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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정승우 기자] 이집트는 역사적인 승리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남은 시간은 정규시간 12분. 상대는 디펜딩 챔피언 아르헨티나였고, 점수는 2-0이었다. 이집트 축구 역사상 첫 월드컵 8강 진출이 보이는 듯했다.
결과는 처참한 '대역전패'였다.
영국 'BBC'는 8일(이하 한국시간) "이집트는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월드컵 역사상 가장 놀라운 결과를 눈앞에 뒀지만, 분노와 상처만 남긴 채 무너졌다"라고 전했다.
이집트는 미국 애틀랜타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 16강전에서 아르헨티나에 2-3으로 역전패했다.
경기 흐름은 이집트 쪽이었다. 전반 15분 야세르 이브라힘이 헤더로 선제골을 넣었다. 여기에 골키퍼 모스타파 쇼베이르가 리오넬 메시의 페널티킥까지 막아내며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후반 22분에는 모스타파 지코가 추가골을 넣으며 이집트가 2-0으로 달아났다.
이집트의 첫 월드컵 8강 진출이 가까워지는 듯했다. 뉴질랜드전 승리로 월드컵 사상 첫 승을 거뒀던 이집트는 디펜딩 챔피언까지 무너뜨릴 기회를 잡았다.
무너지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후반 34분 크리스티안 로메로가 추격골을 넣었다. 4분 뒤에는 메시가 동점골을 터뜨렸다. 이집트는 급격히 흔들렸다. 후반 추가시간 2분 엔소 페르난데스가 헤더로 역전골을 넣으며 경기는 아르헨티나의 3-2 승리로 끝났다.
이집트는 분노했다. 논란의 중심에는 VAR이 있었다.
이집트는 1-0으로 앞서던 상황에서 지코가 다시 골망을 흔들었다. 득점이 인정됐다면 2-0으로 달아날 수 있는 장면이었다. VAR은 득점 장면 이전 마르완 아티아가 리산드로 마르티네스의 발을 살짝 밟았다는 이유로 파울을 선언했고, 지코의 골은 취소됐다.
BBC 라디오 5 라이브에 출연한 이집트 축구 전문가 아흐마드 유세프는 "현재 VAR과 판정에는 일관성이 너무 부족하다. 어디까지 거슬러 올라가 판정을 번복할 것인지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상당히 긴 거리가 지나간 뒤였고, 파울도 아주 미세했다. 이집트 코칭스태프와 선수단이 왜 실망했는지 충분히 이해된다"라고 말했다.
이집트는 아르헨티나의 결승골 직전 장면에도 강하게 항의했다. 모하메드 살라가 아르헨티나 페널티 박스 안에서 넘어졌지만, 페널티킥은 선언되지 않았다. 몇 초 뒤 아르헨티나는 역습을 전개했고, 페르난데스가 결승골을 넣었다.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자 이집트 선수들은 믿을 수 없다는 듯 그라운드에 주저앉았다. 살라는 리버풀 시절 동료 알렉시스 맥 알리스터와 유니폼을 교환한 뒤 고개를 숙인 채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다른 선수들은 고개를 저으며 판정에 대한 불만을 감추지 못했다.
현장에서 BBC 라디오 5 라이브 해설을 맡은 전 잉글랜드 골키퍼 폴 로빈슨은 "이 경기에는 너무 많은 이야기와 장면이 담겨 있었다"라고 했다.
실제로 이 경기는 페널티킥 선방, 취소된 득점, 퇴장, 극적인 역전극까지 모두 담겼다. 월드컵 역사에서도 보기 드문 경기였다. BBC는 "월드컵에서 이렇게 늦은 시간까지 두 골 차로 뒤지던 팀이 연장전 없이 승리한 경기는 역사에 남을 것"이라고 전했다.
호삼 하산 이집트 감독은 경기 뒤 분노를 숨기지 않았다. 그는 "오늘 우리는 불공정한 대우를 받았다. 우리는 부당함을 겪었다"라고 말했다.
