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리'를 찾는 실존의 여정...신간 '제자리에 있다는 것' (오늘의 책)

생활/문화

MHN스포츠,

2025년 5월 16일, 오전 06:00

(MHN 이나영 기자) 프랑스 철학자 클레르 마랭의 인문 에세이 '제자리에 있다는 것'을 주목할 만한 이 주의 신간으로 소개한다.

프랑스의 철학자, 에세이스트, 소설가인 클레르 마랭이 오늘날 우리의 실존이 겪어야 하는 첨예한 딜레마를 질문하는 도서.

'실존'이라는 철학적 개념을 '자리'와 '뿌리 내림'을 향한 갈망으로 연결한다. 사회적 존재인 우리가 나만의 제자리를 찾고자 할 때, 필연적으로 맞닥뜨려야 하는 어려움과 그에 따른 실존의 위협을 응시한다. 

■제자리에 있다는 것|클레르 마랭|황은주 옮김|에디투스

내가 알맞은 곳, 있어야 할 곳에 있다는 감각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저자에게 실존은 무엇보다 '자리'에 관한 문제다. 우리는 내가 있어 마땅한 자리, '제자리'를 희구하고는 하지만 정작 어떤 자리가 할당되면 제자리에 있다고 느끼지 못한다. 우리가 일생 내내 자리 바꾸기를 거듭한다는 점에서 실존은 결국 '자리 옮김'의 문제로 규명될 수 있는 것이다.

제자리를 찾아서

온전하게 머물 수 있는 나만의 자리를 염원하지만 고정되고 안전한 장소가 정말로 존재하는 것일까? 제자리는 어떻게 발견되는 것일까? 현실의 우리는 사회가 설정한 분류와 질서에 따라 자리를 배정받을 뿐이다. 그것은 몸에 맞지 않기에, 분별 있는 처신을 요구하는 세상의 논리에 반하고서라도 참된 차원을 갖기 위해 다시 떠나야 한다. 그것이 실존의 요구, 내 안의 깊숙한 곳에서 들려오는 존재의 요구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렇게 뿌리 내리기를 위해 다시 뿌리 뽑힘을 감수한다. 내게 맞지 않는 냉담하고 척박한 자리에서 실존의 굴욕을 느낄 때 오히려 실존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사이'의 존재

한곳에 뿌리를 내리는 정착민의 삶과 이동을 지속하는 유목민의 삶을 관습적으로 구분해왔지만, 저자는 뿌리 내림과 자리 옮김이 기계적으로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긴장 속에서 연결되어 있다고 말한다. 결코 같은 자리에 머물지 않고 움직이는 우리는 언제나 정착과 유목의 양자의 사이에 있다. 저자에게는 그 중간 지대야말로 우리가 서 있는 유일한 자리이자 철학이 존재하는 자리이다.

'자리 옮김의 사유'를 사랑, 접촉, 관계 등 여러 꼭지를 포함하여 세심하게 검토하는 철학적, 문학적 에세이. 실존 철학에 관해 교양 수준의 지식이 있다면 더욱 수월하게 와닿을 도서다. 각박한 세계에서 진정으로 내가 있을 자리를 찾아서, 실존의 감각을 찾아서 방황하고 있다면 길 찾기를 도울 지침서.

책속에서

정착민과 유목민을 나누는 것은 가짜 양자택일이다. 왜냐하면 존재한다는 것은 언제나 하나의 여정이며, 머묾도 그 여정을 구성하는 정서·사회·지리·정치적 기착지일 뿐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는 결코 같은 자리에 있을 수 없다. 우리는 끊임없이 움직이는 모래 위를 걷는 존재다. (...) 우리는 사이의 존재여서 언제나 두 세계 사이, 두 시간성 사이, 자기 자신이 되는 두 가지 방식 사이에 있는지도 모른다. ▶10-14쪽.

부적절한 자리에 놓인다는 것, 실제적이든 상징적이든 변두리로 몰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이목을 끌지 말고 움츠릴 줄 알아야 한다고 요구받는 이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그들의 삶은 “위축되고” “발목 잡히는 ”비주류의 양상을 띤다. 우리 안의 무엇이 우리를 저지할까? 우리는 신체, 젠더, 외모, 그리고 사회와 시대 환경이 우리의 신체에 투영하는 판단에 의해서 매우 구체적이고 물질적인 방식으로 발목 잡힌다. (...) 우리는 의식하지 못한 채 할당된 자리와 은밀한 명령에 순종한다. (...) 이 세상은 당신을 위해 어떤 공간도 만들지 않았다. ▶52-53쪽, 54쪽, 57쪽.

 

사진=에디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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