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현(22·하림)은 우승컵을 품에 안고도 한동안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큰 기대를 받으며 프로 무대에 뛰어든 지 1년. 수차례 예선 탈락과 8강의 벽을 경험했던 그는 마침내 여자프로당구 LPBA 정상에 섰다.
프로당구 진출 1년여 만에 첫 우승을 이룬 박정현. 사진=PBA
우승 트로피를 들고 기뻐하는 박정현. 사진=PBA
프로 데뷔 13번째 대회에서 거둔 첫 우승이었다. 박정현은 LPBA 역대 17번째 우승자가 됐다. 우승 상금 4000만원과 랭킹 포인트 2만점을 받아 시즌 랭킹도 11위에서 2위로 뛰어올랐다.
우승이 확정된 순간 박정현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다. 뒤에 있던 가족과 동료들의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박정현은 “주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응원해줬는지 느껴졌다”며 “그 응원에 조금이나마 보답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이어 “하림 팀 동료들과 묵묵히 뒷바라지해주신 부모님이 떠올라 눈물이 났다”고 말했다.
박정현의 당구 인생은 ‘여제’ 김가영과 만남에서 시작됐다. 16세 때 김가영에게 포켓볼을 배우며 처음 큐를 잡았다. 1년 6개월 뒤 포켓볼을 내려놓고 3쿠션에 도전했다. 17세의 어린 나이에 내린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박정현은 빠르게 성장했다. 아마추어 국내 랭킹 2위까지 올랐다. 2025~26시즌을 앞두고 우선등록을 통해 LPBA에 입성했다. 김가영에게 당구를 배운 인연 때문에 ‘김가영 키즈’라는 별명도 얻었다.
프로의 벽은 생각보다 높았다. 데뷔 초기에는 예선 탈락이 이어졌다. 첫 시즌 최고 성적은 8강이었다. 박정현은 “8강에서 떨어질 때마다 우승이 정말 쉽지 않다는 걸 느꼈다”며 “LPBA 선수들의 수준이 워낙 높아 내가 우승할 수 있을지 자신할 수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이번 시즌에도 두 차례 16강에서 탈락했다. 박정현은 기술보다 마음을 다스리는 데 집중했다. 그는 “이번 대회를 앞두고 마인드 컨트롤에 신경을 많이 썼다”며 “8강전도 8강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예선 한 경기라고 생각하며 쳤다”고 밝혔다.
마음을 비우자 실력이 살아났다. 박정현은 이번 대회에서 히다 오리에, 임경진, 백민주, 한슬기 등 강호들을 잇달아 제압했다. 16강에서는 퍼펙트큐를 달성했고, 8강에서는 대회 최고 애버리지를 기록했다.
결승에서도 위기는 있었다. 박정현은 2세트에서 뱅크샷 실수를 거듭한 반면 강유진은 뱅크샷을 연이어 성공했다. 점수 차가 벌어지면서 흔들릴 수 있는 상황이었다.
박정현은 상대가 아닌 자신의 공을 바라봤다. 그는 “강유진 선수가 뱅크샷을 계속 성공했지만 상대의 경기보다 내 공에만 집중하자고 생각했다”며 “지고 있다는 생각보다 다시 뒤집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집중했다”고 했다.
뱅크샷은 지난 시즌 박정현의 약점이었다. LPBA가 사용하는 MIK 5.0 테이블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다. 박정현은 이번 시즌을 앞두고 팀 동료 김준태와 연습장을 마련해 같은 테이블을 설치했다. 반복 훈련으로 테이블의 특성을 익혔다. 약점이던 뱅크샷을 우승 무기로 바꿨다.
결승을 앞두고는 두 스승의 전화도 받았다. 김가영은 “첫 결승이지만 방심하지 말고 하던 대로 하라”고 조언했다. 3쿠션 스승 김병호는 “너 자신을 믿고 공을 치라”고 했다. 두 사람의 조언대로 박정현은 자신을 믿었다. 그리고 생애 첫 결승에서 생애 첫 우승을 완성했다.
박정현의 목표는 이제 더 높은 곳을 향한다. 그는 “장기적인 목표는 ‘가영 쌤’이 LPBA에서 세운 기록을 넘어서는 것”이라며 “워낙 많은 것을 이루신 분이라 정말 오래 걸리겠지만 목표를 가지고 도전하겠다”고 말했다.
김가영은 LPBA를 대표하는 최강자다. 이제 막 첫 우승을 거둔 박정현에게는 아직 먼 길일 수 있다. 박정현도 “아직 한참 멀었다”며 웃었다. 그러나 불과 몇 년 전 수줍게 처음 큐를 잡았던 15살 소녀는 어느덧 아마추어 무대를 넘어 프로 챔피언에 올라섰다.
박정현은 “선수 경력이 짧은 내게 이번 결승 경험은 큰 자산이 될 것”이라며 “앞으로 어려운 경기를 만났을 때 이번 경험을 떠올리며 이겨내고 싶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