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경의 ‘뜨개질’(1938). 일본 유학에서 배우고 익힌 서양화 기법을 충직하게 따랐다. 뜨개질하는 여인이 테마지만 정작 시선을 끄는 건 여인의 주변이다. 여인이 입은 검은 코트와 초록 원피스, 여인 뒤의 노란 벽지, 여인이 봤을 외국잡지까지. 어릴 때부터 일찌감치 터득한 서양 신문물을 자연스럽게 녹여냈다. ‘제20회 조선미술전람회’(1941)에서 입선한 작품이다. 여인을 실내에 앉힌 도상이 1930∼1940년대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유행했다지만 작가의 작업은 그보다 멀리 나갔다. 지난 5월 1일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개막한 ‘MMCA 과천 상설전: 한국근현대미술Ⅰ’에 걸렸다. 캔버스에 유화 물감, 116×91㎝. 국립현대미술관(이건희컬렉션) 소장.

[정하윤 미술평론가] 1910년대 어느 날. 경성의 한 보통학교 운동장으로 인력거가 미끄러지듯 들어서더니 앞코가 유난히 반짝이는 구두를 신은 단정한 소년이 내린다. 평범한 옷차림의 또래 사이에서 자꾸만 눈길을 끄는 이 소년의 이름은 주경(1905∼1979). 앞날을 내다보자면 이 소년은 한국 근대미술사에서 중요한 인물이 된다.
주경은 어릴 때부터 ‘최신’과 ‘서구식’을 온몸으로 겪었다. 단지 집안이 부유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경성에서 중앙서관과 미곡무역상을 운영하던 아버지 영향이 컸다. 주경은 아버지가 취급하던 책과 물자를 통해 새로운 문물을 누구보다 앞서 접할 수 있었다. 시대의 변화에 가장 빠르게 닿을 환경에 있었던 거다. 덕분에 일찍부터 양장을 입었고 야구, 승마, 춤, 수영 등 신식이라 불리던 취미를 누구보다 먼저 익힐 수 있었다.
그림도 예외는 아니었다. 1919년 보통학교 재학 중에 일본인 선생의 지도 아래 연필화와 수채화를 배웠고, 1921년부터는 아버지와 친분이 있던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 고희동(1886∼1965)에게서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다. 1923년에는 일본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또 다른 서양화가 이종우를 사사했다. 당시 주경이 일본 유학파 선생님에게서 배웠던, 캔버스에 유화로 그리는 ‘서양화’는 당시로선 가장 현대적인 회화교육이었다.
◇1928년 그림 배우러 일본 건너가…14년간 유학생활
자연스럽게 다음 수순은 일본 유학이었다. 1928년 본격적으로 그림공부를 하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갔다. 우리보다 신속하게 서구 현대미술을 받아들였던 도쿄, 거기서 주경은 예비미술학교에 해당하는 가와바타미술학교에서 4년간 데생과 크로키 수업을 받았고, 1929년부터는 일본인 서양화가의 문하생으로 6년간 머물며 실력을 다졌다. 1936년에는 동경제국미술학교 서양화과에서, 1941년부터 연구과에서 그림을 그렸다. 그렇게 1942년까지 장장 14년간(1928~1942)의 유학이었다.
일본에서 주경이 익힌 것은 주로 사실적인 방식의 서양화였다. 당시 일본 미술학교의 커리큘럼이 그랬기 때문이다. 그 결과 이 시기 주경의 작품들은 정확한 형태와 사실적인 명암법을 사용한 ‘고전적인’ 그림이었다. ‘뜨개질’(1938)처럼 말이다. 1941년 ‘제20회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입선한 작품은 제목 그대로 실내에 앉아 뜨개질을 하는 여인을 그린 것이다. 앉아 있는 여인은 1930∼1940년대 우리나라 서양화에서 자주 등장하던 도상으로, 사실 소재나 형식 모두에서 그리 특별할 것이 없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이 고전적인 화면에서도 몇 가지 ‘새로움’이 눈에 띈다. 우선 여인의 복장. 초록 원피스와 검정코트, 갈색구두는 당시 최신 유행의 서양식 옷차림이다. 갓 파마한 듯 곱슬거리는 헤어스타일도 상당히 세련돼 보인다. 여인이 바닥이 아닌 벤치형 의자에 앉아 뜨개질을 한다는 점도 그 시대에 등장한 ‘신여성’을 연상시킨다. 무엇보다도 눈길을 끄는 요소는 테이블에 놓인 잡지다. 표지에 커다랗게 인쇄된 ‘Atelier’(아틀리에)는 작품 전체에 이국적이고 현대적인 분위기를 불어넣는다. 작품의 왼쪽 상단에 영어로 서명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서양 문화를 접하고 일찍이 일본 유학을 통해 최신의 서구식 시각문화를 체득했던 주경은, 낯설지만 신선했을 요소들을 거부감 없이 흡수하고 화면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냈다. ‘뜨개질’은 주경의 시대적 감각을 반영한 결과물인 셈이다.
전통적인 소재와 방법을 사용했지만 주경은 동시에 현대적인 사조에도 열린 태도를 보였다. 당시 일본 미술계는 이미 인상주의와 후기 인상주의를 넘어 입체주의와 표현주의 등 서구의 현대미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러한 흐름은 일본에서 유학 중이던 조선의 젊은 화가들에게도 전해졌고 주경은 흐름의 한가운데 있었다.

