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LPGA 투어 어스 몬다민컵 우승한 박현경.(사진=윤현준 프리랜서 작가 제공)
박현경은 29일 일본 지바현의 카멜리아 힐스 컨트리클럽(파72)에서 열린 대회 최종 4라운드에서 4언더파 68타를 쳐, 최종 합계 12언더파 276타로 1타 차 우승을 차지했다.
오랜 시간 이어진 시상식과 현지 공식 기자회견 등을 마치고 숨을 돌린 박현경은 이데일리와 인터뷰에서 “지난해 우승 이후 1년 넘게 우승이 없어 마음고생이 심했다. 올해도 준우승만 두 번 하면서 번번이 우승 문턱에서 무너졌다”며 “이렇게 큰 대회에 초청받은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그래서 이번 대회는 오히려 기대를 내려놓고 경기했다”고 말했다.
◇“9일 전 돌아가신 할머니가 보내주신 선물”
이번 우승은 박현경에게 단순한 우승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지난 20일 친할머니 조칠손 씨가 별세했으나, 박현경은 어스 몬다민컵 출전 일정 때문에 발인을 끝까지 함께하지 못한 채 일본행 비행기에 올라야 했다.
박현경은 “아빠가 5남 1녀 중 막내아들이라 제가 막내 손녀였다”며 “할머니는 요양원에 계실 때도 침대 옆에 제 우승 사진과 스윙 사진을 붙여놓고 늘 기도해 주셨다. 제가 찾아갈 때마다 아빠 흉을 보면 항상 제 편을 들어주셨다”고 떠올렸다.
막판 승부처였던 17번홀(파4)에서도 박현경은 할머니를 생각했다. 티샷을 한 뒤 페어웨이를 걸어가면서 박현경은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할머니, 어떤 결과를 주시더라도 잘 받아들이겠다.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되뇌었다. 1타 차 선두에서 2.5m 거리의 까다로운 파 퍼트를 남겼을 때도 할머니를 생각하니 거짓말처럼 긴장이 풀렸다.
특히 이번 대회 내내 궂은 비가 내렸지만 매 라운드 그의 주변을 맴돌던 ‘흰 나비’는 큰 위안이었다. 박현경은 “매일 한두 번씩 흰 나비가 제 주변을 날아다녔다. 아빠(캐디)와 ‘할머니가 오셨나 보다’라고 이야기하곤 했다”며 “마지막 우승 퍼트를 넣은 뒤 아빠도 ‘어머니 감사합니다’라고 말씀하셨다. 가족 모두 할머니가 하늘에서 보내주신 선물이라고 생각한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박현경.(사진=윤현준 프리랜서 작가 제공)
이번 대회 전까지 박현경의 마지막 우승은 지난해 5월 E1 채리티 오픈이었다. 올해는 시즌 중반까지 우승 없이 준우승만 두 차례 기록하며 조급함도 커졌다. 하지만 이번 대회에서는 오직 자신의 스윙에만 집중했다.
그가 신경 쓴 것은 단 두 가지였다. 긴장하면 그립이 슬라이스성으로 돌아가는 습관을 바로잡는 것과 백스윙을 시작하는 테이크백이었다. 박현경은 “지난주 인카금융 더헤븐 마스터즈부터 두 가지만 믿고 자신 있게 스윙하기 시작했는데 좋은 샷이 계속 나오면서 자신감을 얻었다”고 설명했다.
치열했던 선두 경쟁 속에서도 평정심은 유지했다. 다만 18번홀에서는 작은 해프닝도 있었다. 투 퍼트만 하면 우승이 확정되는 상황에서 긴장한 탓에 첫 번째 버디 퍼트가 50cm 정도 짧았다. 민망한 마음에 자신도 모르게 머쓱한 웃음이 터졌고, 이 모습이 생중계 화면에 그대로 잡혔다. 이를 본 일본 기자들은 일제히 “카와이(귀엽다)”를 외쳤다.
박현경은 “너무 창피해서 순간 웃음이 나왔다”며 “일본 기자들이 그 모습을 좋게 봐준 것 같다”고 웃었다.
이후 침착하게 우승 퍼트를 성공시킨 박현경은 두 팔을 번쩍 들어 올리며 생애 첫 JLPGA 투어 우승을 확정했다. 일몰 순연으로 이날만 30홀을 플레이한 끝에 탄생한 JLPGA 투어 역사상 5번째 ‘월요일 챔피언’이었다.
자원 봉사자들과 기념 사진 찍는 박현경.(사진=윤현준 프리랜서 작가 제공)
이날 박현경은 오전 6시 30분, 3라운드 7번홀부터 경기를 재개했다. 공동 선두로 최종 라운드에 돌입한 가운데 승부처는 전반 9번홀(파3)이었다. 그린 오른쪽 앞에 연못이 자리한 까다로운 홀에서 티샷이 그린 왼쪽 뒤로 벗어나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거리측정기로 신중하게 거리를 확인한 뒤 그린 가장자리 18m 거리에서 퍼트를 그대로 홀에 집어넣으며 극적으로 버디를 잡았다. 박현경의 캐디를 맡은 아버지 박세수 씨도 “그 버디 덕분에 우승을 할 수 있었다”고 말할 정도로 중요한 버디였다.
공동 선두를 유지한 채 후반으로 향한 박현경은 14번홀(파5)에서는 약 5m 버디 퍼트를 성공시켜 단독 선두였던 이나가키 나나코(일본)를 따라잡았다. 이나가키가 보기로 흔들리는 사이 박현경은 17번홀에서 2.5m 파 퍼트를 침착하게 성공시키는 등 끝까지 집중력을 유지하며 우승을 완성했다.
이번 우승으로 박현경은 오는 11월 30일까지 JLPGA 회원으로 등록하면 2027년까지 시드를 받을 수 있는 자격도 얻었다. 다만 일본 투어 본격 진출 여부에 대해서는 아직 신중한 입장이다.
박현경은 “아직 실감이 나지 않는다”며 “올해는 KLPGA 투어에서 통산 10승을 채우는 것이 가장 큰 목표다. 시즌을 마친 뒤 차근차근 진로를 고민하겠다”고 말했다.
대회 직전 우승 가뭄과 한국여자오픈 실격 등이 겹쳐 마음고생을 했다는 그는 한강에서 혼자 라면을 먹으며 ‘얼마나 좋은 일이 오려고 이렇게 힘들까’라며 버텼던 일화도 소개했다.
박현경은 “안 좋은 일이 계속된다고 끝은 아니라는 걸 이번 우승으로 다시 배웠다”며 “앞으로도 좌절하는 순간은 또 오겠지만, 이제는 조금 더 성숙하게 이겨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우승 상금 7200만 엔(약 6억 8000만 원)을 품에 안은 박현경은 30일 귀국해 다음달 2일 개막하는 KLPGA 투어 롯데 오픈에 출전한다. 그는 “이번 우승으로 자신감을 얻었다”며 “응원해주신 한국 팬들 앞에서 하루빨리 통산 10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고 싶다”고 미소 지었다.
박현경.(사진=윤현준 프리랜서 작가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