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인판티노와 정몽규의 '동시 추락'…오만했던 FIFA와 축구협회

스포츠

뉴스1,

2026년 8월 12일, 오전 11:22

지아니 인판티노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과 정몽규 전 대한축구협회 회장. 2024.10.28. © 뉴스1 박세연 기자

수족관을 가꿔본 사람은 안다. 아무리 깨끗한 물을 채워놓아도 시간이 지나면 탁해진다. 그래서 수초도 심고 인위적으로 산소도 공급하고 무엇보다 정기적으로 '물갈이'를 해줘야한다. 오래 고인 물은 썩는 법이다. 작은 노력으로 깨끗함을 유지할 수 있는 시점을 놓치면, 아예 통째로 물을 버리고 바닥의 자갈과 모래까지 싹 닦아야한다.

국제축구연맹(FIFA)과 대한축구협회(KFA)에 '새로운 물'이 필요하다는 조언은 꽤 오래전부터 있었다. 그럼에도 내내 귀 닫고 풍요로운 시절만 누렸는데, 결국 악취를 맡고서야 허둥지둥 대고 있다. 자정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면 이 지경까진 오지 않았을 것이다.

유럽축구연맹(UEFA)과 아시아축구연맹(AFC), 북중미카리브축구연맹(CONCACAF)이 지난 11일(한국시간) 공동 성명을 발표하며 인판티노 FIFA 회장을 공개 비판했다. 그들은 FIFA 홈페이지에 게재한 '축구 가족에게 보내는 공개편지'를 통해 "축구는 그 어떤 개인이나 특정 기관의 소유물이 아니다"면서 인판티노 회장의 최근 행태에 직격탄을 날렸다.


인판티노 회장은 월드컵 등 주관 대회 지분을 민간 투자자에게 매각하는 계획을 추진하며 자회사 'FIFA 포워드 엔터프라이즈(FFE)'를 설립했는데, 과정을 주도하는 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연관된 펀드였다는 게 밝혀져 논란을 일으켰다. 내부 논의 없이 독단적으로 추진한 일이라 파장이 더 컸다.

가뜩이나 북중미 월드컵을 통해 FIFA와 미 정부 간 비정상적 관계가 맺어졌던 정황이 나오고 있던 터라 논란은 가중됐다. 설상가상 과거 UEFA 사무총잘 시절 '내연녀 특혜 지원' 의혹까지 터진 인판티노 회장은 투자 유치를 공식 철회했지만 후폭풍은 계속되고 있다.

단체들은 "이번 사안의 근본적인 문제는 '선출된 이들의 정직성'에 관한 것이다. 권한을 위임받은 개인이 자신을 집단보다 위에 둘 때 의무는 이미 깨진 것"이라며 "의미 있는 협의 없이 사업을 추진하고, 회원들이 내용을 제대로 검토하기 전에 사안을 밀어붙인 것은 단순 실수가 아니라 검증과 감시를 제한하려는 의도적인 계획"이라고 맹비난했다.

그러면서 "책임이 필요할 땐 침묵하고 투명해야할 일에는 거리감이 존재한다. 이는 지도자의 덕목이 아니다"며 "이번 사안에 대한 조사는 FIFA 내부 또는 축구계 이해 관계자가 아닌 완전히 독립된 3자에 의해 수행돼야 한다"며 철저한 진상규명을 요구했다.

FIFA와 함께 하는 전 세계 '축구 패밀리'들의 신뢰가 완전히 깨진 모양새인데, 대한축구협회의 지금과 판박이다.

박지성 K-축구혁신위원회 공동위원장이 11일 서울시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 사무동에서 열린 K-축구 혁신위원회 6차 회의를 마친 뒤 브리핑을 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2026.8.11 © 뉴스1 김도우 기자

국회 청문회에 전직 축구협회장과 임직원이 불려 나가고, 축구협회 사무실이 압수수색을 받는 초유의 일이 벌어지고, K-축구혁신위원회라는 비상 체제가 가동되고 있는것은 결국 '극약 처방'이다. '기회 줄 때 잘 하세요' 예의 갖춘 충고가 있었을 때 구성원들이 보다 냉정히 내부를 들여다봤다면 이런 참담한 지경에 이르진 않았을 것이다.

한 축구인은 "어느 순간부터 축구협회는 '말을 듣지 않는 패쇄적인 조직'이라는 이미지가 강해졌다. 외부 조언은 물론이고 내부 직언도 철저히 배제됐다는 것이 공공연한 사실"이라면서 "처음에는 리더의 추진력으로 포장됐지만 결국 독선이었다. 직원들은 의욕이 떨어지고, 축구인과 축구팬들은 축구협회를 더 이상 신뢰하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이어 "오만했다. 욕먹다가도 국가대표팀이 몇 경기 잘하면 분위기 바뀐다는 것을 알았다. 언젠간 '붉은 유니폼 약발'도 떨어진다는 경고도 무시했다. 결국 '흥행보증 수표'라던 A매치도 빈자리가 넘친다"면서 "너무 오래 익숙하게 지낸 탓이다. 자신들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지조차 모르고 지내던 것이 축구협회의 가장 큰 문제"라고 비난했다.

인판티노 회장이 비리 혐의로 퇴진한 제프 블라터 회장의 잔여 임기를 받아 FIFA 수장이 된 것이 2016년 2월이다. 재선, 3선에 성공하며 현재까지 10년 넘게 세계 축구계를 이끌고 있다. 정몽규 회장이 대한축구협회장이 된 것은 2013년 1월이다. 2025년 4선에 성공한 그는 지난 5월 자신 사퇴할 때까지 무려 13년 동안 축구협회를 이끌었다.

강산도 변한다는 세월인데, 사람과 조직이 순수함이 유지하긴 너무 어렵다. 인판티노와 정몽규 회장의 '공'까지 부인할 것은 아니다. 두 회장이 조직을 이끄는 동안 발전한 측면이 분명 있다. 그래서 지속적으로 '건강하고 새로운 물'을 유입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더 아쉽다.

때를 때마다 놓쳤으니 이제 완전히 뒤집어 업는 수고가 불가피해 보인다. 다시 정상적으로 축구판이 돌아가려면 꽤 많은 노력과 시간을 감내해야한다.

lastuncl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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