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첫 디오픈 출전을 앞둔 양지호(37)는 자신에게 수없이 되뇌었다. 세계 최고 선수들이 모인 메이저 무대에서도 이름값에 눌리지 않고 자신의 골프를 하겠다는 다짐이었다. 그러나 잉글랜드 로열 버크데일 골프클럽에 도착한 순간 그 다짐은 허무하게 무너졌다. 디오픈 표지판 앞에서는 어린아이처럼 기념사진을 찍었고, 연습장에서는 스코티 셰플러(미국)와 호아킨 니만(칠레)을 마주한 순간 “마음을 먹는다고 다 되는 게 아니더라”는 사실을 절감했다.
투어 데뷔 18년 차에 처음 메이저 대회 디오픈에 출전한 양지호가 1번홀 표지판 앞에서 기념촬영하고 있따. (사진=양지호 본인 제공)
하지만 준비 과정부터 연습 라운드, 그리고 본 경기까지 닷새 동안 경험한 디오픈은 성적 이상의 가치를 남겼다.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대회를 준비하는 과정과 메이저 특유의 분위기를 몸소 체험했고, 자신에게 부족한 점과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도 확인했다. 비록 이틀 만에 대회를 마쳤지만, 양지호에게 이번 디오픈은 평생 잊지 못할 소중한 경험이 됐다.
18일 디오픈 개막 사흘째 이른 아침에 이데일리와 전화 인터뷰를 한 양지호는 “눈이 저절로 떠졌다”며 “오늘도 경기해야 하는데”라고 아쉬움으로 먼저 말문을 열었다. 그러면서 “디오픈에 가기 전 가장 크게 다짐한 게 ‘절대 주눅들지 말자. 유명한 선수라고 흔들리지 말고 경기에만 집중하자’는 것이었다”면서 “그런데 디오픈 간판을 보는 순간, 골프장에 도착하는 순간 그 다짐이 다 녹아내렸다”고 웃으며 말했다.
양지호가 디오픈 출전의 순간을 함께 한 가족, 지인과 함께 추억을 남기고 있다. (사진=양지호 본인 제공)
그는 “그렇게 굳게 다짐하고 왔지만, 현장에 도착하니 마치 어린아이가 된 것처럼 어리둥절하면서 사진부터 찍기 바빴다”면서 “연습장에 갔더니 몸은 푸는 니만과 셰플러를 보는 순간 ‘주눅들지 말자’고 했던 다짐이 다 사라졌다. 결국 ‘에라 모르겠다. 그냥 즐기자’는 마음으로 바뀌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연습 라운드에서도 디오픈만의 분위기는 압도적이었다.
양지호는 “공식 경기도 아닌 연습 라운드인데도 거의 2만명 이상의 갤러리가 몰려온 걸 보고 깜짝 놀랐다”며 “‘이게 디오픈이구나’라는 걸 그때 처음 실감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세계 정상급 선수들의 준비 과정은 큰 자극이 됐다.
그는 “월요일 오전 7시 골프장에 도착했을 때 내가 가장 먼저 온 줄 알았다. 그런데 이미 로리 매킬로이가 와 있었다”며 “전날 제네시스 스코티시 오픈을 치르고도 새벽부터 골프장에 나와서 웨이트를 끝내고 드라이빙 레인지에 나와 연습하는 모습을 보면서 ‘세계 최고 선수는 다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나도 새벽 6시쯤 연습장에 나갔는데 매킬로이와 같은 레인지에서 연습했다”며 “저렇게 꾸준히 준비하는 모습을 직접 본 것만으로도 정말 큰 공부가 됐다”고 덧붙였다.
양지호가 디오픈 첫날 1번홀에서 티샷을 하고 있다. (사진=R&A)
“‘프롬 사우스 코리아(From South Korea), 양지호’라는 선수 소개가 나오는데 정말 전율이 느껴졌다.”
1라운드 1번홀에서의 감동은 곧 극도의 긴장으로 이어졌다.
그는 “고등학생 때 처음 한국오픈에 출전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보다 훨씬 더 긴장됐다”며 “머릿속이 하얀 백지가 되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긴장한 건 처음이었다”고 말했다.
결국 긴장 탓에 첫 티샷에서 실수가 나왔다.
넓은 1번홀 페어웨이를 향해 날린 티샷은 바람을 타고 오른쪽으로 밀리며 OB가 됐고, 첫 홀부터 트리플보기를 적어냈다.
양지호는 “‘큰일 났다’는 생각뿐이었다. 멘탈이 완전히 나갔고 샷 컨트롤도 잘되지 않았다”며 “10번홀까지 계속 헤맸고 12번홀부터 조금씩 침착해졌지만 이미 혼이 빠져나간 뒤였다”고 돌아봤다.
컷 통과는 무산됐지만 둘째 날에는 마음을 다잡았다. 그는 “‘컷 탈락은 받아들이자. 대신 꼴찌는 하지 말고 한 타 한 타 소중하게 치자’고 생각했다”며 “정신을 차리고 마음을 다잡으니 2라운드는 이븐파로 마쳤다. 마지막에는 ‘9홀만 더 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쉬웠다”고 짧았던 이틀간의 여정을 돌아봤다.
양지호는 경기를 마친 뒤에도 곧바로 귀국하지 않았다. 남은 기간에는 갤러리가 돼 마지막까지 디오픈을 즐겼다.
그는 “나의 디오픈은 끝이 났지만 마지막까지 이 대회를 즐기고 가고 싶었다”며 “보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될 거 같다”고 말했다.
꿈에 그리던 디오픈 출전은 아쉬움으로 끝이 났다. 하지만 평생 간직할 소중한 추억 하나를 얻었다.
양지호는 “디오픈이라는 무대에 한 번 섰다는 것 자체가 정말 큰 의미였다”며 “내 자리는 KPGA 투어다. 돌아가서 그 무대에서 더 집중하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 앞으로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디오픈은 정말 꿈을 꾼 것 같은 시간이었다”고 생애 첫 메이저 도전을 돌아봤다.
양지호(오른쪽)가 디오픈 연습라운드에 앞서 캐디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양지호 본인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