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은유하는 입체적 실험정신을 조명하다"…'하종현 5975'

아트선재센터는 14일부터 4월 20일까지 한국 추상화 작가 하종현의 초기 작업(1959 1975)을 집중 조명하는 '하종현 5975'를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하종현의 작업 시기를 4부로 나누고 그의 작업이 사회적·역사적 맥락에서 어떤 방식으로 형성되고 진화했는지 보여준다.

전시는 △1부: 전후의 황폐한 현실과 앵포르멜(1959 1965) △2부: 도시화와 기하학적 추상(1967 1970) △3부: 한국아방가르드협회(AG)—새로운 미술 운동 시기(1969 1975)’ △4부: 접합—배압법(1974 1975)으로 구성된다.
1부는 하종현이 1950년대 후반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하며 당시 유럽에 등장해 정형화된 회화의 틀을 깨고 물질성이 주는 메시지 전달을 강조한 앵포르멜(information)의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준다. 두꺼운 물감과 불에 그을린 표면, 어두운 색조를 활용하여 전쟁 직후 시대적 불안을 화면 위에 구현했다.
2부는 1960년대 후반 시작된 도시화와 경제 성장이 가져온 사회적 변화를 다룬 작품들을 선보인다. 이 시기의 대표작 중 하나인 '도시계획백서'와 '탄생' 연작은 급격한 산업화와 근대화 과정을 추상화한 작업이다. 강력한 색채, 반복적 패턴, 캔버스를 구부리는 파격 등으로 회화의 고정된 형식을 넘어서는 실험을 볼 수 있다. 3부는 1969년 하종현이 비평가 이일 등 총 12명의 작가와 이론가로 구성된 한국아방가르드협회(AG)를 결성해 한국적 전위예술을 태동시킨 시기를 조망한다. 억압적인 암울한 시대를 철망, 신문, 휴지, 시멘트 가루, 스프링 등으로 표현했다. 또한 현재 도면으로만 남아 있는 거울 설치 작업 '작품'(1970)을 재현해 최초로 공개한다.
4부는 하종현이 1974년 "입체 실험에서 얻은 효과를 평면에 어떻게 옮길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한 '접합' 연작을 보여준다. 작가는 마대자루를 캔버스로 활용하는 독창적인 제작 기법인 '배압법'을 고안했다. 이 기법은 회화가 가진 매체적 한계를 넘어 평면적 구성과 입체적 실험의 경계를 탐구하려는 하종현의 지속적인 시도에서 탄생했다.
이번 전시는 하종현이 다룬 물질과 회화적 기법이 한국의 시대적 상황과 어떻게 상호작용하며 발전했는지 한눈에 살펴볼 기회다. 또한 미술 재료를 확장하는 물성의 실험정신이 자연스럽게 아방가르드(전위예술)로 넘어가는 과정도 설명한다. 당시 작가들의 고민과 새로운 미의 구현이 오늘날까지 공감대를 주는 세련성에 놀라게 된다. 또한, 2010년부터 하종현의 작업이 '이후 접합'으로 이어지는 총체적인 맥락까지 이해하게 된다.

하종현은1959년 홍익대학교 회화과 졸업 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학장(1990 1994)과 서울시립미술관 관장(2001 2006)을 역임했다. 그는 재료와 물질성에 대한 실험을 꾸준히 이어가며 독창적인 화풍을 구축해 왔다. 그의 작품은 뉴욕현대미술관, 뉴욕 구겐하임미술관, 시카고미술관, 도쿄도현대미술관, 파리 퐁피두센터, 국립현대미술관, 리움미술관 등 세계 유수의 미술관에 소장돼 있다.

acenes@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