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이 여기는 마음
하얀 슈거 파우더가 눈처럼 뿌려진 꾸덕꾸덕한 브라우니를 한입 베어 물고 오물거릴 때, 길 건너에서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보고 손을 흔들 때, 강아지가 내 품을 쏙 파고들 때, 달콤한 내음을 풍기며 돌아가는 오븐 앞에 서 있을 때, 들기름을 넣고 푹 지져낸 호박볶음을 밥 위에 올려 먹을 때, “아! 행복해”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요즘 이런 행복을 ‘소소한 행복’이라 일컫는다. 그런데 가끔 소소한 행복이라는 말이 불편하다. 행복은 본질적으로 크기나 질량, 정도나 질을 가늠할 수 없기에 작다, 크다 말할 수 없다. 그걸 모르지 않지만 때로 남들의 행복이 더 커 보일 때, 부러우면서도 내가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해 체념하며 내 행복을 ‘소소하다’고 말한다. 만족의 한계치를 줄여서 충분하다고 자위하는 것은 아닐까. 만족(滿足)이란 ‘발목까지 차올랐을 때 거기서 멈추는 것이 바로 완벽한 행복’이라는 뜻이라고 생각한다. 미미하든 잔잔하든 소소하든 내가 만족하면 그만이다.
<완벽한 하루를 꿈꾸는 허술한 우리>의 정은표, 김하얀 저자는 행복의 비결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엄마 아빤 잘 통했어, 결혼하고 22년이 지난 지금도 대화는 여전히 잘 통하고 많이 하는 편이지. 그게 엄마 아빠의 행복의 비결일 수도 있겠다.”
“아침에 행복하자”라는 말을 삶의 목표로 두고 학교와 일터로 나가는 아침에는 서로를 위해 조금 더 배려하고 노력을 기울인다. 그러다 보면 웃을 일이 조금 더 많아진다고 그들은 말한다. 정은표 저자가 방귀를 뀔 때마다 아내인 김하얀 저자는 루틴처럼 “사랑해”라고 말하곤 하는데 정작 아내는 아직도 남편 앞에서 방귀를 뀌지 않는다. 남편이 “볼 거 못 볼 거 다 본 사이에 왜 방귀는 못 뀌냐?”고 물으면, 아내는 마지막 소녀 감성이라고 말하지만, 그건 신혼 때부터 지켜온 남편에 대한 존중이라고 고백한다. 자기도 모르게 방귀가 새 나왔을 때, 부끄러워서 도망친 아내와 들리지 않더라도 “사랑해”라고 속삭이는 남편. 방귀까지 사랑한다니 이 둘은 찐 사랑꾼이다. 정은표와 김하얀에게 사랑한다는 말은 들숨과 날숨이다. 여태까지 그랬을 테지만 앞으로 살면서 그들이 가장 많이 하게 될 말 역시 사랑한다는 말일 것이다. 삭막한 세상에서 가족을 끈끈하게 이어주는 것은 바로 사랑한다고 말로, 행동으로 표현하는 작은 노력이다. 말하지 않아도 아는 것은 초코파이뿐, 사랑은 말로 해야 안다.
정은표, 김하얀 부부의 이야기에는 사랑한다는 말도 많지만 고맙다는 말이 유독 많이 나온다. 이야기를 들어줘서 고맙고, 스스로의 일을 잘 해줘서 고맙고, 얼마나 힘들었냐고 물어봐 줘서 고맙다는 김하얀. 그녀는 아이들이 부모가 해주는 것을 당연하게만 여기지 않고 고마워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며, 자신도 그런 어른으로 살기 위해 노력한다고 썼다.
사랑한다는 말도 고맙다는 말도 혼자서는 할 수 없다. 누구든 곁에 상대가 있어야 가능한 말이다. 그가 해주는 어떤 일이든 고마이 여기는 마음, 그 마음은 수용하는 마음이며 만족의 마음이다. 고마워, 라고 말하고 나면 마음은 이내 은연하게 수수해진다. 무람없이 다정한 말.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