주경의 ‘생존’(1930). 형상이 사라진 추상작품이다.거칠게 채워 입체적으로 보이기까지 하는 질감이 백미다. 30년 뒤인 1960년대에 한국화단을 뒤덮은, 현대 추상회화의 한 가지인 앵포르멜(부정형)의 전조가 보인다. 패널에 유화 물감, 36.5×44㎝.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일본 유학시절 주경은 프랑스 유학을 꿈꾸며 준비했지만 그 바람은 끝내 이뤄지지 못했다. 유학 중 집안이 기울어 경제적 어려움이 생겼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귀국 권고를 거스르며 일본에 머물다가 부모가 모두 세상을 떠난 1942년에야 귀국했다. 이후 대구중학교에 미술공작 교사로 부임하면서 대구에 자리를 잡았고, 한동안 화가보다는 미술 외적인 분야에서 활동했다. 대구 미국공보원장을 비롯해 국무총리 비서관, 외교부 장관 비서관 등을 역임하며 행정과 외교 분야에서 활약했다.
주경이 다시 창작에 매진한 것은 1960년대 이후였다. 젊은 시절 전통적인 도상 곳곳에 새로움을 삽입했던 주경은 후기에도 꽃그림 같은 전통적인 소재 안에 독특한 구도와 세련된 색채로 신선한 기운을 담아냈다. 이렇게 다양한 스타일의 작품을 제작하고 다양한 방면에서 활동하던 그는 1979년 7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엄밀히 말해 주경은 일생을 한길만 걸으며 예술혼을 불태운 작가는 아니었다. 대단히 일찍이 추상미술을 시도했지만 끝까지 끌고 가지도 않았다. 그림조차 삶의 굴곡 속에서 끊어졌다 이어가길 반복했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그를 ‘과대평가된 작가’로 보기도 한다. 일관성과 지속성이 결여됐다는 이유를 들며 예술가로서의 깊이를 의심하는 것이다.
그러나 예술가가 반드시 하나의 방식만을 고집해야 할까. 미술이란 한우물만 파야 훌륭하다고 할 수 있는가. 어떤 이는 평생 하나의 주제와 형식을 파고들어 명작을 만들어내지만, 또 어떤 이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다양한 실험과 탐험을 통해 자신만의 발자취를 남긴다.

주경의 ‘바다’(1929 추정). 망설이지 않고 그어낸 빠르고 굵은 붓질에서 인상주의가 보인다. 밝고 어두운 색조를 대비해 원근감까지 끌어냈다. 패널에 유화 물감, 23.6×33㎝. 국립현대미술관(이건희컬렉션) 소장.
화가 주경을 독특하게 만든 요소라면 오히려 불균질 속에서 시도했던 다채로운 화면을 들 수 있다. 더구나 그의 작품들은 각기 다른 시기, 다른 양식 속에서도 일정 수준 이상의 완성도를 유지하고 있다. 게다가 191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고르게 분포하는 작품은 시대의 풍경과 정서를 기록한 귀중한 시각사료이기도 하다. 서양화가로 살아가기 녹록지 않았던 그 시대, 예술적 실험을 포기하지 않았던 주경은 오히려 ‘과소평가된 작가’인지도 모른다. 그가 품었던 열망과 불안, 실험과 좌절이 엮여 만든 다면적인 흔적에 주목할 때 우리는 그의 작품을 더욱 온전하게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10대 시절 주경은 친구들 사이에서 ‘X’라는 별명으로 불렸다고 한다. 가까이 있지만 속을 알 수 없다는 의미에서였다. 잘나가던 집안의 몰락, 꿈꿨던 프랑스 유학의 좌절, 한동안 그림을 떠나 살아야 했던 삶의 굴곡 속에서도 그는 자신의 속내를 쉬이 드러내지 않았다. 하지 못한 말들은 결국 그림으로 남았다. 다채로운 인생 속에서 만들어낸 다채로운 궤적이야말로 그의 예술이었다.
△정하윤 미술평론가는…
1983년생. 그림은 ‘그리기’보단 ‘보기’였다. 붓으로 길을 내기보단 붓이 간 길을 보려 했다는 얘기다. 예술고를 다니던 시절 에른스트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에 푹 빠지면서다. 이화여대 회화과를 졸업했지만 일찌감치 작가의 길은 접고, 대학원에 진학해 한국미술사학을 전공했다. 내친김에 미국 유학길에 올라 캘리포니아주립대 샌디에이고 캠퍼스에서 중국현대미술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귀국한 이후 연구와 논문이 주요 ‘작품’이 됐지만 목표는 따로 있다. 미술이 더 이상 ‘그들만의 리그’가 아니란 걸 알리는 일이다. 이화여대·국립중앙박물관 등에서 미술교양 강의를 하며 ‘사는 일에 재미를 주고 도움까지 되는 미술이야기’로 학계와 대중 사이에 다리가 되려 한다. 저서도 그 한 방향이다. ‘꽃피는 미술관: 가을·겨울’(2025 출간 예정), ‘꽃피는 미술관: 봄·여름’(2022), ‘여자의 미술관’(2021), ‘커튼콜 한국 현대미술’(2019), ‘엄마의 시간을 시작하는 당신에게’(2018) 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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