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해란(25)의 얼굴엔 믿기지 않는다는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마지막 18번홀에서 우승을 확정한 뒤에도 믿기지 않는 듯 연신 웃음을 터뜨렸다. 기다리고 있던 동료들의 샴페인 세례와 어머니의 눈물을 보면서도 “울지 마세요. 제 인생에 좋은 일이잖아요”라고 말할 만큼 이날은 행복으로 가득한 하루였다.
유해란이 29일(한국시간) 미국 미네소타주 채스카의 헤이즐틴 내셔널 골프클럽에서 열린 LPGA 투어 메이저 대회 KPMG 위민스 PGA 챔피언십에서 생애 첫 메이저 우승을 차지한 뒤 트로피를 들어 올리고 있다. (사진=PGA of America)
유해란이 우승을 확정하자 동료들이 샴페인을 뿌리며 축하하고 있다. (사진=AFPBBNews)
유해란은 일찍 골프와 인연을 맺었다. 유치원 시절 친구를 따라 골프연습장을 찾은 것이 세계 정상으로 향하는 출발점이었다. 전남 영암이 고향인 유해란은 공부에도 재능이 있었지만, 아버지 유재권 씨는 체격이 좋은 딸에게 책상 앞보다 운동장이 더 어울린다고 판단해 골프선수의 길을 택했다.
유해란은 빠르게 두각을 나타냈다. 더 좋은 환경에서 배우기 위해 가족과 함께 전국을 돌며 훈련했고, 그 노력은 빠르게 결실을 맺었다.
그 덕에 중학교 3학년 때 국가대표에 발탁됐다. 고교 3학년 때는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국가대표로 출전했다. 개인전과 단체전 금메달을 노렸지만 단체전 은메달에 만족해야 했다.
아시안게임 직후 프로로 전향한 그는 2019년 KLPGA 투어에 데뷔해 2022년까지 5승을 거두며 국내 정상급 선수로 성장했다. 더 큰 무대를 꿈꾸던 유해란은 2022년 LPGA 퀄리파잉 시리즈를 수석으로 통과했고, 2023년 루키 시즌 월마트 NW 아칸소 챔피언십에서 첫 승을 신고했다. 이어 2024년 FM 챔피언십, 2025년 블랙 데저트 챔피언십에서 정상에 오른 데 이어 네 번째 우승을 생애 첫 메이저 타이틀로 장식했다.
유해란이 메이저 우승트로피를 번쩍 들어 올리고 있다. (사진=AFPBBNews)
이번 우승은 더욱 특별했다. 유해란은 지난 5월에 복부 통증 치료를 위해 한 달 넘게 투어를 떠나 있었다. 자세한 병명을 밝히지는 않았으나 오랫동안 괴롭힌 질환을 치료받았다.
치료 시기가 메이저 대회인 US여자오픈과 겹쳐 수술을 미룰 수도 있었지만, 장기적인 선수 생활을 위해 치료를 먼저 선택했다. 지난 5월 19일에 귀국해 시술받고 회복한 유해란은 6월 20일 미국으로 출발해 이번 대회에서 복귀전을 치렀다.
한 달 동안 골프채를 내려놓은 시간은 몸뿐 아니라 마음도 회복하는 계기가 됐다. 유해란은 “골프에 대한 스트레스를 내려놓고 어머니가 해주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푹 쉬었다”며 “그 시간이 정말 좋은 휴식이 됐고 이번 주 좋은 경기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US여자오픈을 포기한 것에 대해서도 “힘든 결정이었지만 다시 열심히 준비하고 가족, 친구들과 좋은 시간을 보냈다. 조금 아쉬웠지만 괜찮았다”고 돌아봤다.
첫날 공동 70위. 선두와는 무려 10타 차였다. 우승 가능성은 희박해 보였다. 오히려 컷 통과를 걱정할 상황이었다. 그러나 둘째 날 보기 없이 버디만 8개를 쓸어 담아 단숨에 우승 경쟁에 뛰어들었고, 셋째 날 4언더파로 데일리 베스트를 작성하며 단독 선두로 올라섰다. 마지막 날에도 2언더파를 적어내며 흔들리지 않았다.
유해란은 “1라운드를 마쳤을 때는 복귀 대회인 만큼 주말까지 경기하는 것이 목표였다”며 “둘째 날 보기 없이 버디 8개를 잡으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 지금도 꿈을 꾸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유해란이 우승 직후 열린 공식 기자회견에서 환하게 웃으며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PGA of America)
이번 우승은 기록으로도 의미가 크다. KPMG 위민스 PGA 챔피언십에서 1라운드 선두에 10타 이상 뒤진 선수가 우승한 것은 1964년 캐럴 만(미국) 이후 62년 만이다. 또 둘째 날과 셋째 날 연속 데일리 베스트 스코어를 작성한 선수도 1966년 미키 라이트(미국) 이후 처음이다.
이번 대회에서 유해란은 그린 적중률 81.94%로 전체 1위에 올랐고, 스트로크 게인드 티투그린과 스트로크 게인드 종합 기록에서도 모두 1위를 기록하며 압도적인 샷 감각을 과시했다. LPGA 투어 최고의 ‘볼 스트라이커’라는 평가를 다시 한번 증명한 셈이다.
유해란은 “한국 선수들이 골프를 잘 하는 이유는 정말 많은 연습을 하기 때문”이라며 “어릴 때는 거의 매일 연습장에서 오전부터 오후까지 스윙 연습을 했다. 코스 연습보다 연습장에서 보낸 시간이 훨씬 많았다”고 자신의 성장 비결을 소개했다.
첫 메이저 우승으로 유해란은 한국 선수로는 21번째 메이저 챔피언이 됐다. 2024년 양희영 이후 처음으로 메이저 정상에 오른 한국 선수이자, KPMG 위민스 PGA 챔피언십에서 생애 첫 메이저 우승을 차지한 31번째 선수로 이름을 남겼다. 또한 LPGA 데뷔 이후 4시즌 연속 우승을 이어가며 2017년부터 2020년까지 4년 연속 우승했던 고진영 이후 처음으로 이 기록을 작성한 선수로도 기록됐다.
친구를 따라 시작한 골프는 결국 세계 정상으로 이어졌다. 유해란은 이제 한국 여자골프를 대표하는 새로운 ‘메이저 퀸’으로 자신의 이름을 새겼다.
첫 메이저 우승에 도전하는 유해란이 16번홀에서 공을 친 뒤 방향을 확인하고 있다. (사진=AFPBBNew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