. 이번 대회 전까지 A매치 147경기에 출전해 56골을 넣었다. 한국 축구 최다골 2위 기록이다. 그의 존재는 한국 축구의 행운이자 자부심이었다.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 손흥민이 25일(한국시간) 멕시코 몬테레이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A조 3차전 남아프리카공화국과의 경기에서 패배가 확정되자 아쉬워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하지만 이번 대회에서 손흥민은 끝내 중심에 서지 못했다. 홍명보호의 조별리그 탈락과 함께 그의 네 번째 월드컵도 막을 내렸다. 어쩌면 이번 대회는 씁쓸한 ‘라스트댄스’가 될 지 모른다.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은 북중미 월드컵 32강 진출에 실패했다. 한국 축구가 월드컵 조별리그를 통과하지 못한 건 2018년 러시아 대회 이후 8년 만이다. 그 과정에서 가장 뼈아픈 건 손흥민의 활용법이었다. 손흥민은 이번 대회에서 3경기 모두 출전했지만, 공격 포인트를 올리지 못했다.

손흥민은 3경기 모두 풀타임을 뛰지 못했다. 체코와 1차전은 69분 후 오현규와 교체됐고, 멕시코와 2차전은 겨우 57분만 뛰고 오현규와 바뀌었다. 남아공과 3차전에선 아예 선발 명단에서 빠졌다. 후반 시작과 함께 황희찬을 대신해 교체 투입됐다.

3경기 모두 손흥민은 상대 수비를 흔들 공간을 충분히 얻지 못했다. 후방에서 공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대표팀은 가장 확실한 무기를 갖고도 그 무기를 언제, 어떻게 써야 하는지 끝내 답을 내놓지 못했다.

특히 비기기만 해도 조 2위가 가능했던 남아공전에서의 벤치 출발은 상징적인 장면이다. 후반전에 가서야 투입했지만, 이미 남아공 쪽으로 흐름이 기운 뒤였다. 손흥민은 분주히 움직였지만, 대표팀 공격은 조급했고 패턴은 단조로웠다. 라인을 깨는 침투도, 상대 수비를 무너뜨리는 연계도 없었다.

손흥민은 2014년 브라질 대회에서 막내급 선수로 월드컵을 경험했다. 2018년 러시아 대회에선 ‘카잔의 기적’으로 불리는 독일전 승리의 핵심이었다. 2022년 카타르 대회에서는 안와골절 부상에도 마스크를 쓴 채 주장 완장을 차고 16강 진출을 이끌었다.

한국 축구의 지난 10여 년은 손흥민이라는 이름과 떼어놓기 어렵다. 그래서 북중미 월드컵의 171분은 더 허전하다. 한 시대의 간판이 마지막 무대에서 충분히 불타오르지 못한 채 내려왔기 때문이다.

물론 손흥민도 결과에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모든 책임을 손흥민 개인에게 돌릴 수는 없다. 오히려 문제는 대표팀 전체의 설계에 있었다. 대표팀은 3경기 내내 플랜A가 막혔을 때의 대안이 뚜렷하지 않았다. 선제골을 내주면 조급했고, 상대가 내려앉으면 어찌할 바를 몰랐다.

손흥민은 여러 이유로 이번 대회에서 말을 아꼈다. 하지만 남아공전을 마치고선 팬들과 동료에게 미안함을 전했다. 그는 “경기를 뛰는 것도 힘들지만, 밖에서 보는 것도 참 힘들다. 그래서 많은 걸 얘기하기보단, 심플하게 할 수 있는 조언을 해주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손흥민을 향한 팬들의 감정은 분노보다 허탈함에 가깝다. 한국 축구가 가진 최고의 카드가 마지막 월드컵일지 모를 무대에서 171분으로 끝났기 때문이다. 라스트댄스라면 적어도 끝까지 춤을 추는 장면은 있어야 했다. 이번 월드컵에서 손흥민은 춤출 준비가 됐지만, 대표팀은 그 무대를 제대로 만들어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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