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스타in 이석무 기자] 2026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 탈락은 대한축구협회 위기의 원인이 아니라 도화선이었다. 대표팀의 초라한 성적을 계기로 그동안 쌓여 있던 밀실 행정과 회계 관리 부실, 도덕적 해이가 한꺼번에 터져 나오고 있다. 지금 축구협회는 단순히 성적 부진을 넘어 조직의 정당성과 신뢰가 뿌리부터 흔들리는 총체적 위기ㄹㄹ 맞고 있다.
축구협회는 지난 8일 팬과 축구 관계자를 향해 공식 사과문을 발표하고 “철저한 쇄신의 기회로 삼겠다”고 밝혔다. “조직문화의 투명성과 도덕성을 높이고 회장 선거인단 확대 등 정책 과제도 조속히 이행하겠다”고 약속했다.
대한축구협회. 사진=연합뉴스
축구협회의 추락은 홍명보 전 대표팀 감독 선임 과정에서 본격화했다. 외국인 감독 후보를 검토하던 전력강화위원회의 논의가 사실상 무력화됐다는 주장이 나왔다. 현직 K리그 감독을 시즌 도중 데려오면서 절차적 정당성 논란이 커졌다. 문체부 감사와 국회 질타에도 협회는 국민이 납득할 만한 설명을 내놓지 못했다. 결국 대표팀이 월드컵에서 32강 진출에도 실패하자 그동안 눌려 있던 불신이 폭발했다.
경찰 수사는 위기를 한 단계 더 끌어올렸다. 홍 전 감독 선임 과정에 대한 수사가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로 이관됐다. 지난 6일에는 축구협회와 축구회관에 대한 압수수색까지 진행됐다. 협회가 행정적으로 미숙했다는 비판을 넘어, 선임 과정에 법적으로 문제가 있었는지를 수사기관이 확인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여기에 2011~2012년 외국인 심판과 관계자들을 상대로 한 성 접대 정황까지 뒤늦게 공개됐다. 진선미 의원실이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당시 협회 관계자들은 안마시술소 등에서 사용한 돈을 법인카드로 결제하고, 이를 식사나 음주·마사지 비용으로 허위 정산했다. 결재는 실무자를 거쳐 간부와 부회장 선까지 올라갔다. 일부 직원의 일탈로 치부하기 어려운 이유다.
당시 협회 임직원 18명이 골프장과 유흥주점, 안마시술소 등에서 법인카드로 결제한 금액은 1501회, 2억1600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주유소에서 사적으로 결제했다는 의혹을 받는 금액도 1억500만원에 이른다. 외국인 심판 접대뿐 아니라 조직 전반의 회계 통제 장치가 사실상 작동하지 않았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성 접대 대상 심판들이 관장한 7경기에서 한국은 5승 2무를 기록했다. 성적만으로 판정 개입이나 승부 조작을 단정할 수는 없다. 상대적으로 전력이 약한 팀들과 경기도 포함돼 있었다. 그렇다고 문제의 본질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경기 결과와 관계없이 심판에게 부적절한 접대를 제공한 행위 자체가 스포츠의 공정성과 독립성을 훼손하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이 사건이 2016년 문체부 감사와 2017년 경찰 수사를 거치고도 제대로 공개되거나 책임을 묻는 절차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비위만큼 심각한 것은 이를 조직적으로 축소하고 덮어온 구조다. 국제축구연맹(FIFA)의 징계 시효가 지났다고 해서 축구협회의 도덕적 책임까지 끝나는 것도 아니다.
축구협회는 “분노가 아닌 환호를 받는 조직으로 거듭나겠다”고 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이런 말이 아니라 행동이다. 과거 비위에 대한 독립적인 전수조사와 결과 공개, 관련자 책임 추궁, 법인카드 사용 내역의 상시 공개, 대표팀 감독 선임 절차의 제도화가 뒤따라야 한다. 회장 선거인단 확대 역시 선언에 그치지 않도록 일정과 기준을 명확히 제시해야 한다.
최동호 스포츠 평론가는 “FIFA 윤리강령은 판정에 영향을 미치려는 시도에 대해서 최소 5년 자격정지 징계를 규정하고 있다”면서 “공소시효가 10년이기 때문에 FIFA가 조사에 나설지는 의문이다”고 밝혔다. 아울러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공소시효가 없다”면서 “IOC가 축구협회 성접대를 조사해서 규정 위반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축구협회가 제재를 받을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