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의 틀을 넘어 마음의 균형을 말하다…정동극장 창작무용극 ‘단심’

생활/문화

MHN스포츠,

2025년 5월 09일, 오후 03:33

(MHN 김예품 인턴기자) 전통 설화를 바탕으로 하는 심청전을 현대적 무대와 스토리로 재해석한 공연이 온다.

지난 8일 국립정동극장(대표이사 정성숙)의 2025년도 K-컬처시리즈 두 번째 작품 '단심(單沈)'(이하 '단심')이 개막했다.

K-컬처시리즈는 한국 전통과 문화를 담아낸 국립정동극장의 공연브랜드이다. 이번 작품은 국립정동극장 개관 30주년을 기념해 선보인다. 창작 초연으로 선보이는 '단심'은 고전 설화 ‘심청’을 모티브로 심청의 내면을 현대적인 감각을 더해 재해석했다.

작품은 한국무용과 전통연희를 바탕으로 한다. 각 막 사이에는 창 대신 ‘아니리’를 도입해 인물의 심리와 서사를 소개한다. 공연은 총 3막 구성으로 고전 설화 ‘심청’의 이야기 흐름을 따른다. 눈먼 아버지를 지극 정성으로 보필하던 심청이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인당수에 몸을 던지지만 환생하여, 아버지를 만나고, 심청과 다시 만난 순간 눈먼 아버지가 비로소 눈을 뜬다는 내용이다.

이야기의 흐름은 고전 ‘심청’을 따르고 있으나 이 작품이 주목하는 것은 ‘심청’의 마음이다. 공연의 문을 여는 1막 첫 장부터 심청의 입장에서 내면의 이야기를 써 나간다. 기존 심청 이야기에 대한 보편적 시선이 ‘희생을 통한 효의 구현’에 머물렀다면, '단심'은 심청의 마음속에서 일어난 규범과 통념에 대한 수용의 마음과 그 모든 것에 대한 저항의 마음이 공존하고, 충돌하는 과정을 드러내며 또 다른 ‘심청’의 이야기로 관객을 인도한다.

'단심'에서 단연 돋보이는 것은 시각적 연출이다. 정구호 연출은 시노그라피 역할도 함께 해 3막 동안 각 공간별 세계관을 무대 디자인을 통해 구축했다. 1막 공간에서는 심청의 내면의 깊이를 느낄 수 있으며, 2막 공간은 바닷속 세계로 현실과 단절된 환상적 분위기와 이미지를 연출한다.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차원이 다른 몽환의 바다를 물결과 해양 생물, 빛의 파동으로 구현한다. 

3막 공간은 기와지붕, 책가도, 단청 문양 등 궁중 건축 요소를 모티브로 한 한국적인 전통미를 현대적 그래픽 언어로 재해석한 무대다. 각 막마다 특색있는 공간 이미지 연출로 구현한 세계관은 공연의 흐름과 함께 강한 인상을 남긴다. 특히, 바닥부터 무대 전체를 에워싼 LED 패널 위를 수놓는 영상미는 무용수들의 동작과 어우러져 신비로움과 함께 시각적 즐거움을 선사한다.

전통 한국 복식을 바탕으로 재해석 된 의상도 주목할 만하다. 막별로 연출된 공간을 다층적으로 해석한 의상이 인물과 세계관을 아름답게 설득한다. 각기 다른 공간의 정서와 무대 흐름에 맞추어진 의상의 조합은 이 작품의 백미다.

김철환, 박다울 두 작곡가의 음악도 특색있는 공간 연출에 힘을 더한다. 박다울 작곡가는 거문고의 음색의 깊이와 전통색 짙은 리듬감을 통해 1막에서 표현하는 심청의 내면의 공간감을 음악을 통해 극대화한다. 김철환 작곡가는 2막에서는 몽환적 선율과 동양적 느낌으로 신비로운 용궁을 표현하며, 3막에서는 한국적인 정서를 담아 아름다운 심청의 여정의 마무리를 음악적 서사로 전한다.

작품 곳곳에 가미된 현대적 해석은 공연의 재미를 더한다. 군더더기 없이 3막으로 압축된 ‘심청’의 스토리 라인은 매 장면의 핵심에 집중하도록 이끈다. 바다에 빠진 심청이 용궁에서 만나 도움을 얻는 용궁 여왕 인물 설정도 현대적이다. 용궁 여왕의 세계인 용궁은 무대 전체를 채우는 화려한 영상으로 판타지적 느낌을 자아낸다. 환상적인 분위기로 구현된 무대 위에 아름다운 안무 동선과 우아하면서도 박력 있는 용궁 여왕의 춤 선은 바다가 지닌 생명력을 전하며, 압도적인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단심'을 통해 데뷔 40년 만에 무용수로 변신한 배우 채시라는 춤과 몸짓을 통해 심청의 상처를 어루만지면서도 생명을 관장하는 용궁 여왕의 힘을 전하며 춤 위에 써 내려간 드라마를 통해 몰입감을 높인다. '단심'은 한국을 넘어 전 세계를 향한다.

한국 전통 공연의 세계화를 견인하기 위해 정구호 연출가와 정혜진 안무가가 의기투합했다. 23년 뉴욕 링컨센터에서 작품 '일무'를 선보여 한국무용 공연으로 현지에서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두 사람의 신작이다.

정혜진 안무가는 “단심은 마음의 균형에 대한 성찰이며 나와 타인을 함께 끌어안는 삶의 태도에 대한 싶은 믿음을 다룬 이야기”라고 소개하며 “심청이 겪는 내면의 여정을 각 장면마다 섬세하고 아름답게 그려내고자 했다. 말로는 담을 수 없는 복잡한 감정과 사유를 몸짓과 동작에 담아 관객의 마음을 두드릴 것”이라며 기대감을 전했다.

정구호 연출가는 “심청은 오랜 시간 다양한 장르와 해석 속에서 끊임없이 재창조되어 온 인물이다. '단심'은 그 수 많은 변주 속에서도 기존에 강조되었던 ‘효’의 일면을 넘어서, ‘심청’이라는 인물의 내면에 더욱 깊이 다가가고자 한다”고 작품을 설명했다.

국립정동극장 정성숙 대표이사는 “30주년을 기념해, 국립정동극장과 예술단의 대표 레퍼토리 공연을 목표로 삼아 '단심'을 준비했다. 단심은 전통 공연으로서 이례적으로 50회 장기공연을 추진하며 국내외 관객 확장을 도모한다. 오는 10월, 경주 APEC 연계 특별공연으로 경주 엑스포공연장에서의 공연도 예정하고 있다. '단심'이 한국 전통예술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을 꽃피우고, 우리 전통 공연예술의 글로벌 무대 도약을 가속화하는 촉발제가 되길 바란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사진=국립정동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