이어 "이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 이 경기에서 일이 흘러간 방식도 받아들일 수 없다. 페널티킥이 주어지지 않았다. 두 번째 골은 믿기 어려운 방식으로 취소됐다. 모두가 유니폼이 잡아당겨지는 장면을 봤는데 VAR 확인조차 없었다"라고 주장했다.
하산 감독은 "나는 이 월드컵 경기를 더 이상 보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나만의 항의 방식"이라고 덧붙였다.
이집트 공격수 지코도 판정에 불만을 드러냈다. 그는 "주심은 정말 불공정했다. 부당함은 명백했다. 경기 시작부터 불공정함이 있었다"라고 말했다.
BBC 축구 이슈 담당 데일 존슨 기자는 판정 논란을 따로 분석했다. 그는 최근 FIFA 심판위원장 피에를루이지 콜리나가 심판들에게 '정상적인 축구 접촉은 허용해 경기 템포를 높이라'는 기준을 제시했다고 짚었다.
실제로 이번 월드컵은 경기당 파울 수가 22.6개로 줄었다. 2022 카타르 월드컵의 25개, 2018 러시아 월드컵의 27개보다 낮다.
존슨은 이집트의 취소된 골 장면에 대해 "아티아는 마르티네스의 유니폼을 아주 가볍게 잡았고, 발끝을 살짝 밟았다. 파울이라고 볼 여지는 있다. 다만 이번 대회가 운영돼 온 방식과 비교하면 일관성이 떨어진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그라운드에서 이런 접촉을 그냥 두고 있다면 VAR에서도 같은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라고 했다.
VAR이 너무 앞선 장면까지 거슬러 올라간 것인지에 대해서는 "VAR은 공격 과정이 어떻게 시작됐는지, 특히 소유권이 어떻게 넘어왔는지를 본다. 해당 장면이 득점으로 직접 이어졌기 때문에 17초 전 상황이라도 검토 대상이 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살라의 페널티킥 의심 장면에 대해서는 다르게 봤다. 존슨은 "살라는 페널티 박스 안에서 훌리안 알바레스에게 걸렸다고 주장하며 넘어졌다. 이 장면도 VAR 확인이 필요해 보였다"라고 했다.
이어 "아티아의 장면과 비슷했지만 중요한 차이가 있다. 살라는 페널티 박스 안에 있었다. VAR은 페널티킥 가능성을 보는 것이기 때문에 파울 기준이 더 높다. 페널티킥을 줄 만큼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됐고, 아르헨티나의 결승골은 인정됐다"라고 분석했다.
이날 패배는 살라에게도 무거운 의미를 남겼다. 이번 대회에서 메시, 엘링 홀란, 킬리안 음바페가 꾸준히 득점을 쌓는 동안 살라는 1골에 그쳤다. 그 한 골은 지난 6월 22일 뉴질랜드전에서 나왔다.
아르헨티나전에서 살라는 슈팅도, 키패스도 기록하지 못했다. 2030 월드컵이 열릴 때 살라는 만 38세가 된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41), 루카 모드리치(40)가 이번 대회를 끝으로 월드컵 무대를 떠난 가운데, 살라가 4년 뒤 이집트 대표팀과 다시 월드컵에 나설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이집트의 탈락으로 이번 대회 아프리카 10개국 중 생존 팀은 모로코만 남았다. 모로코는 4년 전 아프리카 국가 최초로 월드컵 4강에 올랐고, 이번 대회 8강에서 프랑스와 맞붙는다.
BBC 북미 특파원 샤이마 칼릴은 이집트 팬들의 감정을 "자부심과 상처가 함께 남은 밤"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이집트 팬들은 희망, 믿음, 환희를 지나 분노와 고통까지 경험했다. 그들은 약자처럼 경기하지 않았다. 동등한 팀처럼 싸웠다"라고 전했다.
이집트의 이번 월드컵 슬로건은 '메카멜린(Mekameleen)'이었다. 뜻은 '우리는 계속 나아간다'다. 이집트의 월드컵은 애틀랜타에서 끝났다. 첫 8강 진출은 무산됐다. 그래도 이 팀은 이집트 축구가 세계 최고 무대에서 경쟁할 수 있다는 믿음을 남겼다. /reccos23@ose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